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Song - haruka nakamura
엄마가 죽어버릴까 봐 무서웠던 적이 있다.
엄마를 너무 좋아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나는 엄마가 늘 걱정되었다. 나보다 서른 살 더 많은 엄마가 나보다 먼저 죽는다는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가 '불의의 사고' 외에 '자발적으로' 죽는 건 아닐지 걱정했었다.
엄마가 내 앞에서 '죽겠다.', '죽고 싶다.'라고 말해서가 아니다. 그냥 담담하게 '서른 살 이후의 삶은 없을 것 같았다.'라는 말의 진정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서른 살 이후의 삶은 없을 수도 있었다,라는 말이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 엄마에게서 나온 문장이란 건 꽤 충격이었다. 지금은 이해할 수 있겠지만, 어릴 때는 '그렇다면 난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었겠다.'와 이어지는 문장이었으니.
어릴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은 '돼지책'. 집안 가사를 하는 사람은 엄마 밖에 없다. 아빠도, 자식들도 만날 '밥 줘'라고만 하고 제 할 일만 할 뿐이다. 엄마가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자 아빠도 자식들도 모두 돼지가 된다. 집안 꼴이 말이 아니게 된다. 어린 나는 돼지가 되어버리는 판타지에서 공포를 느꼈다기보다 '엄마가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다.',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라는 게 가장 무서웠다. 그 책은 인생 내내 나에게 '엄마에게 잘해주지 않으면 너는, 혼자가 될 거야.'라는 서스펜스를 심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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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된 지금은 저자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썼는지 알기 때문에 그냥 구성장치 중 하나구나, 하지만 아주 어릴 때, 그 이야기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때는 느끼는 바가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 아직 많은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미지의 것에서 오는 수수께끼, 신비함을 더 가까이 자연스럽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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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늘 바빴다. 요즘은 한가한데,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20년 간은 바쁘게 살았다. 가끔 주말에 산으로, 바다로 외출을 하면 엄마는 차 안에서 두통약을 먹고 잠을 잤다. 편두통.
나는 엄마가 아픈 게 무서웠다. 왜냐하면 돈을 벌어다 주는 것도 엄마고, 나를 챙겨주는 것도 엄만데 아프면 난 어떻게 사나.
엄마가 좀 돈을 덜 벌더라도 안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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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에겐 영원히 비밀로 할 것인데, 엄마냐, 아빠냐 둘 중 하나에서는 늘 엄마였다.
나는 옛날부터 공상하길 좋아했다. 가끔은 비극적인 가정도 해봤다. 내 인생 최악일 일, 상상하기도 싫지만 만약 엄마와 아빠, 둘 중 한 사람만 내 곁에 있을 수 있다면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나는 꼭 엄마였다. 참 희한하다. 나는 엄마보다 아빠와 지낸 시간이 더 많았다. 초등학생 때 학원이나 영재원에 데려다주고 시간 보냈던 것도 아빠고, 어미새처럼 저녁밥을 사서 언니와 나를 챙겨준 것도 아빠고, 늘 든든하게 곁에 있어줬다.
하지만 아빠가 없어도 아빠를 상상하면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엄마는 없으면 가슴 한 구멍이 뻥 뚫릴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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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경우에는 결핍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사랑은 ,. 그러니까, 내가 엄마가 아니니까 단정할 수 없지만 내가 느끼는 엄마의 사랑은 방안이 가득 채워지는 촛불 같은 게 아니었다.
내가 가까이 가야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겨울철 전기난로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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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점점 당신 아버지를 닮아간다. 2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얼굴이 아직도 생각난다. 폐가 안 좋아지셔서 돌아가셨고, 가시기 이틀 전에 나는 할아버지를 찾아갔었다. 다리가 비쩍 마르고,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르겠고, 쇠약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가장 죽음에 가까운 상태의 인간이구나. 할아버지 발을 손으로 잡아봤는데 차갑고, 단단했다.
아빠도, 엄마도, 언니도, 나도 언젠가는 이런 상태로 죽음을 기다리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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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간다. 나이가 들어간다. 결국 다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너무나 과정이 지난해서 잊고 사는 걸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 늙어가고 있다. 다 죽어가고 있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 상품이 포장지를 입고 묶음판매 상자에 들어가듯이 우리도 수의를 입고 요양병원 단체병실에 누워있다가 세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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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보이면 그래서 슬프다. 할아버지를 닮아가는 입가 주름도, 흰 머리카락도, 골밀도가 낮아져서인지 자꾸만 작아지는 키도 나는 엄마와 아빠를 바라보면 슬프다. 그런 표지를 보는 것 자체가 슬프다.
어쩔 수 없는 일에 눈물 흘리는 건 매달릴 수도 없는 감정일 뿐이다. 앞으로 더 즐겁게 나이 들어갈 수 있도록 내가 분발해야지 싶다. 명랑하게 살아가는 딸이 있으면 그나마 좀 즐겁지 않을까. 생기 있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같이 싱그러워질 수 있지 않을까.
우린 다 죽음을 향해 가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린 다 살아있다.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