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isis - 엔니오 모리꼬네
살다가 갑자기 몸이 아플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숨을 고르고, 지금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게 뭔지 생각한다. 오늘은 눈에 다래끼가 났고, 나는 생각이 과다하다.
어제 즉흥적으로 사흘 전부터 구상하던 소설을 브런치에 올렸다. 아니, 심사숙고해서 올린 거다. 혼자서 마감을 반복하려니 썼던 글을 수정하고, 또 수정하는 데에만 시간을 쏟게 된다. 뭐가 좋은지 나쁜 건지도 아직 잘 모르는데 말이다. 아무튼 그래서 정기적이고도 공개적인 마감이 필요했다.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1년, 더 길게보면 5년 묵은 생각이다.
무엇이든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것 같다.
해보고 잘 안되면 그냥 해본 거고,
해봤는데 잘 되면 잘 된 거다.
글을 쓰면서도 수도 없이 굳이 내가 이 글을 써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되묻게 된다. 세상에는 수많은 글이 있는데 그중 내 글은 정말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이유는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다. 책을 읽고 싶으면 책을 읽듯이, 나는 글을 쓰고 싶어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내가 글을 쓰는 게 ‘욕심’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욕심은 분수에 벗어나게 행동했을 때 욕심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나는 글을 써봄으로써 매 순간 스스로를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글을 써서 공감받고 싶은 마음이 정말 욕심이었는지에 대해서.
처음엔 해보고 싶어서 해보고,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해보는 거고, 그 과정에서 바라는 결과를 얻지 못해도 그 작업과정이 나에게 가치 있는 일이라면 그냥 계속해볼 수 있는 것이다. 끝이 있는 도전이 아니라 내가 살아있는 한, 하고 싶은 만큼 계속. 만약 일이 가져오는 외부효과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이라면, 그러니까 쉽게 말해 재보다 잿밥에 관심이 있다면 당장의 성취나 결과에 대해 늘 아쉽고, 쉽게 좌절할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글 쓰는 일이 어떤 외부효과를 향한 ‘욕심’이었는지, 어떤 일이 다가올 것임을 직감하는 ‘에피파니’인지는 까봐야 아는 것이다.
착각이었는지 아닌지는 꿈에서 깨어나야 알 수 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에서 현실은 모두 왜곡된 착각일 수밖에 없다. 손에 들린 초콜릿 상자를 계속해서 열어보는 것이다. 시험하고 또 시험해 보는 것이다. 내 사랑이 어디까지인지, 내 헌신이 어디까지인지. 언제까지 꿈꿀 수 있는지. 그전까지는 모두 우리는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글을 잘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 말이다. 꿈에서 깨어나면 그게 착각이었는지, 욕심이었는지 알 수 있겠지. 어떤 경우에는 꿈이 현실이 되어있을 수도. 근데 가끔 꿈속의 꿈과 같은 함정도 있음을 잊지 말자.
짝사랑은 불공평하다는 감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내가 이렇게 너를 좋아하는데, 너는 나를 한 번도 봐주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에 혼자 우울해진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다르게 생각한다. 너에게서 보답받으려고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어서 그냥 큰 사랑을 하고 있다고 마음먹는 것이다.
때로는 현재 상황을 착각해서 내가 사랑하는 일이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란다. 하지만 그건 낙천적 상상일 뿐이다. 오히려 내 문제는 현실의 내가 해결하고 사랑은 순수하게 남겨두는 것이 더 성숙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묵묵히 해내는 것은 더 이상 짝사랑이 아니다. 자연이 인간을 대하는 것처럼 그냥 받아들임, 그저 포용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가끔은 자존심 상하기도 하고, 속이 타기도 하고, 수치심도 들다가 지쳐서 아주 오래 기다리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모든 과정이 무뎌질 것 같다.
늘 스스로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단번에 실망해서 돌아서지 않기로 한다. 계속해서 시도해 봄으로써 인생에 주어진 수많은 선물상자를 계속 열어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뽑기가 그러하듯 당첨과 꽝이 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당첨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나에게 계속해서 뽑기권을 선물할 것이다.
그러니 부디 지치지 않게, 견딜 수 있을 만큼만 좋아하려고 한다. 큰 사랑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조금은 거리를 두고 글쓰기를 이어나가길 바란다. 나는 오늘 짝사랑을 한다는 감정에 다래끼가 난 것 같다. 오래도록 꿈을 꾸는 방법은 매일 밤 잠에 드는 것이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운 좋으면 꿈꾸는 날도 있겠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