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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오십 Oct 01. 2023

방황은 낙하다.

막다른 길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소중한 분께.

방황은 낙하다. 그리고 끝없는 우주 속에서 낙하는 비상이기도 하다.


궁지에 몰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이 있다. 악동뮤지션의 낙하이다. 땅이 없다고 가정했을 때 낙하는 비상이다. 막다른 길이라 막막하고 답이 없고, 침대가 한없이 땅으로 가라앉는 기분이 들 때, 우리는 지금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얼마나 타인보다 뒤떨어지고 있을지, 해도 해도 나는 안 되는 것 같고 포기하고 싶고 그럴 때 세상 사람들 모두가 다같이 세상을 비행하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좀 기분이 나아진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듯이 끝없는 낙하는 지구 반대편에서 보면 끝없는 비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세상 사람들 중에서 가장 낮고 가장 높게 비행하는 사람인 것이다.




대학생이 되고 많은 이들이 전공선택에 있어서 많은 방황을 겪는다고 한다. 나 역시 그랬다.

그리고 사회에 나간 친구들도, 다시 진로에 대한 방황을 한다. 사회초년생에게 방황은 끝이 없다.


적성에 맞으리라 생각했던 건축학과 생활은 상상과 많이 달랐다. 그 이유로는 내가 새로운 사회에 부적응했기 때문이었고, 그 결과 대학에서 얻은 인적자원은 0에 수렴한다. 술을 마시며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첫 오리엔테이션은 내향적인 인간이 20분만에 도망쳐나오기에 충분한 경험이었고, 이미 많은 관계들이 형성되었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친구를 사귈 생각보다 친구가 필요없다고 스스로를 세뇌하는 자기방어를 펼쳐왔다. 그 결과 과제를 할 때 어려움이 있어도 홀로 인터넷 서치를 했고, 남들이 족보로 1시간만에 할 일을 나는 하루종일 해냈다. 남들이 나를 필요하지 않을 거라고 정의내리고 방어적으로 행동한 건 정말 바보같은 일이었다. 그 결과 스스로 탐구해나가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너무나도 크게 지쳤고, 3학년이 되었을 때 건축학과에 온 목표도 잊고, 언제 그만둬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미련도 없이 버텨내는 하루하루가 외로움의 연속이고 고통이었다.


그 때 나는 영화와 책, 웹툰, 유튜브, 팟캐스트 등 미디어에 빠져 살았다. 그래서인지 내가 꿈꾸는 미래의 모습도 사무실에서 컴퓨터로 도면을 치는 건축설계인에서 점점 멀어지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에 가까워져가고 있었다. 왜인지 될 것 같았다. 사람들마다 자신에게 올 자신의 미래 이미지를 떠올리라고 하는 것들이 있는데, 나의 경우에는 할머니가 계신 시골 집을 리모델링해서 햇빛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 하루 수필을 쓰는 걸 꿈꾸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매우 괴롭기 시작했다. 주변의 동기들은 건축에 점점 자신의 길이 생기고, 나아가는 것 같은데 나는 다시 0부터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해파리같던 흐물흐물한 상태의 나는 글을 썼다. 잘 썼는지, 못 썼는지 모르겠지만 숨 쉬듯이 글을 썼다. 그래야 나는 내 가치가 증명되는 것 같았다.



4학년 때 휴학을 하고, 건축을 더 해볼 것인지 고민했다. 고민은 끝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만두는데에도 용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꾸역꾸역이나마 공부해온 것들을 놓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건 내게 너무 두려운 일이었다. 빵집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대형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도 나는 글을 썼다. 누구도 보지 않은, 나만 보고 나만 아는 나만의 글. 내게 필요한 글을 쓰는 행위는 스스로에게 건네는 위로였다. 어느 날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내 기분이 얼마나 처참한지 a4 다섯 장에 걸쳐 길게 서술했고, 어떨 때는 너무 즐거운 일이 있어서 글을 썼다. 잡설이지만 때론 돈이 되는 글을 써보고 싶어서 소설을 쓰려고 했다. 근데 그건 글이 안 써져서 일찍이 포기했다. 작가도 직업이구나, 하는 생각을 이 때 했다. 내가 하는 건 개인적인 감정을 해소하는 글쓰기였다. 아무튼 좋았다. 글을 쓰면서 조금씩 정리가 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건축보다 미디어에 더 관심이 많구나. 나는 창작이라는 행위를 즐기는 사람이구나. 그렇게 조금씩 나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다.



작가는 내 생각보다도 더 오래된 꿈이었다. 너무 소중해서 남들에게 말하기도 어려운 꿈이었다.




방황을 할 무렵에 나는 내가 미웠다. 이제까지 그렇게 열심히, 무언가를 향해 달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달리기를 멈추는 내가 게을러보이고, 스스로 뒤처지기를 선택하는 것 같아서 내가 너무 부족한 사람 같았다. 사람들이 나를 보면 내가 껍데기 밖에 없는 걸 알게 될까봐, 내면에 아무것도 없는게 들통날 것 같아서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아침 해가 밝아오는게 너무 끔찍했고, 밥을 먹는 것도 아까웠다. 아파도 아픈 줄 모르고 그저 참기만 했다. 막다른 길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늘 앞서나가고, 길을 잃지 않는 사람이길 바랐는데 과거의 나는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방향성이 없으면 사람은 괴로워진다. 옳던 그르던 나아가려는 방향이 있다면 하루가 더뎌도 견딜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방황은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기분을 선물한다. 끝없이 깊은 어둠으로 낙하한다.


사람들은 모두 다 날고 있다. 자신의 세계관 속에서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일들에 대해 발전하고, 승진하고, 인정받고, 때로는 탈락하고, 거절당하고, 실패하고. 우리는 모두 세상을 날아다니고 있다. 누군가는 정상까지 날아서 모두가 선망하는 자리까지 오른다. 정상에 오른 아티스트가 한 말이 있다. 높이 날아올랐을 때 가장 중요한 건 안전하게 착륙하는 일이다. 세상은 거대한 메타포 같다. 지구에서 쏘아올린 착륙을 목적으로 한 발사체가 무사히 달에 착륙하면 몇 개월 간 밤낮없이 연구한 과학자들, 엔지니어들, 그리고 많은 지구인들이 박수를 보낸다. 우리는 모두 착륙을 위해 비상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우레와 같은 박수를 들으며 무사히 땅을 딛고, 누군가는 계란 낙하산 실험에 실패한 계란처럼 처참히 깨질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향해 걸어간다. 낙하하기 위해 비상하는 것이고, 날아 올랐기 때문에 땅을 잘 딛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날고 있는 동시에 추락하고 있다. 끝없는 낙하는 끝없는 비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겪은, 겪고있는 끝없이 낙하하는 기분은 더이상 두려움이 아니다. 우리는 매일 낙하하고 있고 조금 더 편안한 방식으로 낙하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다. 나를 좋아하는 구성원이 있는 환경, 내가 가치있게 인정받는 환경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고 발견하는 게 올해의 목표이다. 그 과정에서 시간에 대한 염려보다 순간에 대해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길 바란다. 물론 올해 건축학과를 졸업할 예정이긴 하다. 건축기사 자격증도 딸 것이고. 그렇게 마무리 짓고 나에게 맞는 삶의 형태를 만들기 위해 그 과정에서 많은 일들을 시도하고 찾아나가겠다. 끝없이 추락하는 사람이지만 빛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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