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 근로자 박두릅 이야기 3

by 박두릅

"박두릅씨, 공부하고 있어요?"


감정을 읽기 어려운 목소리가 대뜸 질문을 건넸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면접 때 가장 오른쪽에 앉아있던 뾰족한 인상의 중년 남자가 떠올랐다. 설마 내 팀장은 아니겠지? 싶었는데 이런 깜짝 당첨이라니.


"아, 팀장님. 안녕하십니까! 그런데 무슨 공부 말씀이십니까?"

"이제 인사팀 신입사원 아니예요?"

"예? 아, 맞습니다."

"근데 공부 안 해요? 노동법 알아요? 인사관리 빠삭해요?"

"아... 아니요. 지금부터라도 공부하겠습니다."

"신입사원이 학습하는 자세를 갖춰야지."

"예.. 죄송합.."

"그럼 공부하고 입사일에 봐요."

"예, 들어가십쇼..."


통화를 마무리하려는데 멀리서 엄마가 입모양으로 '연봉'을 만드는 게 보였다. 그럴 분위기가 아닌가 싶어 잠시 고민하다가 내 노동의 가치를 묻는 게 무슨 그리 대수냐 싶어 말을 꺼냈다. 궁금하기도 했고.


"아, 근데 팀장님.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네, 말해요."

"혹시 신입사원 대졸 초임이 얼마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잠시 '쯧'하고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아, 괜히 물어봤나 보다.

"박두릅씨, 자기의 가치는 자기가 만드는 겁니다. 그런 거 궁금해할 시간에 책 한 자라도 더 보고 오세요. 이제 끊습니다."

"예? 아 예... 입사일에 뵙겠습니다."


뚝.

통화시간 1분 16초. 뭐가 지나간 거지 싶어 멍하니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으니 엄마가 물었다.


"회사지? 뭐래?"

"어? 어어.. 엄마 게장 먹고 있어 봐. 잠시만."


엄마 책상 위에 켜져 있는 데스크톱 PC 앞으로 이동해 교보문고 사이트에 접속했다. '근로기준법', '인사실무'와 같은 키워드로 검색해 상단에 있는 책 서너 권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전문서적이라 그런지 가격도 비쌌다. '오늘 지갑의 출혈이 상당하네.' 생각하면서도 별 수 있나. 인사팀장한테 친히 전화까지 받았는데.

결제를 마친 후 반쯤 멍한 상태로 다시 게장 앞으로 향하니 엄마가 재차 물었다.


"왜? 뭔데 그래?"

"아니, 나 입사할 회사 팀장님이거든? 근데, 여기 좀 이상한 것 같아."


엄마에게는 투덜댔지만 사실 안도감이 컸다. 합격 정정 발표가 아니니 다행이다 싶었던 것이다. 찰나였지만 설마하는 마음에 요동쳤던 심장소리가 생각났다. 지갑의 출혈은 앞으로 받을 월급으로 메꾸면 되고 입사일까지 시간은 충분하니 공부는 하면 된다. 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니 그걸로 됐다.


그날부터 중간고사 앞둔 학생처럼 부랴부랴 책을 봤다. 합격 발표 후와 입사 전, 나에게도 이런 공백 기간이 생긴다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하게 보낼 계획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팔자에도 없던 공부라니. 목적도, 범위도 뚜렷하지 않은만큼 의욕도 없었다. 초등학교 때 꾸역꾸역 녹음하던 윤선생 영어공부가 차라리 더 의욕 있었겠다. 마침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던 친구 수향이와 공부한다는 핑계로 매일 카페에서 만나 수다나 떨 뿐이었다.


"야, 근데 이제 입사하는데 뭔 책을 이렇게 많이 샀냐? 실무 하면서 배우는 거지."

"아냐.. 신입사원이 학습하는 자세를 갖춰야지.."


내가 한숨을 섞어 답하자 수향이가 심드렁하게 쳐다봤다.


"뭐래?"

"라고 나의 팀장님이 되실 분이 친히 전화까지 하셨단다."

"뭐? 진짜? 개꼰대네. 입사하기 전에 공부하라고 전화까지 해?"

"그치? 나만 이상하다고 느낀 거 아니지?"

"어. 이상한데? 너 잘못 걸린 거 아니야?"

"아냐, 다 나 잘 되라고 그런 거겠지..."

"널 뭘 안다고 벌써 잘되라고 해?"

"..."


맞는 말이라 더 이상 할 대꾸를 못 참고 입만 뻥긋거리자 수향이가 말했다.


"아냐, 미리 사서 걱정하지 말자. 다 됐고 지금 네 쪽으로 빛 들어오는데 책 보고 있는 거 딱 프사감이거든? 내가 맘에 쏙 들게 찍어줄게. 여기 보지 말고 책 보고 있어 봐."


수향이의 디렉션을 따라 책을 들여다 봤다. 경영학 수업 때 배운 HR 관련 용어가 어지럽게 눈에 들어왔다. 찰칵. 찰칵. 찰칵. 조용한 카페 안을 경쾌한 셔터음이 채웠다.


"자, 봐봐. 장난 아니지?"

"오, 대박. 진짜 잘 찍었다!"


오랜만에 건진 사진에 프로필 사진을 업데이트했다. 사진을 업데이트하니 괜히 기분도 좀 업데이트되는 것 같았다. 올린 프사를 클릭해서 다시 한번 보는데 메일 알림이 떴다.


- 메일 알림 1건 : [파서블 렌즈] 통근버스 노선도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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