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퇴가 아니라 정시 퇴근입니다."
고독하고 괴로운 취준생 신분에 마침표를 찍고, 사회에 첫 발걸음을 내딛었을 때에는, 나도 무릇 다른 파릇파릇한 신입사원과 다를 것 없는 '열정' 가득한 신입사원이었다.
(지금은 열정 페이니 열정 착취니 등등의 신어들로 '열정'이라는 단어가 현시대의 청년의 간절함이 고통으로 진화되어 쓰이는 것에 마음 한편이 무겁다.)
남들보다 늦게까지, 남들 보다 더 많이 일하면 인정받을 수 있고, 꿈꿔왔던 커리어 우먼으로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한 달 남짓한 시간 내내(출근 첫날부터) 12시 퇴근을 감행하고 왕복 네 시간의 통근 시간을 견뎌내며 스스로를 다그쳤더랬다.
하지만 그 한 달 중 단 하루, 8시 반쯤 짐을 싸고 나가려는 나에게 그 직장에 완전히 동화된(야근과 갖은 핍박과 일더미에 완전히 적응된) 대리님께서 말씀하셨다.
" 어딜 가, 맨날 늦게 가고 나서 오늘은 왜 일찍가. 나 갈 때까지 가면 안 되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에서 팡하고 깨질 듯한 총성이 들렸다.
무한리필처럼 "뭐 더 도와드릴 일 없을까요?" 하면 나오고 또 나오는 일을 군소리 없이 하고, 또한 일이 없어도 주야장천 앉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퇴근시간이 훌쩍 지난 8시 반에 퇴근하며 저런 볼멘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서러웠던 것이다.
그때 처참히 깨달았다.
이미 사회로 나간 선배들의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말이다.
회사에 일방적인 헌신은 절대 하지 말라는, 당시 내 귀에는 약아빠진 게으름뱅이가 하는 소리로 들렸던 그 말이 얼마나 현명한 조언이었는가를 말이다.
한 편, 정말로 6시에 퇴근을 하더라도 저런 말에 "칼퇴가 아니라 정시 퇴근입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스스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대한민국에 정말 노력한 만큼 인정받을 수 있는 회사가 몇 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다닌 두 곳의 회사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사회가 싫고, 고작 칼퇴, 아니 '정시에 퇴근할 수 있는 곳' 이 '꿈의 직장'이라는 이름이 붙어 생색을 내는 이 나라가 싫다.
고용자의 권리뿐만 아니라, 피고용자의 권리도 '당연하게'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지기를 간곡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