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뿔싸, 엄마의 걱정이 기우가 아니었구나. 버스를 보더니 엄마가 깜짝 놀란 얼굴로 내 쪽을 향해 급하게 건너 오라는 손짓을 했다. 엄마의 손짓을 보자마자 몸을 돌려 다시 육교 방향으로 달렸다. 계단은 어찌나 많은지 뛰어서 오르려니 허벅지가 쥐 날 듯 아팠다. 평소에 스쿼트라도 해둘걸. 무릎에 정장 치마가 걸려 달리기 몹시 불편했으나 달리 방도가 없었다. 유난히 경쾌하던, 전화받았던 선배의 목소리가 다시금 떠올랐다. 멀리서 엄마가 난감한 표정으로 버스 기사에게 무언가 얘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겨우 반대편에 다다르자 엄마가 등짝을 때렸다.
"으이구~ 내가 뭐랬어? 기사님한테 말씀 드려놨으니까 얼른 타!"
"헉헉...아 힘들어, 알았어...진짜 다녀올게요!!"
버스 계단 앞에 서자 스포츠머리에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기사님이 눈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저 때문에 죄송합니다.. 제가 반대편에.."
"괜찮아요. 타세요."
첫출발 지점이라 자리가 모두 비어 있었다. 적당히 중간 즈음 자리를 잡아 아직도 벅찬 숨을 골랐다. 오늘은 진지하게 시작하나 했는데 아침부터 시트콤이네. 사회인은 무슨, 엄마 도움 없으면 출근도 못할 뻔했다. 엄마에게 간단히 문자를 보냈다.
- 첫날부터 지각할 뻔. 덕분에 감사해요!!
시내에 가까운 정류장으로 향할수록 타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 어제가 주말이었는데도 하나같이 노곤하고 지친 기색이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나에게는 학생에서 사회인으로서의 전환점이 되는 이벤트 같은 날이었지만, 그들에게는 그냥 연속적인 일상 중 하루일 뿐일 테니. 겨우 주말의 시간으로 누적된 피로를 풀기엔 부족하겠거니 생각이 들었다.
편한 옷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모나미 정장룩을 입은 나는 조금 눈에 띄었다. 게다가 올림머리까지 했으니 누가 봐도 첫 출근하는 사람 같아 보일 것이다. 회사가 가까워질 즈음에 내 옆자리에도 한 중년 여성 분이 앉았다. 단발머리에 뾰족한 턱, 안경을 쓰신 분은 날 흘끗 보더니 슬쩍 물었다.
"신입사원이에요? 인사노무팀?"
직원이 500명이라는데, 벌써 소문이 난 건가.
"아, 네.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아 네~ 얘기 많이 들었어요."
얘기? 벌써? 무슨 얘기? 마음속에 수많은 질문이 떠올랐지만 그저 어색하게 웃었다. 버스 안이 조용했다. 내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는 게 보였는지 중년 여성이 푸념 섞인 말을 늘어놨다.
"어유, 아주 어제까지 출근했더니 피곤해 죽겄어."
"어제도 출근을 하셨어요? 주 5일제 아닌가요?"
주 5일 제라는 말을 듣자마자 여자가 달나라 단어라도 듣는다는 듯 허탈한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공장에 주 5일제가 무슨 의미야? 특근하라고 나오면 나오는 거지. 일요일에도 몇 명은 필요하다는데 어째, 내가 반장인데."
"아..."
아 그렇지, 공장은 오피스 직장인들처럼 주말이라고 쉬는 게 아니었지 참. 교대제에 대해 미리 공부하고 온 게 무색했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나중에 사무실 말고 공장 안에도 한번 들어와 봐요. 방진복은 내가 준비해 줄게."
"네, 꼭 그렇게 할게요."
잠깐 대화를 나누다 보니 버스가 회사 정문 앞에 다다랐다.
중앙 건물 6층으로 오라는 안내를 받았던 터라 곧장 그 쪽으로 향했다. 출근시간대라 그런지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는 직원들이 꽤 있었다. 정장을 입은 내게 직원들이 잠깐 시선을 두다 이내 거두는게 느껴졌다. 직원 2명이 내 앞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새로 온 사장 봤어?”
"당연하지, 너 아직 못 봤어?”
"나 라인에만 쳐박혀 있잖냐. 얼굴은 못 봤어도 소문이 어마무시하더라.”
“이번에 장난 아니야.”
오른쪽에 있는 직원은 답하며 검지손가락으로 본인의 관자놀이 주변에 빙빙 원을 그리는 제스처를 취했다.
“아오, 대표 바뀔 때마다 직원들만 죽어나는 거 모르나. 몇 번째냐, 진짜"
"내 말이. 이번에는 또 얼마나 가려나."
맘 같아서는 "왜요? 왜요? 대표님이 바뀌었어요? 근데 몇 번째인데요?"라고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꾹 참았다. 이제 사회인이니 호기심대로 행동할 수는 없다.
6층에 내려 인사노무팀 번호로 전화를 하자, 나덕희 대리가 출입문 앞으로 마중을 나왔다. 면접 때 본 사람이라 그런지, 아니면 이 공간이 너무 낯설어서인지 그 얼굴이 괜히 반갑고 친밀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