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날 좀 더 사랑해줘.

Hello Mr. my yesterday - 애쉬그레이

by 이오십

기록은 삶의 궤적을 그리는 일이다. 과거의 나를 다시 만나서 대화할 수 있는 진기한 경험이다. 흘러간 과거는 때때로 감정에 따라 왜곡되는 일도 다분하다. 하지만 일기를 쓰거나 간단한 메모를 하면 그날 어떤 일이 있었고 무엇을 느꼈고 선택했는지를 알 수 있다.


셜록 홈즈와 같은 탐정은 사건현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날, 그 시점에 어떤 사건이 발생했는지를 추리하는데 나는 셜록 홈즈의 이러한 직관을 동경했던 것 같다. 거짓을 가릴 수 있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마법 같은 추리력. 물론 추리의 기본은 정보를 선별하는 것이다. 그 외에 사실을 판단할 수 있는 배경지식, 상식이 풍부하면 더욱더 다양하게 볼 수 있겠다. 삶의 해상도를 높인다는 문장의 맥락과도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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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에 대해서는 더 상세히 적을 필요가 있다. 나는 중학생 때 내가 느낀 부정적인 감정을 억압하는 사람이었다. 그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내가 느낀 수치심, 창피함, 좌절감, 열등감의 이름조차 부를 수 없었고, 명명할 수 없는 것들은 미지의 공포로 자존감 한 구석에 자리 잡기 때문이다. 뭔지 모르니까 털어내 버릴 수도 없고 늘 그 감정을 이고, 지고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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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감정은 중요하다. 이성적인 선택을 하고 산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인 이상 감정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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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빠가 이비인후과에 다녀오셨는데 입천장에 지름 8mm가량의 혹을 발견했다고 한다. 내일 대학병원에 가서 떼어내고 조직검사를 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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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엔 언니가 집에 왔다. 언니는 시트러스 같은 사람이다. 톡 쏜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주변에 활기를 만들어주는 새콤한 성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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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걸 불편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전혀 잘못되지 않았다. 그날의 일도 마찬가지였다. 오래간만에 우리 가족 넷이 모인 기념으로 함께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그리고 아빠는 30분도 지나지 않아 집게를 책상에 던지듯 놓고 먼저 집으로 갔다.


언니는 타인에 의해 자신의 감정이 불쾌해지면 바로 그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편이다. 본인이 생각할 땐 예의 바르다고 생각하는 식으로.

"이러이러해서 놀랐으니, 사과해 주세요.", 이렇게 표현한다.

아빠는 그게 전혀 미안할 일이 아닌데 '사과'를 하라고 '요구'하니 불편하다.

기본적으로 언니와 아빠의 갈등구조는 이런 형식을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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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갈빗집에서 고기를 구웠고, 언니는 언니 나름대로 아빠에게 잘하려고 노력했다. 살갑게 말도 걸고, 종알종알 이야기도 하고,.. 그러다가 아빠가 언니 쪽에 있는 냅킨을 쓰려고 팔을 뻗었는데 이른바 언니의 퍼스널 스페이스를 침해했다. 맞은편에서 언니의 얼굴을 봤는데, 언니의 표정은 본능적으로 (약간) 놀랐고 불편함, 언짢음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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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냅킨을 건네달라고 하면 되는데 아빠가 갑자기 앞으로 지나가니까 놀랐어요. 앞으로는 그냥 건네달라고 해줄래요?"


아빠는 언니를 불편하게 하려고 한 행동이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불편하게 한 셈이니까 간단히 사과를 하면 된다. 뭐 그리 깊은 사과도 아니고, 정중한 사죄도 아니고 그냥 "어, 미안해." 정도면 된다.


그런데 아빠도 좀 기분이 상했다. 왜냐하면 이런 식의 형태는 우리 집 안에서 언니와 아빠 사이의 갈등의 반복적인 레퍼토리였고, 이미 아빠의 머릿속에서는 특정한 사건(언니와의 갈등과 관련된)은 기억나지 않아도 그때의 감정은 그때 그 시점, 과거와 연속되듯이 자연스럽게 재생되었을 것이다. 이어서, 언니의 '요구하는 형식의 문장'에 대해 불쾌감을 느꼈을 것 같다. 그래서 아빠도 사과하지 않는다. 아니, 이게 이럴 일이야?라고 생각하는 쪽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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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묵묵하게 대답하지 않으니 언니는 또 요구한다. 물론 그게 언니가 상대에게 느낀 불편한 감정을 긍정적으로 풀어나가려는 방식이자 노력인 건 알겠지만... 아빠는 그걸 언니가 '가르치려 한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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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말하기 방식은 확실히 그런 느낌이 없잖아 있다. "내가 느낀 건 이렇다. 그러니 네가 ~~ 하게 언행 해준다면 나는 유감을 갖지 않겠다.",라는 자신의 감정에 대한 명확한 표현과 상대에 대한 부탁까지. 상대에게 해결책을 제시해 주다니, 참 배려심 있는 행동일지도 모르겠다.

모 상담심리에서는 상대방이 나에게 잘못했다고는 느끼지만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모를 때, 내가 직접 상대방에게 어떤 방식으로 나를 대해달라고 이야기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라 상대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듣긴 했다.


더불어 언니는 상대방이 자신처럼 이야기를 해주면 '기꺼이' 이야기를 듣고, 더 나은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할 사람이 확실하다. 상대방이 언니와 성향이 같은 사람이라면 잘 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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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상대에 따라서 그 화술은 독이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나만 너에게 잘못했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던지 - 왜냐하면 상대방은 자신이 느낀 불편함을 언니처럼 유연하게 말할 표현 능력이 부족할 수도 있고,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조차 방법을 찾지 못한 상태일 수도 있다. -, '왜 네가 하란대로 내가 행동해야 하나?', 그러니까 나의 행동양식을 먼저 제시해서 '너의 조건과 제안' 안에 '나의 자유의지'를 가둬버리냐,라는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말이 너절해졌지만 요약하자면,

"아니, 그냥 미안하다고 하면 될 일인데 그걸 안 해줘?"와 "아니, 그게 왜 미안해해야 할 일이야?"의 싸움이다.


"네가 내 방식에 맞춰줘."를 서로가 주장하면 영원한 평행선일 뿐이다. 그냥 서로 사랑해버리면 져줄 수 있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모르겠다. 언니와 아빠도 그들만의 역사가 있을테니 뭐라 이야기하는 것도 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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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빠는 먼저 차를 타고 집에 돌아갔고, 언니는 진로 한 병을 깠다. 엄마와 나는 묵묵히 남은 고기를 구웠고, 추가로 2인분을 더 먹었다. 숯불갈비는 참 맛있는데, 간만의 고기였는데 희한하게 맛이 없었다. 원래 냉면도 같이 먹으려고 했는데 냉면은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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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을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엄마와 아빠는 지난주에 갈등이 있었다. 뭐 특정한 요지의 사건이 아니라서 더 해결하기 어려운 것 같다. 같이 살다 보면 그냥 서로가 미워 보일 때가 있는데 지금이 그 시점인 것 같다. 그간에 쌓여왔던 서로에 대한 서운함이라던지, 약간의 삐걱거림이 이런 식으로 작동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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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족들 이야기 밖에 하지 않았는데, 개인적인 이야기로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아주 열심히. 아침 8시에 집을 나가서 6시 반 정도에 집에 돌아온다. 그 시간 내내 도서관에서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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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자격증을 따려고 다시 처음부터 공부 중인데, 내가 학교를 다니면서 전공공부를 정말 소홀히 했구나 느끼고 있다. 세상이 허술해 보여도 요령으로 쌓을 수 있는 실력의 한계는 확실하다고 느낀다.

아무튼, 아침 여덟 시 반 정도에 도서관에 가면 좌석 300석 중에 90석 정도는 선점되어 있다. 물론 그 90석에 모두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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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 대한 감정은 그리 나쁘지도 않은데 그렇다고 마냥 편하지만도 않다. 오히려 많이 긴장되고, 배울수록 모르는 게 많아서 불안하기도 하다. 자격증 공부라는 게 기출문제를 돌리면 충분히 합격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기출문제를 돌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공부가 되어있지 않은 것 같단 생각에 자꾸 미루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도 이론 상으로는 아는 바가 있다. 바로 안 풀리는 것을 풀어가는 과정이 합격에 가까워지는 과정이란 것을. 하지만 나 같은 지독한 회피형은 자꾸 문제 풀기를 미루고, 결국 기출은 얼마 못 풀고 시험장에 들어간다.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아직 시간이 남아있으니 분발해 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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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SNS나 영상도 잘 안 보고 루틴 있는 통제적인 삶을 사니까 약간은 마음이 편해진다. 그때, 그 시간에 무엇을 할지 정해놓는 건 마음 편하려고 하는 거구나,라는 것을 또 배웠다.

어차피 제대로 실행되지 않을 거, 뭐 하러 계획을 하지? 생각했는데 막연히 생각만 많고 머리가 무겁다면 하루의 시간을 분배하고 계획해 보는 연습을 하는 게 효과가 좋다.


요즘 취미는 기타 연주하기. 그마저도 자주 하지는 못한다.


화,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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