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 근로자 박두릅 이야기 4

by 박두릅

마침 통근버스에 대해 궁금하던 차였다. 범주공단은 안녕시 외곽에 위치해 있고, 우리 집은 시의 중심부인 주거단지에 있었기 때문에 거리가 좀 있었다. 자차로 간다면 직통 도로를 탈 수 있어 약 40분 정도로 다닐만했지만, 대중교통을 탄다면 거점을 모두 지날뿐더러 환승도 3번을 해야 하기 때문에 2시간도 더 걸리는 거리였다. 통근버스는 좀 낫지 않을까 싶어 얼른 노선도를 살펴봤다. 정류소마다 탑승 위치의 사진과 함께 출발 시간이 나와있었다. 다행히 우리 집 인근 소방서가 첫출발지점이었다. 대충 보니 회사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걸리겠지만 계속 갈아타야 하는 대중교통보단 훨씬 낫겠지 싶었다.


- 안녕시 두일동 소방서 6:15


"와, 이제 강제 아침형 인간 되겠네."


내가 노선도를 보며 중얼거리자 수향이가 옆으로 와 슬쩍 같이 봤다.


"헉, 6시 15분? 그럼 너 몇 시에 일어나야 해?"


"한 시간 전에는 일어나야 하는 거 아닐까...? 완전 미라클 모닝이네."


"성공하겠다, 야. 근데 소방서 사진이랑 쓰여 있는 위치가 다르네?"


수향이의 말을 듣고 사진을 다시 보니 정말 그랬다. 쓰여 있는 위치는 그냥 '소방서'였지만 첨부된 사진은 소방서 맞은편 도로의 육교 앞이었다. 정문 바로 앞인지, 맞은편인지 당최 알 수가 없어 결국 메일에 하단의 번호로 전화를 해보기로 했다. 첫날부터 통근버스 놓쳐 지각할 순 없었다. 통화음이 가다가 경쾌한 목소리의 어떤 여자 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파서블렌즈 인사노무팀입니다."


"아, 네. 안녕하십니까. 저 이번에 인사노무팀 입사하게 된 박두릅이라고 합니다."


내 이름을 듣자마자 직원이 오버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아이고, 후배님. 어떤 일로 전화를 주셨어요?"


"아, 그.. 우선 보내주신 통근버스 노선도 잘 받았습니다. 죄송하지만 제가 두일동 소방서에서 타야 하는데 탑승 위치가 헷갈려서요."


"거기 탑승위치 사진 같이 있지 않아요?"


"아, 네. 그런데 정류장 이름은 소방서로 되어 있는데, 사진은 맞은편으로 나와 있어서요. 혹시 놓칠까 봐 확인차 연락 드렸습니다."


"아이고, 우리 후배님. 그게 걱정되셨어요? 아직 애기네~ 애기."


"아..."


"푸하하, 농담. 사진 보고 타면 돼요. 맞은편으로 사진이 나와 있으면 맞은편에서 타면 되겠네요."


"아, 네. 그렇군요. 바쁘실 텐데 확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입사일에 뵙겠습니다!"


"네, 곧 만나요. 뿅"

장난스러운 말투를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60초 남짓한 짧은 통화였지만 마음이 묘하게 불편했다. 입사 전부터 소속 팀 선배에게 전화를 해야하는 긴장감이 첫번째 이유였고, 그 선배의 목소리가 상황에 맞지 않게 발랄했던게 또 다른 이유였다. 그래도 위치를 확인했으니 한시름 덜었다. 이제 출근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입사일 아침이 되었다. 여행을 갈 때 말고는 일어나 본 적 없는 시간에 알람이 울렸다. 비몽사몽하기 보다는 몸을 감싸는 긴장감 때문에 정신이 또렷했다. 어딘가 울렁울렁한 마음으로 준비를 하고 면접 때 입었던 정장을 착용했다. 흰 U넥 블라우스에, 무릎까지 오는 검은색 치마, 그리고 검정 자켓을 걸치니 학생 같은 느낌이 제법 가려졌다. 현관으로 향하는데 옷을 갈아입은 엄마가 나왔다.


"엄마, 왜 나왔어?"


"그래도 우리 딸 첫 출근인데 정류장까지 가줄게."


"안 그래도 되는데, 좀 더 자지."


"아냐, 다 준비했어. 얼른 나가자."


초여름 새벽녘의 공기가 서늘하게 느껴졌다. 아직 푸른 빛깔의 바깥 풍경을 마주하니 새삼 공단의 하루는 일찍 시작되는구나 싶었다.


"아, 이제 이 시간에 매일매일 나와야 하다니. 이제 진짜 사회인이구나."


"대학생일 때가 좋았지?"


"응. 그러네. 대학생 때 지금이 좋다는 거 알고 있었는데 새삼 더 느껴진다. 근데 엄마는 힘들었겠지. 매달 나 용돈 줬잖아."


"어이구, 이제 돈 번다고 벌써 철들었네?"


엄마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소방서에서 탄다고 했지? 이제 다 왔네."


"응, 근데 저기 정문 바로 앞 아니고 맞은편에 서 있으면 된대."


"그래? 다음 정류장 보니 정문 앞 지나서 갈 것 같은데. 제대로 알아봤어?"


"응, 회사에 전화까지 해봤어. 걱정 안 해도 돼."


엄마는 아무래도 이상하다며 당신은 정문 앞에 서 있겠다고 했다. 혹시라도 버스가 이쪽으로 오면 잠시 붙잡아 두겠다고. 쓸데없는 걱정이라며 말렸지만 엄마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엄마, 나 건너갈게. 버스 이쪽으로 온댔으니까 너무 걱정 말고. 잘 다녀올게요!"


엄마가 손 흔드는 모습을 보며 길을 건넜다. 하필 횡단보도도 없이 육교를 건너야 해서 더욱 멀게 느껴졌다. 사진에 있던 정류장 위치에 도착해서 핸드폰 시계를 봤다. 6시 10분. 이제 곧 오겠군.


그리고 3분이 더 지나자 내가 서 있는 곳 반대편으로 빨간색 통근버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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