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자연이 빚어낸 장맛의 고유함_장 담그기
메주같이 못생긴 게
예전에는 외모나 생김새를 가지고 놀릴 때, 메주에 빗대곤 했어요. 메주를 점차 찾아보기 어려워지면서, 이런 말도 잘 들리지 않는 듯 해요. 메주는 건조되고 발효되는 과정에서 표면이 쩍쩍 갈라지고 틈이 생겨요. 그 사이를 수백 종의 미생물이 파고들어 흰색, 검은색, 노란색, 푸른색으로 물들이죠. 생긴 건 못나보여도, 메주는 전통 장류의 풍미를 결정하는 핵심이자 정수예요. 메주가 장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살펴보면, 더 이상 메주를 못생겼다고 놀릴 수 없을 거예요.
메주를 만드는데 사용하는 콩은 주로 메주콩이라고 불리는 백태예요. 삶기 전에는 은은한 상아색을 띄는데, 삶고 나면 암평아리처럼 진한 노란색으로 변해요. 보통 가마솥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의 많은 양의 콩을 한꺼번에 삶는데, 콩 삶는 냄새가 얼마나 구수한지는 맡아본 사람만 알 수 있어요.
참기름이나 들기름의 고소함이 강렬하게 날아오는 스트레이트 같다면, 엄청난 양의 콩이 한꺼번에 삶아지면서 풍기는 고소함은 마치 쉴 새없이 잔잔하게 날아오는 잽과 같다고 할까요. 당장 콩이 삶아지고 있는 가마솥을 열어 콩을 퍼먹고 싶을 정도로 구수한 향이 피어오릅니다.
요즘은 메주나 된장은 물론, 두부도 비싼 국산 콩 대신 값싼 외국산 콩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외국에서 수입한 콩은 유전자조작을 한 GMO콩이 대부분이라, 외국산 콩으로 만든 된장을 보면 유전자변형식품이라고 적혀있는 걸 쉽게 찾아볼 수 있어요.
단백질이 남아 있지 않으면 표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법의 헛점을 파고들어, 간장에는 따로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역시 대부분 유전자조작을 한 GMO콩을 사용하고 있어요. 두레생협에서는 최대한 GMO 농산물 사용을 배제하기 위해, 국산 유기농 콩이나 국산 콩을 사용한 간장과 된장만을 공급합니다.
겉으로 봤을 때는 장 담그는 과정은 어느 집이나 비슷해보여요. 하지만 하나하나 살펴보면 집집마다 자신들만의 노하우가 구석구석 배어 있어요. 오랫동안 집안에서 내려온 방식일때도 있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얻어낸 비법일때도 있어요.
메주콩 삶는 방법을 한 번 볼까요. 보통은 콩을 불려서 삶는데, 고소함을 더하기 위해 콩을 불리지 않고 바로 삶기도 해요. 콩을 삶는 시간과 뜸 들이는 시간의 비율도 다 다르죠. 그마저도 날씨에 따라서 생산자가 재량껏 조절하기도 해요. 메주를 빚는 모양도 집집마다 달라요. 좁고 기다란 네모 기둥으로 빚기도 하고, 널따란 정사각형 모양으로 빚기도 해요. 온도와 습도 등 각기 다른 발효환경에 따라 메주의 모양도 달라지는 거죠.
한겨울의 찬바람을 맞아가며 콩을 삶아 빚어낸 메주는 발효과정에 들어가요. 각자 비법대로 하루나 2~3일 정도 메주 표면을 말리는 겉말림 작업을 한 뒤, 메주방이라도 부르는 발효실에 넣어 메주를 띄워요.
메주를 띄우는 방식도 지역마다 집집마다 조금씩 달라요. 짚을 사이사이 까는 곳도 있고, 짚 없이 공기 중의 발효균만을 이용하기도 하죠. 벽에 황토를 바른 황토방에서 띄우기도 하고, 메주에 이불을 덮어 보온을 하기도 해요. 나무 건조대를 이용해 처음부터 메주와 메주 사이를 띄어 놓는 곳도 있고, 겹쳐 놓은 메주를 일일이 뒤집어 가며 발효 정도를 조절하는 곳도 있어요.
왜 이렇게 메주를 띄우는 방법이 제각각인지 궁금해졌어요. 그건 아마도 발효 환경과 발효균의 구성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메주의 발효과정에는 누룩균, 고초균, 젖산균을 비롯해 약 800여 종류가 넘는 미생물이 관여한다고 알려져 있어요. 미생물의 구성은 지역마다 집집마다 조금씩은 다를 수 밖에 없고, 그 미묘한 차이가 띄우는 방법도 달라지게 하는 거죠.
발효균의 차이는 바로 옆집이라도 장맛이 달라지는 이유이기도 해요. 미생물은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다보니 심지어 같은 집에서 같은 방식으로 메주를 띄워도 해마다 장맛이 약간씩 다를 수 있어요. 그래서 장 담그는 생산자들은 매년 날씨나 자연의 변화에 맞춰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며, 최대한 비슷한 장맛을 유지하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자연과 사람이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발효의 풍미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전통장류만의 특별한 점이라 할 수 있죠.
콩으로 빚은 메주처럼 단백질이 들어있는 식재료라면 발효를 통해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분해되는 과정에서 감칠맛을 배가할 수 있어요. 스페인에서 즐겨먹는 하몽은 돼지고기의 단백질이 건조와 숙성과정을 거치면서 아미노산을 분해되면서 독특한 풍미를 형성해요. 액젓의 일종인 피쉬소스도 생선의 단백질이 분해되면서 감칠맛이 생성되죠.
메주가 잘 띄워지면, 이제 메주를 잘 닦아서 소금물에 담긴 항아리에 넣어 말 그대로 '장을 담그는' 작업이 시작됩니다. 주로정월대보름 전후로 장을 담그는데, 이 시기에 담근 장을 정월장이라도 부릅니다. 날씨가 따뜻한 남부지방에서는 한 달 더 빨리 섣달그믐에 장을 담그기도 하는데, 그 시기에 담근 장은 그믐장이라고 불러요.
장을 담글 때는 대부분 간수를 충분히 뺀 천일염을 사용해요. 천일염을 손을 꼭 쥐면 끈적거리면서 손에 붙기 마련인데, 4~5년 정도 간수를 뺀 소금은 손에 꼭 쥐어도 잘 묻어나지 않을 정도로 보송보송하다고 해요. 가격은 비싸지만, 장맛을 위해 대나무에 소금을 채워넣고 고온에서 구워낸 죽염을 사용하는 곳도 있어요.
장 담그는 염도도 집집마다 조금씩 다른데, 보통 18도에서 20도 사이의 염도의 소금물로 장을 담근다고 해요. 흔히 염도를 맞출 때, 소금물에 달걀을 띄워 500원 짜리 동전 크기만큼 올라오면 된다고들 하는데요, 달걀의 신선도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에, 요즘에는 염도계를 주로 사용해요.
인생은 B와 D사이에 있는 C라고들 하죠. 태어나서(Birth) 죽을 때까지(Death) 선택(Choice)하면서 사는 우리는 다양한 선택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음식점에서 메뉴를 고르는 사소한 결정부터 인생을 좌우하는 엄청난 결단까지 말이죠.
장을 가를 때도 마찬가지예요. 소금물에 담긴 메주는 40~50일 숙성 후에 된장과 간장으로 나눕니다. 된장과 간장은 사실 한 항아리에서 나온 형제인 셈이죠.
장을 가를 때, 된장을 많이 내면 간장의 양이 적어지고, 간장을 많이 내면 상대적으로 된장의 양이 적어집니다. 된장과 간장이 둘다 적절한 양과 맛을 낼만큼 가르는 비율도 집집마다 조금씩 달라요.
장을 가르고 나서 간장은 간장대로 모아 장독에 넣고, 된장은 된장대로 모아 장독에 넣어 다시 숙성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보통 1년 이상 숙성하는데 2~3년 이상 숙성하면 된장의 색은 점차 갈색으로 진해지고, 간장은 맑은 검정색에서 진한 검정색으로 바뀝니다.
간장의 경우. 1~2년 숙성한 간장을 청장, 3~5년 이상 숙성한 간장을 진장이라고 하는데, 간장은 오래 숙성될 수록 혀에서 느끼는 짠맛은 줄고 감칠맛이 올라옵니다. 올해 담근 햇간장에 오래 묵은 씨간장을 넣어서 간장의 감칠맛을 올리기도 하는데요, 집집마다 고유의 장맛을 유지하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매년 씨간장이 증발되거나 사용해서 줄어든 만큼, 햇간장을 더해 맛과 양을 유지하는 것을 덧장이라고 하는데요, 우리나라에만 있는 고유한 장 문화라고 해요. 수십년 때로는 수백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내려온 씨간장은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무슨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도 더 만들 수도 없어요. 오랜 시간 조금씩 쌓인 내공은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듯이 말이죠.
바깥에 둔 장독에서 장을 숙성시키는 건 마치 아이를 돌보는 일과 비슷해요. 해가 잘 드는 날이면 수백 개의 장독 뚜겅을 일일이 열어 햇볕과 바람을 쐬어주어야 해요. 유리뚜껑을 쓴다고 하더라도 뚜껑을 여닫는 수고는 여전하죠. 독에 쌓이는 먼지도 일일이 닦아주어야 하고요. 전통 장류의 장맛은 말 그대로 사람과 자연이 빚어낸 결정체라 할 수 있어요.
전통 방식으로 담그는 장류는 식품공전 상으로 한식간장, 한식된장으로 분류됩니다. 두레생협에 한식간장이나 한식된장을 공급하는 생산자들은 대부분 가족끼지 소규모로 장을 담그고 있어요. 콩 농사를 짓다가 아니면 장맛이 좋다고 주변에서 좀 담가서 팔아달라고 해서 시작하게 된 분들이 대부분이죠.
사실 시중에 값산 된장이나 간장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전통 방식으로 한식간장, 한식된장을 담그는 건 큰 돈이 되는 일은 아니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시는 이유가 생산자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어요. 어떤 분들은 지금까지 이어온 이 장맛을 누군가는 계속 이어야한다는 사명감을 언급하기도 했고, 또 다른 분은 사라져 가는 장맛이 안타까워 힘들어도 유지해야 한다는 의무로 하고 있다고도 하더라고요.
최근 식품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장류 생산에도 HACCP(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고 해요. 공장에서는 콩과 물과 소금을 정해진 비율대로 넣고, 황국균 위주로 정해진 미생물을 인위적으로 주입하여 발효를 하고, 대형 스테인리스 용기에서 숙성을 합니다.
식품 안전의 위해요인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을 중시하는 HACCP제도에서는 외부에 노출된 항아리에서 장을 숙성하는 것도, 공기 중의 미생물을 이용해서 메주를 띄워 독특한 장맛을 내는 것도 불가능해요. 결국 집집마다 고유의 장맛은 사라지고, 공장에서 찍어나온 천편일률적인 장맛만 남게 되는 거죠. 만약 노포를 다 없애고 프랜차이즈 음식점만 남긴다고 하면 좋아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맛의 다양성을 스스로 없애버리는 것이 과연 우리를 위한 길인지 묻지 않을 수 없어요.
작년 이맘 때, 외할머니가 하늘나라에 가셨어요. 장례가 끝나고 서둘러 돌아온 일상에서 냉장고 문을 열다가 외할머니가 생각이 나더라고요. 직접 기른 들깨를 시골 방앗간에서 짜서 주신 들기름병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걸 봤거든요. 구수한 외할머니표 된장은 이미 마지막 된장찌개로 사라진지 좀 됐어요. 비어있는 된장그릇을 보면서 완벽한게 같은 맛을 내는 된장을 세상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찾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얼마 전 비슷한 맛을 내는 한식된장을 찾았어요. 된장찌개 한 숟갈을 떠먹으면서 그 맛과 추억을 되새기는데 어찌나 위안이 되던지요. 전통 장류를 이어가는 모든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매년 장을 담근다는 건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맛의 추억을 끊임없이 되새기고 이어가는 일이라는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