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중 케이크 매장이 가장 바쁜 때를 꼽으라면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한 해 농사를 수확하는 느낌도 든다. 연중에 생일 케이크 구매를 위해 간간히 들르셨던 고객들이 한 번에 한 날에 방문하여 분주하다. 서로 나누는 크리스마스 인사가 정겹다.
문득 산타 할아버지에 얽힌 추억이 떠올랐다.
산타 할아버지가 찾아오지 않기 시작한 것은, 산타 할아버지의 정체가 '아빠'였다는 것을 알아챘을 때부터였다. 모른 척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걸 꼭 아는 체하며 티를 내었다.
게다가 거기서 더 나아가 동심을 망치고 말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머리맡에 양말을 두고 1년 동안의 착한 일을 손가락으로 세며 울지도 않고 잠들었어야 할 예의 그 나이에, '애늙은이'라는 별명처럼 영악스럽게도 터울 많은 형들(그 때 벌써 중학생이던)의 머리맡에 보잘것없는 몇몇 문방구류와 함께 '산타 영모가...'라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남긴 이후부터였다고 할 수 있다. 그 후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못 받은 것은 아니지만, 산타 할아버지는 내 인생에서 영원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렸을 주변 지인들이 이제는 어느덧 엄마 아빠가 되어 산타 행각을 펼치고 있다. 자녀들이 알고도 속아주는 척하는 것만으로도 좋으니 제발 올해까지는 믿어주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준비하는 모습을 본다.
'엄마, 정말 오늘 밤에 산타 할아버지가 오세요?'하면서 똘망똘망한 눈동자로 쳐다보는 모습은 얼마나 순수해 보일까 궁금하다. '산타 할아버지에게 어떤 선물 달라고 할 건데?'하며 슬쩍 귀동냥을 하는 모습 역시 수십 년 전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고픈 모습으로 보인다. 자신은 산타를 믿지 않으면서 자녀에게는 믿음을 강요하는 모순이긴 하나, 그 모습이 위선적이거나 사악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내 어릴 적 선친께서는 나의 조숙하다 못해 발칙했던 행각에 얼마나 상처받으셨을까 이제서야 내심 죄송스러워진다.
올해도 써니의 매장에서 케이크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낸 후, 문득 산타가 찾아오지 않는 크리스마스에 대해 괜히 서운해졌다.
믿지 않아서 믿음이 없어서 내게 발길을 끊은 것이었다면, 다시 당신의 존재를 믿을 테니 제발 찾아와달라고 매달리고 싶어졌다. 울지도 않고 착한 일도 많이 할 테니, 제발 예전처럼 내 머리맡에 자그마한 선물이라도 하나 달라고, 아니 선물 따윈 이제 필요 없으니 그냥 찾아오기만 해달라고 소원하고 싶어졌다.
잠결에라도 찾아와서 '사는 게 참 쉽지 않지? 회사 프로젝트며 매장 돕는 일이며, 어른 노릇 하느라 참 애썼다.'하며 잠든 머리맡을 한 번 쓸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뒤늦은 나이에 철없이 보채고 있다.
내게도 다시 산타 할아버지가 찾아오면 좋겠다,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