aqua - 류이치 사카모토
대학을 졸업하는데 기쁘지 않다.
결여된 자부심이 비참할 일은 아니다.
다만 어릴 때부터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사회에서 존중받는 일을 하고 싶어서 뭐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열심히 공부했다. 수학과 과학이 좋아서 자연과학 계열이나 이공계에서 연구원이 되는 게 성장과정에서 그렸던 가장 구체적인 꿈이었다. 가치관이 일치하는 사람들과 함께 긍지 높게 일하는 것이 꿈이었다. 영어교육도 받았고, 해외여행도 다녔고, 책도 읽었다. 소설, 비소설, 잡지, 신문....
시험을 잘 보면 기분이 좋았다. 정말, 시험 계속해서 잘 보면 언젠가 연구원이 되어있을 줄 알았다. 하고 싶다고 다 되는 일이 아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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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은 다음단계로의 진입을 의미한다.
그런데 분명 어디론가 움푹, 빠져서 안 보이는 투명한 구덩이로 진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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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대학생들이 취업 전 졸업을 두려워한다.
갈 곳 없이 졸업한다. 경력의 공백이요, 카운트 다운의 시작이다.
수입이 없음이 독립에 치명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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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정말 과거에는 회사에서 대학생들을 미리 차출하고, 또 차출해서 대부분이 취업을 고민하지 않았다고 한다. 경험해 본 적 없는 과거에 대해서 이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공급과 수요가 맞아떨어지는 적기.
자책이 심해지면 마음의 병이 생긴다.
졸업을 해도 갈 곳이 정해지지 않아 다시 고향으로 가서 시험을 준비하거나, 자격증을 따거나....
졸업시즌에 맞춰 갈 곳을 정한 일부는 조금은 편안한 얼굴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면 마냥 편하지는 않겠지만.
졸업시즌에 맞춰 취업한 타인의 삶과 그렇지 못한 자신의 삶을 비교하며 비관한다.
내가 뭐가 부족했는지, 왜 안 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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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정말 하고 싶지도 않은데 일단 관성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지연된 보상, 성취가 지치게 한다.
가끔 한 번씩 정말로, 내가 가장 잘했다고 손뼉 치는 날이 오면 좋겠다.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사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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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산업구조가 개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려면 제도부터 변경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서로 배려하느라, 혹은 갈등이 피곤해서 대화하길 포기하고 서로 미워하기를 선택하게 된다. 그게 더 쉬우니까.
대학을 졸업하고 거취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
이 문장에서 읽을 수 있는 건 불안과 자유다.
사람들은 일하는 삶 속에 휴식이 있는 것을 선호한다. 물론 일이라는 게 스트레스다. 하지만 일상을 지탱하는 안정적인 일 없이 영원한 휴식을 원하는 이는 드물다.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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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도 고역이겠다만, 요즘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도 해야 하는 판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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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집세와 공과금을 낼 수 있는 돈을 벌고 싶은데 그 최소한이라는 한계는 끝없이 후퇴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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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차가운 계산기(필립 로스코)라는 책을 읽었다.
더 싼 거, 더 저렴한 거… 위험하더라도 더 저렴한 거. 유해해도 더 저렴한 것.
적당히 몸에 안 좋은 정도면 괜찮은데 한순간에 죽음으로 리스크에 대해서는 알지 못해서 더 무감각하게 수용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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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작은 집, 점점 지하로 들어가는 집, 햇빛이 들지 않는 집, 치안이 불안한 집...
고를 수 있는 것들이 영 시원찮다.
질 좋은 교육을 받으며 안정적이고 전문성 있는 직업을 갖길 희망하며 자라왔다. 원점으로 돌아가서 그다지 오랜 교육이 필요 없는,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제조업 분야 일자리에 가서 부족한 인력을 채우라고 한다면 차라리 일 하지 않고 살아가길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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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에는 희망하는 바가 많이 묻어있다. 아이가 커서 제 몫을 다 하고, 기왕이면 타인을 크게 도울 수 있는 인물로 성장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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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 자란 땅에서 일하고 싶어도 근무환경이 우수한 일자리는 나고 자란 땅에 없다. 정책은 5년마다 바뀐다.
꿈꾸던 일을 하고 싶으면 감수하고 살아야 한다.
꿈꾸던 일을 하고 싶으면 감수하고 살아야 한다…
꿈꾸던 일을 가능성이 있으면 타협하고 들어가야 한다….?
가치관에 따라서 삶의 형태가 많이 바뀐다는 걸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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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수 있는 10평 내외의 화장실과 주방, 침실이 분리된 깔끔한 집.
통근 시간이 30분, 최대 1시간인 도시.
가족들과 저녁을 보내지 못하더라도 주말에는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일.
다양한 사회구성원이 긍지를 가지고 일하는 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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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주의가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른 시기에 학교를 다녔다.
진학한 대학생활은 지옥이었다. 대학에 오니 배움이 아쉬웠다. 정말, 이게 대학인가.
실망도 잠시고 적응하려고 애썼다. 근데 적응, 잘 안 됐다.
숨 좀 고르고 났더니 이제 졸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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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친구를 바라는 아이들은 드물다. 다만 좀 더 높은 곳으로, 높은 곳으로.
좀 더 편하게 생활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일자리가 있는 곳으로. 숨통이 틔워지는 곳으로.
재수를 기본으로 생각하고 3수까지도 한다. 편입도 할 수 있으면 해봐야 한다.
학교를 다니면서 취업을 위해 자격증을 따야 한다.
졸업과 동시에 직장을 얻기 위해서는 방학 때 컴퓨터활용능력 1급, 토익 800점 이상,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급을 따야 하고 공과대학의 경우 기사자격증을 최소 하나 따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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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끼리 알음알음 정보를 건네 듣는 장소를 제공하는 게 대학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이후 이런 기능은 대학이 좀 더 강화해야 한다.
코로나 이후로 학생들끼리의 친목과 유대는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학생과 교수 사이의 관계도 그렇다.
대학에 와서 어떤 경험을 하는 것이 자신에게 필요한지 선택하는 과정 속에서 크게 좌절했다. 뭐가 없다. 뭐가 없어.
뭔가 없다.
웃음기 싹 빼고 즐거움 없이 대학을 다녔다. 청춘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증오스러울 수가 없다. 가져본 적도 없는 청춘.
누구와 함께 해 본 기억도 딱히 없고, 좋아하는 걸 적극적으로 해본 적도 없고, 뭘 할지 모르겠어서 천장만 멀뚱멀뚱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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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청춘을 가져본 사람이 할 수 있는 말 같다. 그냥 흘려보내는 것도 쥐어봤기에 떠나보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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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 집착을 한 것 같다. 즐거운 대학생활이라는 게 행하는 자에 달린 것이고, 그 마음에서 가능한 건데 소유에 집착하느라 즐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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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리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 원하는 직장이다. 누군가는 직장은 놀러 가는 것도 아니고 ‘일’을 하러 가는 곳인데 뭐가 그리 복잡하게 구는지 물어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구직활동에서 무얼 바라지 말라는 건 가혹하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목표를 향해, 끝을 향해 눈을 감고 달리기를 강요하는 것 같다.
내가 욕심이 많은 건지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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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은 건데 평범함의 기준이 올라가서 평범함이 희귀하다. 그래서 더 이상 평범함은 평범이 아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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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를 위기로 바꾸는 방법이 있다.
많이 가지고 있는 자원을 가장 희귀하고 비싸게 만드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는 일에 몰두한다.
누가 몰라주는 일, 혹은 관심 없는 일,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고 즐기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아주 많이 생긴 것이다.
이제 교환할 사람들을 찾아서 타인이 가진 내가 없는 것들과 교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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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땀 흘려 얻은 돈이 가장 무거운 돈이라고 했다.
쉽게, 많이 벌기를 원하지 말고 땀 흘려서 얻는 돈은 쉽게 배신하지 않는다.라고.
나는 이미 계속 땀을 흘리고 있는 것 같은데…. 아직 부족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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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이고, 지속할 수 있는 안정적인 일을 가지라는 조언이었다.
결국 언젠가는 은퇴를 하는 불가피한 시점에 도달한다. 모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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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모든 게 내가 가질 수 없다 쳐도 뭐든 하겠지, 생각하고 나면 무거웠던 숨이 덜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