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출장을 마치고 매장으로 퇴근한다. 장거리 운전에, 장시간 회의에 지칠대로 지친 상태다. 매장 한 켠에 자리를 잡는다. 흔히 말하는 오후 5시의 그늘이 얼굴을 가득 덮은 그 모습을 보고 써니가 말을 건넨다.
오늘도 고생 많았어. 케이크 한 조각 먹을래?
이렇게 컨디션이 뚝 떨어진 날에는 티라미수를 한 조각 먹어줘야 한다. 스스로에 대한 응원이 필요한 날이다. 포크로 적당히 떠내서 코코아 가루가 날리거나 목에 메이지 않게 조심조심 먹는다. 마음 속 열기를 식혀주는 차가움, 어수선한 머리 속을 풀어헤치는 달콤함, 고민 따위를 고만고만한 일로 일단 덮어주는 고소함을 맛본다. 진하게 내린 아메리카노 한 잔을 곁들이면 평화가 찾아온다.
티라미수의 매력은 층층이 쌓인 '겹'에 있다. 맨 아래 진하게 밴 에스프레소 베이스의 쓴맛, 그 위를 덮은 마스카포네 치즈의 부드러움, 그리고 마지막에 뿌려진 코코아 가루의 쌉싸름함. 어쩌면 오늘의 일상과 닮았다. 장거리 운전이라는 쓴맛을 견디고, 치열한 회의라는 쌉싸름한 가루들과 싸운 후, 마침내 써니가 내어준 달콤한 휴식의 층을 맛보게 된다. 층층이 쌓인 인생의 맛을 한꺼번에 입 안에 넣고 녹여 삼키며 하루의 기억을 정리하고 비운다. 티라미수(Tiramisu)의 어원이 '나를 끌어올리다(Pull me up)'인 것은, 아마도 바닥까지 떨어진 기운을 이 겹겹의 마법으로 다시 밀어 올리라는 뜻일 게다.
‘A Piece of Cake’라는 관용 표현은, 유래는 알 수 없지만 참으로 적절하다.
케이크 한 조각을 나타내는 이 표현의 의미는 우리말로 따지면 ‘식은 죽 먹기’, ‘누워서 떡 먹기’에 해당한다. 우리가 죽이나 떡을 먹는 것처럼, 서양에서는 케이크 한 조각 먹는 것이 특별할 것 없고 심각할 것 없으며 고민 따위 필요 없는 매우 쉽고 간단한 일이었나 보다.
잠시 일상을 멈춰 두고, 케이크 한 조각의 마법을 빌려 오늘 하루를 '별일 없었던 일'로 마무리한다. 포크 끝에 걸린 달콤함이 뇌의 회로를 타고 흐르면, 출장 복귀길의 꽉 막힌 정체도 회의 내내 팽팽했던 긴장감도 입 안에서 티라미수가 녹아 사라지듯 사소해진다.
오늘 하루도 수고한 나에게 건네는 가장 쉽고도 위대한 보상, 나에게 케이크 한 조각은 어쩌면 ‘a Peace of Cake’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