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에게 어른이 돼서 가장 좋은 게 무엇인지 묻는다면 그건 나에게 나만의 냉장고가 생겼다는 거다. 나의 냉장고는 일반적인 가정집에서 볼 수 있는 800리터에 달하는 양문형 냉장고는 아니지만, 5인 가족으로 살 때 내가 운영할 수 있었던 냉장고의 평수보다는 훨씬 큰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냉장고 운영에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은 단순하다. 냉장고를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이다. 가령 내가 싫어하는 멸치 같은 것들로 냉장고를 채우면, 그것은 더이상 냉장고가 아니라 음식물 쓰레기통이 된다.
몇 달 전, 엄마 아빠가 신혼집을 구경하고 싶다며 대구에서 올라왔다. 아빠는 내가 멸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몇 번이나 거절했음에도 멸치볶음을 우리에게 꼭 만들어주고 싶다고 하셨다. 엄마 아빠의 말에 따르면 멸치는 칼슘과 오메가-3, 그리고 단백질이 가득해서 몸에 아주 좋다는 것이다. 아빠는 기름도 두르지 않은 후라이팬에 멸치를 휘휘 볶아 담백한 멸치볶음을 완성했다. 정성은 고마웠다. 하지만 그날 아침으로 멸치볶음을 먹고 나서도 멸치는 1L 우유 두 팩만큼이나 남았고, 우리는 그 후로도 남은 멸치를 한 번도 건들지 않았다. 그것은 여전히 냉장고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냉장고에서 멸치 같은 것들을 버리고 싶다. 내 입에는 맞지 않기 때문에.
내 삶에도 멸치 같은 것들이 있었다. 내 삶의 멸치는… 그런 것들이었다. 모두가 피아노를 배우기 때문에 피아노를 배우고, 실은 애니멀커뮤니케이터에 관심이 있었지만 장래희망은 수의사라 말하고,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 대신 번듯한 직장과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을 만나고,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 취업이 잘 되는 전공을 선택하는 것. 하지만 막상 경험해보니 남들에게 좋아 보이는 것들이 나에게도 좋은 건 아니었다.
중학생 때 나는 빵과 쿠키를 자주 구웠다. 사과를 볶아 시나몬 향이 나는 애플파이를 구울 때면, 케이크를 만들기에 완벽한 시트를 연구할 때면, 서너 시간이 10분처럼 느껴졌다. 이 우주에 나와 베이킹, 둘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나는 냉장고를 달걀, 버터, 밀가루, 생크림, 아몬드 가루 같은 것들로 채우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공부를 하라고 했다. 지금은 공부를 할 때이니. 너무나도 지당한 말이었다. 나는 나조차 설득시키지 못했다. 하루에 10만명이 가끔 방문하기도 했던 베이킹 레시피 블로그를 접고, 매끈한 마카롱 꼬끄 만들기에 끝까지 성공하지 못한 채 나는 패잔병처럼 학교와 학원으로 돌아갔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시간이 다시 나면 취미로 베이킹을 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굽는 쿠키에서는 그 맛이 나지 않는다. 그 때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그 황홀함을 내 손으로 지워버린 것을 후회한다. 행복은 저장해두고, 원할 때 꺼낼 수 있는 예치금 같은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삼십대가 된 나는,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는 설득이 필요없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스스로 설득시킨다. 마음이 가면 하고, 마음이 가지 않을 때 자유롭게 그만! 이라고 외쳐도 된다고. 나는 좋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좋은 것을 취하고 싶다. 이제 나의 냉장고에, 멸치를 위한 자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