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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오십 Sep 22. 2023

<더 셜리 클럽>, 박서련

세상을 가득 채우는 촛불, 소설.

친구에게서 선물로 받은 책이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소설책을 고르다가도 막상 손이 가는 건 비소설이었다. 아무래도 소설은 취향을 많이 타고, 그만큼 만족할 수 있는 책인지 선별하는 과정이 까다로워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책의 내용과 내 상황이 잘 맞물리면 금방 읽을 수도 있고, 100장이 넘어가도록 인내하고 읽어도 재미를 못 느낄 때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친구가 문득 선물로 준 책이 이렇게 재미있게 읽혔다는 건 굉장한 행운이었다.



 내가 그 친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 친구는 나에게 왜 이 책을 선물했을까 생각하면서 한 문장 한 문장 꼭꼭 씹어 읽었다. 그리고 과거의 기억들, 현재 상황들을 생각하면서 이래 저래 소설 주인공에게 잘 이입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묘사하는 문장이 많아서 다 읽고 나니 한 번도 호주에 가본 적 없는 내가 맬버른과 울룰루의 아름다움을 깨달은 듯한 이 착각이 기분 좋다. 우연히 맬버른 시내의 어느 피자가게에 들어갔을 때 점원이 빙긋 미소 지으며 g'day라고 말하는 일이 꼭 생길 것 같다.





 크게 드러낸 적은 없지만 대학생이 되고 나서 염세적이고 차갑고 딱딱하고 삐딱한 태도가 자라났다. 언제나 함께라고 생각했던 가족도 친구도 모두 떠나가면 결국 다 혼자라는 생각에 나는 자꾸만 추워지고 눈물이 났다. 아마 타지에서 혼자 지내다보니 연고도 없고 그래서 힘들었겠지, 지금은 짐작가능하지만 그 땐 이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된 것보다 지리하고 고된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정말 말 그대로 '나 혼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를 도울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악착같이 수업시간에 졸지도 않고, 시간약속을 지켰으며, 필사적으로 과제를 하고, 그렇게 긴장하면서 지쳐갔다. 지금까지도 그 여파는 아무리 자도 자도 피곤한 몸뚱아리와 얼굴에 남은 다크서클로 남아있다.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어도 아무 감정이 들지 않는게, 이미 내가 가진 어느 부분이 깎여져 나간 걸 느꼈다.


 그 때의 나는 - 버겁고 귀찮고 쓸데없고 - 뭐 그런 단어들을 많이 썼다. 많은 사람들 역시 나처럼 버겁고, 귀찮고, 쓸데없는 것들에 애쓰며 산다고 애써 연민하는 감정을 느끼려 노력했다. 그랬더니 무기력과 우울이 나를 한참 가라앉게 만들었고 그 땐 이미 나는 내가 아닌 상태였다.



 내가 가진 나의 좋은 특성 중에 하나는 정말 이러다 사달날 것 같으면 바로 병원에 간다는 점이다. 4.8평짜리 자취방에 옅은 빛이 들어왔고 나는 그 빛에 녹아가고 있었다. 이대로 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희미해진 나를 움직여 병원에 갔고, 잠시 쉬는게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듣고서야 휴학을 결정했다. 감사하게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다행히 응급처치는 됐다. 빠르고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일이 다 충분하고 빠를수는 없다.


 사람이 싫다는 생각은 충분히 사람을 보지 않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해결됐고, 스스로가 밉다는 생각은 밥을 잘 먹고, 하고 싶은 걸 하고 나니 가셨다. 그래도 뭔가 채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배는 부르고 등은 따뜻해도 미소짓지 못했다. 그제서야 깎여진 일부는 나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음을 깨달았다. 밤이면 이유없이 흐르는 눈물이 상실이었다는 걸 그 때 알았다. 하지만 후회는 낭비다. 다시 채울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이미 잃어버린 거 어떡해, 그냥 살아야지. 그리고 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그냥 살았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갔다. 아무리 중요했던 것도 지나가고 나면, 사라지고 나면, 잃어버리고 나면 다 잊혀졌다. 생각조차 나지 않게. 시간이 흐르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



 세상에서 사람들과 잘 살아가려면 잃어버린 무언가가 필요했다. 운좋게도 여러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뭘 잊은건지, 잃은건지 깨달았다. 대부분의 책은 치료를 권하고, 노력을 권하고, 개선하기를 바랐다. 도움이 되긴 했지만 잠시 피어오른 불씨였다. 책을 덮으면 사그라들었다.


 우연히 받은 책을 통해, 사람은 이래서 이야기를 읽는구나, '더 셜리 클럽'을 읽어서 경험했다. 소설은 나에게 바라는 게 없었다. 그냥 이야기만 했다. 왜 읽나 싶은 쓸데없는 이야기. 방향성을 제시하지도 않고 그냥 줄줄줄 이야기했다. 어느 페이지를 넘어가면서부터는 미소짓기 시작했다. 공감해서 그랬을 수도 있고, 웃겨셔 그랬을 수도 있다. 내가 전혀 하지 않을 엉뚱한 행동을 해서 그랬을 수도 있고, 아무튼 문장과 단어는 읽기 쉽고 다정했다. 읽고나서도 잔잔하게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는 것이, 그래 이건 난로다, 싶었다. 책을 읽음으로써 나에게서 깎여나간 부분이 빛으로 채워졌다. 여전히 아무것도 없지만,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었다. 똑같은 조각이 나타나서 채워지지 않아도 무방하다. 조금씩 따뜻한 빛을 공급하면, 조금이라도 인간다워진다. 조금이라도 다정해지고픈 마음을 들게 한 무언가가 소설이라면, 나는 소설을 꾸준히 읽을 자신이 있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깎인 부분이 더이상 시리지 않다. 아무 이유없이 울지도 않는다.





 어느 곳이든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은밀히 존재한다는 책의 내용은 정말 큰 위로이자 용기가 되었다.


 고작 이름이 같다는 이유 하나로 서로를 기억하고, 미소짓고, 대화하는 환상적이고 다정한 이야기가 지난 시간 동안 은은한 빛이 되어줬다. 세상에, 나는 내가 블록버스터나 심각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이런 아기자기하고 소소한, 그리고 감정에 충실한 이야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인 걸 깨달았다. 셜리가 아니니까 셜리 클럽엔 못 들어가겠지만 나도 내가 들어갈 수 있는 클럽이 있다면 참여해보고 싶단 생각이 아주 조금 들었다.


 읽다보면 셜리들은 셜리를 왜 그리 적극적으로 도왔을까 하는 궁금증이 잠깐 들었는데 사람은 사람으로 세워진다는 걸 떠올리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이름이 같아서 도왔다기 보다 만나고 보니 그 사람을 돕고 싶어져서 도운 거라고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이름이 같다는 건 행사와 모임을 통해 셜리들이 셜리를 만나고, 다양한 셜리들이 어느 한국에서 온 셜리를 돕기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우연이자 하나의 공통점이었을 뿐이었다. 세상엔 별 이유없이 선의를 베푸는 사람들이 많다. 생각보다. 그래서 나도 셜리라는 공통점은 아니겠지만 사람과 사람을 만나다보면 어느 하나의 우연과 공통점은 있을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따뜻한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게 바로 인류애인가.. 그런 생각을 잠시 했다.



사랑을 해본 적 있거나 사랑을 해보고 싶거나 따뜻하고 다정한 일들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난로같은 미소를 짓게 되는 나를 발견하는 건 하루하루 돌아가는 일상에 큰 도움이 되었다. 친구를 만나면 내가 가진 최대의 감사인사를 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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