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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오십 Nov 16. 2023

바라는 것과 부러운 건 다른가.

Dried Flower - Yuuri

생각이 많은 건 지양하고 생각이 깊은 건 지향하기로 하자.

근래 생각이 과다해서 숨 쉬는 것조차 잊을 때가 있다. 지금 가진 생각만 해도 이거 해야지, 저거 해야 지하는 계획이 10%, 후회, 걱정, 비교와 같이 내가 지금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이 90%로 총 100%, 남은 용량이 없다. 이러니까 피로할 수밖에…

눈알이 더 이상 정보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며칠째 모모라는 책을 찔끔찔끔 읽고 있다. 어째서 책을 읽고 싶다는 욕구는 영상매체를 싹 훑고 나면 드는 건지.. 소설을 집중해서 읽으려다가 피로해서 그냥 불 끄고 잔다.



내년 2월이면 자취방 계약이 끝난다. 그래서 다음엔 어디서 살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 내 상황이 그리 어두운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엄청 밝은 것 같지도 않다.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건 딸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그런데 난 부모님과 같이 살고 싶지 않다. 부모님과 같이 있으면 ‘나’ 개인보다 ‘딸’로서의 정체성이 더 커져서 내가 안 보여서 답답하다. 그렇다고 돈을 마련해서 자취방을 마련하자니 부모님 집에 산다는 경제적 이득이 아른거렸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어쩐지 내 마음을 알겠다. 돈을 벌어서 내 집에서 나다운 것을 바라고 있다.



서울에서도 살고 싶고 중소도시에서도 살고 싶다. 전혀 다른데 왜 그 두 곳일까.

서울은 즐길 거리가 많아서 먹고 놀러 가고 싶다. 근교는 아늑하고 정겨운 내 집, 내 영역임을 확실하게 느낄 것 같다. 서울에서는 어떻게 살지 이미지가 없지만 - 내가 가진 경제적 여건에서는 그리 멋진 집이 아니고, 게다가 많은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굳이 상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가망이 없다고 한계지은 일은 상상조차 어렵다. -근교는 나름 생각한 설계가 있다. 24평 규모의 집과 10평의 작업실. 나름 설계도도 그려봤었다.



정리해 보니까 내가 바라는 건 ‘리틀 포레스트’고 내가 부러워하는 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이다.

바라는 것과 부러운 건 다르다는 걸 새삼 느낀다. 바라는 건 나의 의지에 의해 될 수 있다고 믿는 쪽에 가깝고, 부러운 건 바라는 것까진 아니지만 어느 조건이 부러운 것이다. 바라는 건 조금 더 리얼리즘에 기반하고 부러운 건 판타지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동화 속 판타지에서 깨어나면 어른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할 수 있나. 아무튼 부러운 것에 대해서 금세 체념하는 태도는 괜찮은 건지 생각해 볼 일인 것 같다. 왜냐하면 어떤 일에 대해서 판타지라고, 일어날 수 없는 환상이라고 믿으면 스스로 한계 짓는 행동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쩌면 판타지를 판타지로 이름 붙일 수 있는 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 후일 것이다.


삶에 대한 일면의 진실이라고 해도 말로, 혹은 글로 표현되었을 때 그런 말의 규정이 삶을 제한하고 왜곡시킨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방금 나는 바라는 것과 부러운 것에 대해서 글로 썼고 어느 정도 진심에 다가섰지만 그 문장은 내 삶을 제한하는 단초가 될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아무튼.. 그냥 그만 생각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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