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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오십 Dec 22. 2023

시골 이미지.

500 miles - Peter, Paul & Mary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집안 모두 김제에서 터를 잡으셨고, 부모님도 김제에서 태어나셨다. 그리고 이어서 나도 김제에서 보살핌 받았다.


전에 귀촌이 유행이었던 적이 있다. 도시생활에 지치거나 새로운 삶의 형태를 찾아서 부모님 혹은 조부모가 터를 일궜던 땅으로, 혹은 연고는 없지만 나를 받아줄 새로울 장소를 찾아 지방 소도시, 소도시라고 불리기도 뭐 한 아주 조그마한 시골마을로 내려오는 일 말이다.


간혹 어떤 사람은 시골은 폐쇄적인 곳으로 원주민의 자식들이 아니면 어울리기 힘들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얼마 전에 인터넷을 떠돌다가 시골에서 2년 만에 새 생명이 태어났고 그래서 마을 곳곳에 플래카드가 걸려있다는 글을 봤다. 댓글 반응은 대개  ’ 현수막 여러 개 걸만하다.’, ‘개인적으로 부담스러울 것 같다.’, ‘정말 축하할 일이 맞다.’ 등의 반응이었다.

그중 ’ 이거 전에 봤는데 2년 만에 태어난 게 순수하게 저 마을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 사이에서 2년 만이래요. 외지인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애들은 제외하고…‘라는 댓글이 있었다. 그 댓글에 대한 답 댓글은 이렇다.

 

- 오.. 외지인 취급 알만하네요.

 - 훈훈한 댓글 달라고 했는데 아앗…


외지인. 단어 하나에 선이 그어져 있다.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것 같이 원주민과 외지인으로.


그 마을이 외지인을 어떻게 ‘취급’했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댓글만 보면 시골은 마치 외지인을 차별하는 게 디폴트로 보인다. 서울 사람들, 특히 지리를 서울 내부만 잘 알고 그 밖의 지방을 모르면 다 시골이라고 한다. 그러면 서울에 사는 서울에서만 자라온 사람들은 지방에 대한 인식이 차별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박혀버릴지도 모른다. 무지나 미지의 것은 공포의 탈을 쓰고 춤을 춘다. 우리는 그 탈을 벗겨내야 한다.




1) 공동체 의식.

 


외할머니가 거주하시는 마을을 떠올려봤다. 총 17 가구 정도가 3km 반경 내에 모여 살고, 근처에는 경로당이 하나, 정미소가 하나 있다.


주민 분포를 보면 일단 우리 할머니 집, 그리고 그 뒷집에는 할머니의 언니, 즉 큰할머니 집, 그리고 큰할머니 집 옆에는 큰할머니의 둘째 아들이 살고 있는 집, 그리고 그 대각선 집은 어느 먼 친척의 어떤 집… 이런 식이다. 추석 때 할머니 집을 가면 가끔 큰할머니 집 손주들과도 마주치기도 하고 몰랐던 먼 친척과의 조우가 기다리고 있다. 나도 어릴 땐 알지 못했는데 주변이 다 먼 가족, 혹은 오랜 친구의 집이었다.


즉, 정리하자면 시골마을은 집성촌이다. 1970년 무렵에 고속도로가 건설된 걸 떠올려보면 그전에는 도로 인프라도 잘 구축되어 있지 않았고, 과거의 시골엔 지금의 핵가족 단위가 아니라 전통적인 대가족, - 삼촌 숙모 이모 이모부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사촌 나 - 이렇게 한 집에 사는 게 일상이었다. 그 집에서 자고 나란 아이가 청년이 되어 분가하면 그 옆 집, 혹은 그 뒷 집에서 따로 살았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도 또 다른 가족이 생기고 몇몇 자식은 시골에서, 몇몇 자식은 도시로, 그렇게 각자의 삶을 사는 것이다.

 할머니가 살고 계신 마을도 이와 같은 경우로 어찌 보면 하나의 작은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오래전으로 거슬러가면 혈연으로 이어져있는 것이다. 외부에서 살다가 원주민에 땅에 들어온 사람이라면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공동체 의식이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만의 역사와 정. 그리고 나도 이 땅에서 환대받고 싶은 마음.


2) 라이프 스타일.


시골에서 사는 사람들이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도 이 쟁점에서는 중요한데 원주민의 경우는 논과 밭을 일구는 게 그들의 삶이다. 눈뜨면 나가서 밭을 매고 논을 살피고 계절의 흐름에 따라 움직인다. 겨울에 해가 18시쯤 지기 시작하면 20시에 잠에 든다. 그리고 4시에 일어난다. 삶과 농업은 뗄 수 없다.

반면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에 온 사람들은 직업이 다양할 것이다. 농사를 짓겠다고 온 사람이면 다르겠지만 그 외의 직업군의 경우 일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남는 저녁 시간, 혹은 비는 시간에 이웃과 친밀함을 나누고자 찾아가면 집이 비어있고, 혹은 잠을 자고 있는 그런 일은 비일비재할 것이다. 이웃의 정이 없다기보다 이웃의 정을 나누려면 좀 더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길게 봐야 한다. 시골의 시간은 도시보다 느리다.




이런 배경지식이 있을 때, 나의 관점에서는 ‘시골에 살던 사람들은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만을 축하했다.’라는 문장보다 ‘시골에 살던 사람들은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축하했다.’가 자연스럽다. ‘시골사람들이 외지인 아이는 현수막도 안 걸어준다.’가 아니라 ‘시골사람들이 외지인 아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가 더 자연스럽다.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환영받아 마땅하다. 안에 살던 사람은 새로 온 바깥사람을 환대해야 한다. 한 마디로 서로 인사해야 한다.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원래 존재하던 공동체의 땅 위에 서 있어서 그들의 입지가 작을 수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모든 걸 가라앉히고 굳혀버린다. 결국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온 사람도 한 세대가 지나면 원주민이 되어있다.


이런 점에서 나는 ’ 오.. 외지인 취급 알만하네요.‘라는 문장이 유감스럽다. 외지인을 취급하다니. 시골이, 외지인을 어떻게 취급했는지 알만하다니요.

설령 인터넷에 올라온 그 동네가 진심으로 한 집만 편애하려는 데서, 더 크게 보면 외지인을 차별하려는 의도에서 그랬다면 나 역시 그런 동네에서 살지 않겠다고 결심할 것 같다. 하지만 이건 다 인터넷에 올라온 단편적인 정보고, 해석은 제각각이다.

대도시에서 자라나 시골을 전혀 경험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지방에 대해 가지는 감정이 공포일까 봐 조바심에 글을 썼다. 왜냐하면 나도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공포, 두려움을 느끼면 그걸 피하고 싶어 한다. 이대로 오해가 쌓이다 보면 교류도 없어지고 결국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서로 미워만 하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 댓글을 쓰신 분도 경험한 바가 있으시거나 해서 쓴 댓글일 것이다. 그분의 생각도 존중한다. 하지만 그 사람의 문장 하나가 어떤 사람의 시골에 대한 큰 인상으로 남아버리는 건 너무 안타깝다.


그 동네에 새로 온 입주민들에게 환대하는 따스함이 있었을지, 아니면 무관심이 있었을지 누가 아는가. 언제나 소문은 제삼자가 건너들은 이야기에서 부풀려진다. 특히 혐오는 잘 부풀려진다. 이에 대해 시골이 고향이고 지금은 도시에서 사는 사람이 글을 써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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