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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오십 Sep 25. 2023

나만의 세계, 편견

부모님은 인생을 즐기고 계시는건가

어제 친구와 만나서 청계천을 걷다가 문득 집집마다 살아가는 패턴이 많이 다르구나 싶었다.


우리 집의 구성원은 엄마, 아빠, 언니, 나 4명이고 부모님은 작은 명함가게를 하신다. 작은 방 하나가 딸린 10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25년이 넘게 감사하게도 망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셨다. 내가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부모님은 주말이 없으셨다. 주말이면 집 앞 동네 빵집에 들러 모닝빵을 사서 8시 반쯤 언니와 나를 데리고 함께 사무실로 출근했다. 엄마는 도착하면 곧장 컴퓨터를 켜고, 문을 열어 묵은 공기를 내보내고, 가볍게 바닥을 쓸고, 겨울이면 뜨거운 바람에 피부가 가려워지는 온풍기를 틀어놓으셨다. 그리고 일을 하셨다.


평일엔 8시 반 출근, 퇴근시간은 없음.

주말엔 9시 출근, 6시 즈음 퇴근하는 25년 차 자영업자 부모님의 삶을 돌아본다. 부모님이 나를 낳기 전에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 전혀 알 수 없지만 내가 기억하는 순간부터 부모님에 대한 인상을 말하라고 하면 굉장히 바쁘게 살아오셨다는 것이다. 성실하다면 성실하고, 일만 했다면 일만 한 그런 삶. 나는 그래서 부모님이 자기 자신에 대한 투자를 미루고, 미루는 사람으로 기억된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고 싶다고 몇 년 전부터 이야기를 하셨지만 언니가 대학을 졸업하면 가시겠다, 내가 졸업하면 가시겠다, 그렇게 미루셨다. 나로서는 부모님께서 돈이 없으신가, 하는 생각과 동시에 무릎이 더 아프기 전에, 그러니까 기회가 있을 때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은 홈쇼핑에서 구매한 저렴하게 나온 옷을 입었다. 엄마는 출퇴근 가방으로 언니와 내가 다녔던 태권도학원 가방을 들고 다니고(튼튼해서 들고 다닌다고는 하셨다.), 와인은 먹어본 적도 없고 파리바게트에서 파는 포도맛 스파클링 샴페인을 처음 마셔보고는 너무 좋아하셨다. 사회생활용 취미 이를테면 골프, 악기, 요리, 그림 등의 취미가 있는데 부모님은 일절 없으셨다. 대학에 와서 친구들 부모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승마를 취미로 하는 분도 있었고, 스크린 골프장 다니는 분도 있고, 낚시하시는 분도 있고 뭐 다양했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이 취미 없이 사신 점이 좀 속상했고, 그 생각이 부모님은 본인들에게 투자를 안 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하는 연결고리가 되었던 것 같다. 특히 아빠가 입버릇처럼 근검절약, 외식보다 집밥, 돈을 모으려면 작은 거 하나하나 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등을 말씀하셨기 때문에 더욱더.


우리 집이 가난하지는 않다. 다만 15년 동안 같은 차를 탔고, 정시에 출근해서 될 수 있는 한 많은 일을 잡으려고 했고, 기회가 있으면 여름과 겨울엔 국내의 산과 바다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나로서는 보통의 삶이라고 생각이 들고, 어떤 면에서는 축복받은 삶이라고까지 느껴진다. 세상은 넓고 많은 경험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부모님이 해보지 않은 좋은 경험이 많이 존재한다는 게 자식으로서 아쉬운 마음이고, 한편으로는 그렇게 즐기고 살아가시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는데 연로하신 부모님과 여전히 대학에 다니는 딸을 부양하느라 참 고생이 많으시다고, 그런 생각이 든다. 다만 나의 편견도 있었다. 부모님은 스스로에게 투자하지 못하는 분이라는 편견 말이다. 그들은 그들의 삶에 가치 있는 일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오셨고, 훌륭한 삶이다. 단지 고급스럽지 못했다고, 돈 때문에 해보지 못한 일이 있어서 그들의 삶이 아쉽다는 나의 생각은 거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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