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움과 후회를 뒤로 하고 현실을 직시하기.

8の季節 - haruka nakamura

by 이오십

부러움.


나는 요즘 부러움과 질투심에 눈이 멀어있다. 언니는 오후 5시 쯤에 퇴근해서 자신의 또다른 생활을 살아가는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는데 그게 너무 부럽다. 특히 여름방학, 겨울방학이 있고 그 기간도 봉급을 받는다는 게 너무 부럽다. 아.. 어째서 그 삶이 왜 내 삶이 아닙니까.


나는 최근,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 바쁘게 살아가고 있었다. 시험을 준비하는데 큰 이유는 '취업해서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싶으니까.'가 컸다. 지난 연말, 일산에서 고모, 고모부와 대화한 게 떠오른다. 나는 그 때 투정부리고 있었다.

'(책임감을 가지고 야근을 하려면 야근도 해야하는) 어른 되기 싫다.'

'나와 맞는 편한 일이 있지 않을까..'

'절박해지기 싫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던 나에게 고모와 고모부의 말씀은 큰 도움이 됐다.

'(네가 착각하고 있나본데) 세상이 널 맞춰주지 않아. 네가 실력을 키워서 자리를 구하러 다녀야 해.'

'세상에 경쟁 아닌 일 하나 없다. 어딜 가도 다 경쟁이다.'

'완전히 일이 맞아서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생계를 위해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일은 감사한 것이다.'

'그리고 네가 착각하고 있는데 너는 아직 출발선에서 발걸음을 떼지도 않았다.'


*


지금 내가 이 대화를 떠올리는 건 지금 내 정신이, 태도가 꼭 '뭐라도 가진 것처럼' 내가 가질 수 있는 것들을 비교하고, 재고, 따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험이 있으면 집중해서 공부를 해야하는데 좀처럼 집중이 안된다.


'봉급이 너무 낮네.'

유튜브에서 관련 직무로 일하는 사람들을 찾아봤다.

'끝없이 전공 공부해서 전문성을 키워나가야 하는구나.'

'악성 민원이 엄청나다고 하는데..'

'내가 이 일을 위해 지금 열심히 달리는 게 맞나?'


이런 생각들.

나는 사회생활도 안해본 출발선에 선 처지이기 때문에 사실상 의미는 없다. 경험해보지도 않고 '안 좋아보인다.' 라고 하는게, '일이 너무 많아서 고통스러울 것 같아 피하고 싶다.' 라는 게 사실 회피이기도 하지 않나?


*


완전히 다 나에게 맞춰져서 사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해도 그 삶은 내 삶이 아니다.


*


요즘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빅터 프랭클의 에세이를 짬짬이 읽고 있다. 나치 수용소에서 고된 노동을 하고, 비교당하고 수치심을 느끼고, 하여간 고된 환경에서 결국은 '생존'한 사람의 글이라서 읽고 있다. 그렇게 힘든 곳이라면 철조망에 몸을 던질 것 같은데 왜 그 사람은 이렇게 살아있으려고 노력했나.


*


수용소에 있었던 사람들은 자기 경험을 글로 쓰거나 이야기할 때, 당시 가장 절망적이었던 것은 얼마나 오랫동안 수용소 생활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한다. 우리는 언제 석방되는지를 몰랐다. ... (중략) ... 한 저명한 연구 전문 심리학자는 강제 수용소에서의 이런 삶을 '일시적인 삶, provisional existence'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한마디 덧붙이자면 '끝을 알 수 없는 일시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수용소에 들어온 사람들은 수용소 환경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랐다. 다른 수용소로 갔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있어야 했고, 어떤 수용소로 간 사람들은 한 사람도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 하나의 불확실성은 결말이 났지만, 이번에는 결말에 대한 불확실성이 뒤를 잇는다. ...

finis라는 라틴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끝 혹은 완성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이루어야 할 목표를 의미한다. 자신의 '일시적인 삶'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사람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를 세울 수가 없다. 그는 정상적인 삶을 누리는 삶과 정반대로 미래를 대비한 삶을 포기한다. 따라서 내적인 삶의 구조 전체가 변하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이와 비슷한 퇴행 현상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실직자가 이와 비슷한 처지라고 할 수 있다. ... (중략) ...

(토마스 만의 소설 <마의 산>예시)

미래의 목표를 찾을 수 없어서 스스로 퇴행하는 사람들은 과거를 회상하는 일에 몰두한다. 앞에서 우리는 이와는 다른 의미에서의 수감자들이 공포로 가득 찬 현재를 덜 사실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과거를 회상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실제 존재하는 현실에서 현재를 박탈하는 행위에는 어떤 일정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사실 수용소에서도 긍정적인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것이 기회인 줄 모르고 그냥 지나쳐 버린다. 자신의 '일시적인 삶'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삶의 의지를 잃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 앞에 닥치는 모든 일들이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종류의 사람들은 이것이 단지 예외적으로 외형적 상황일 뿐이며, 이런 어려운 상황이 인간에게 정신적으로 자기 자신을 초월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린다. 수용소의 어려운 상황을 자기 정신력을 시험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대신 스스로의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아무런 성과도 없는 그 어떤 것으로 경멸한다. ... (중략) ...

평범하고 의욕없는 사람들에게는 비스마르크의 이 말을 들려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인생이란 치과 의사 앞에 있는 것과 같다. 그 앞에 앉을 때마다 최악의 통증이 곧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다 보면 어느새 통증이 끝나 있는 것이다.


강제 수용소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는 인생의 진정한 기회가 자기들에게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곳에도 기회가 있고 도전이 있었다. 삶의 지침을 돌려놓았던 그런 경험의 승리를 정신적인 승리로 만들 수도 있었고, 그와는 반대로 도전을 무시하고, 다른 대부분의 수감자처럼 무의미하게 보낼 수도 있었다.


-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114-118p


*


미안한 감정도 있고, 후회도 있고 그렇다.


왜 좀 더 일찍 준비하지 않았을까, 왜 좀 더 열심히 해보지 않았을까.

왜 해보지도 않고 지레짐작 회피하면서 기회를 피했을까.


*


다행히 이런 나에게도 또 아침이 주어진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편안하고 안정적인 직장과 아늑한 집을 가진 삶이 내 삶이 아닌 것에 투정부리면서 과거를 돌아보며 후회하지 말고, 힘든 과정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려고 해야한다.


*


내 생각이 매우 어리석은 생각이라서 밝히는 게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냥 요즘의 나는 이렇다.

화,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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