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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오십 Sep 18. 2023

악의가 없는 사람들은 사랑스럽다.

무해한 사람들.

나는 초등학생, 중학생 무렵 아이돌 뮤비를 정말 많이 봤다.


브아걸 아브라카다브라, 원더걸스 be my baby, 티아라 apple is a, 레인보우 A, 소녀시대 gee, 아이유 boo, f(x) nuabo, 피노키오... 하교를 하고 집에 와서 숙제를 하고, 네이버 음악 카테고리에 올라온 뮤비를 굉장히 많이 봤었다. 나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 정도면 좋아해서 많이 봤던 것 같다. 예쁜 사람들이 신기한 옷을 입고 독특한 배경에서 춤을 추고, 뮤직 비디오마다 스토리가 있어서 표정연기를 보는 재미도 있었다.



고등학교를 갈 무렵 아이돌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그정도였다. 최근 유행하는 가장 대중적인 음악을 듣고, 혈육이 좋아하는 미국 드라마에서 나오는 다양한 pop음악을 더 많이 들었다. 물론 주변 또래 친구들은 아이돌을 파는 친구들이 많았고 또래와 어울리고 싶어서 비스트, 인피니트, 엑소, 블락비의 멤버들은 알고 있었고, 종종 점심시간에 tv로 틀어놓은 뮤직비디오를 봤다. 그때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좋다 싫다도 없이 그냥 관심이 없었다.



정확히 중학교 3학년 무렵에 방탄소년단이 상남자로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인피니트, 비스트와 비슷하게 언급이 되기 시작했다. 교복을 입고 패기넘치는 춤을 췄는데 아마 내 기억으로는 엑소가 으르렁으로 그 전 해에 굉장히 히트를 쳤었다. 그 때 엑소 팬이었던 한 친구가 방탄소년단이 엑소의 컨셉을 따라해서 잘됐다 카더라의 이야기를 했었다. 약간 불량해보이는 느낌으로 너의 오빠가 되고 싶다는 고등학생 컨셉과 너를 강하게 욕망한다는 교복입은 어른 느낌은 달랐지만 큰 틀에서는 비슷했다. 그 애가 어떤 의미에서 이야기하는지는 알겠지만 그 때 나는 악의를 봤다. 물론 k pop 박애주의자 친구들도 굉장히 많았지만.


고등학생이 되고 공부에 집중하려고 도서관에 다니고 독서실에 다녔다. 딱 공부한 만큼 성적도 나왔던 것 같다. 그리고 학교 생활이 재미가 없었다. 다른 세계에 더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고 1이었나, 고 2 때 저녁 먹고 야간자율학습 하기 전에 친구들이 뮤비를 틀었다. 방탄소년단 i need u 안무 연습 영상이었다.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사람 몸이 저렇게 움직이지 싶고, 바닥과 운동화 밑창의 마찰음이 생생하게 들리는 그 영상은 내 입덕 영상이었다. 연습공간에 울려퍼지는 소리의 공간감도 처연한 느낌의 곡과 굉장히 잘 맞아 떨어졌다. 나는 그 영상에서 그들의 독기를 봤던 것 같다.



그 영상을 보고 그 영상 속 사람들에게도 관심이 생겨서 나무위키를 다 읽고 그들이 과거에 미국에서 찍은 음악예능 다큐도 쭉 봤다. 미국 땅, 인지도 하나 없는 곳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우호적으로 관계를 맺고 날카로울 수 있는 상황임에도 서로를 아끼고 존중해주며 촬영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그 당시 촬영도 하면서 다음 앨범 작업도 같이 하고 있어서 굉장히 피곤해하는 장면도 있었고, 댄스배틀을 하는데 예의없게 행동하는 댄서에 대해서 춤으로 무례함을 받아친 것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당시에 스마트폰이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에게도 보급되던 시절이라 나는 굉장히 편하게 그들에 대한 모든 성장을 지켜볼 수 있었다. 네이버나 구글에 방탄소년단이라고 검색하면 그들에 관한 뉴스나 여론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당시에 그들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미워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요즘은 악플이라고 하면 법으로 처벌할 수 있고 사회적으로 많은 질타를 받을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잘 알려져 있지만, 당시에는 별 이상한 말들이 댓글로 달렸다. 집 구석에서 인터넷을 하니까 공공이 이용하는 플랫폼인지도 모르고 자신의 목소리가 얼마나 잘 반사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는지 알지도 못하고 연예 기사에 성희롱 댓글, 외모 품평 댓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영화 드라마 시사회나 데뷔, 컴백 무대 기사사진 아래 달린 댓글은 정말이지 폭력적이었다. 행위 예술가 마리나가 '리듬 0'이라는 6시간 동안 공연한 행위 예술이 떠오른다. 그는 72개의 물건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서 있고, 관객은 물건을 그에게 쓸 수 있었다. 물건 중에는 장미같이 좋은 것도 있었고 가위 같이 해칠 수 있는 것도 있었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머뭇거렸는데 공연이 끝날 무렵에 그의 옷은 다 벗겨지고 욕설이 몸에 적히고, 상처를 입었다. 6시간이 지난 후에 계획대로 그가 관객을 향해 걷자 그 사람들은 자리에서 도망쳤다.


당장에 기억이 나는 건 공개적으로 방송에서 아이돌을 저격한 래퍼들이다. 행위의 동력이 되기도하는 분노, 슬픔, 악의를 타인에게 투영했다. 그 영상은 굉장히 실례되고 무례하고 모욕적이었다. 당시 쇼미더머니가 흥하던 때였는데, 그 때 '디스'라는 말을 처음 알았다. disrespect라는 약어인데 예시로는 '디스랩'이 있다. 간단히 말하면 상대방의 약점을 공격적으로 표현하는 랩이다.



 지금의 방탄소년단의 화려한 입지를 생각해보면 좀 안쓰럽기도 한 부분이 있다. 악의를 가진 말을 듣고,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는 그 사람들이 있어서, 반대쪽에는 그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심지어는 그 악의가 응원하는 사람들에게까지 향하기도 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게 노력하고, 또 노력하고, 멋지게 보이려고 치장하고. 결국엔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인정하고, 더 유명해져서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응원하게 되었으니까 결과값만 놓고 보면 화려하다. 그렇지만 그들의 과정을 생각해보면 지금의 방탄소년단의 이름이 가진 가치는 거저가 아닌게 분명하다.



방탄소년단에게 본받고 싶은 점이 있다면 사람들 하나하나 정말 악의가 없다는 점이다.


독기는 있는데 악의는 없다. 악은 독이기도 하지만 약이기도 하다. 근데 악은 일단 독이다. 고등학생 때는 이게 정말 이해되지 않았다.


악의를 가진 사람이 자신을 향해 독을 뿜으면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똑같이 악에 받쳐서 화를 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구석으로 파고들어가서 숨고 또 숨을 수도 있고, 엉엉 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너무 큰 상처를 받아서 극복이라는 단어 자체가 상처가 되어버리는 사람도 있고. 때때로 대중은 방탄소년단에게 악의를 보였는데 그들은 악의를 독기로 받아쳤다. 그리고 크게 성공했다.


근래 유튜브를 자주 보는데 악의의 끝판왕 채널도 있다. 루머에 루머를 달고, 희한한 기준을 세워서 부정적인 비교를 하고, 뭐 아무튼 알고리즘에 뜨면 불쾌한 채널이 있다. 모두가 다 방탄소년단 같지는 않다. 악의에 익숙한 사람 하나 없고 악의를 독기로 받아칠 수 있는 사람도 드물다. 하물며 더 잘 돼서 보란듯이 성공하는 것도 나는 운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잘 되라고 하는 말이지' 하는 말은 정말 잘 되라고 하는 소리인지, 의미를 잘 생각해보고 말했으면 좋겠다. 대체로 변명으로 쓰이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악의를 가지는 건 그럴 수 있다. 다만 표현의 문제다. 긍정적인 방향은 예술로 승화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무튼 어렵다고 느낀다. 나 역시도 아무 이유없이 사람이 싫고 미울 때가 있다. 과거에 나도 떳떳하지 못하다. 다만 계속 변하고, 또 변하면서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가진 악과 독을, 또는 타인에게서 받은 악과 독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 게 긍정적일지 생각하느라 말이 길어졌다. 내가 방탄소년단처럼 될 수는 없다. 나는 상대방의 악의에 대해서 분개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혼자 독 오르고  약 올라하는 편인데 아무튼 자신들의 발전으로 삼는 방향성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에 집중하는 그들의 인성이 참 부럽다. 그렇게 상처받았고 화가 나는 일이 있었는데도 제 3자인 내가 본 방탄소년단은 참 악의가 없다. 성장과정에서 그렇게 고난을 겪어서 그런가 그럴 수 있겠다 싶기도 하고, 그래서 더 사랑을 깊게 느낄 줄 알아서 해소됐나 싶기도 하고.



앞으로 방탄소년단이 단체로 무대에 설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또 변수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에 그런 날이 오면 나는 잽싸게 티켓을 구해서 한번쯤은 실제로 무대에 선 착한 사람들을 보고 싶다. 물론 나는 방탄소년단에게 착함을 요구하는 건 아니다. 매체에서 봐 온 방탄소년단은 많은 자극에 대한 반응 데이터를 만들었고, 어느 정도 예측가능한 범위라는 게 있고, 그 범위는 내가 봐온 사람들 중에서는 가장 악의없었음을 착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는 바이다. 미래로 갈수록 달라지겠지만 아무튼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악의가 없는 사람들은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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