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 열전

by 영두리

2006년 매장을 오픈한 후 대략 이십 년 가까이 되다 보니, 우리 매장을 거쳐 간 아르바이트생들도 꽤 많다. 잠깐 근무했던 친구들도 있지만, 수년 동안 함께 지냈던 친구들도 많이 있다. 취업을 위해서, 학업 마무리를 위해서, 결혼과 출산의 이유로 떠나보내고, 다시 새로운 친구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모든 친구들을 세세히 기억하고 있지 않지만, 유독 인상 깊게 기억에 남는 친구들이 있다. 이름은 기억하고 있으나, 동의 없이 실명을 글에 기재하는 것은 맞지 않은 것 같아서 그냥 ‘친구’로 통칭한다.


알바 1호생이었던, 나에게 ‘아저씨’로서의 자리매김을 해주었던 친구. 대학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집안의 많은 부분을 책임져야 했던 그 친구는, 우리 매장 알바와 함께 주변 샌드위치 매장 알바도 병행하며 정말 열심히 지냈다. 매장 운영도 처음이었고, 알바 운영도 처음이었던 우리에게 많은 첫 경험을 안겨 주었다.


유일하게 ‘아저씨’가 아닌 ‘임오빠’라 불렀던 친구도 있다. 유명 축구선수와 이름이 같아서 ‘박선수’라 불렀던 것에 대한 화답이었다. 손재주 많고 꾸미는 걸 좋아했다. 지금은 서비스를 중단했지만, 어버이날 카네이션 증정 이벤트를 준비하며 케이크와 상관없이 작은 꽃집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운전할 때 심심하면 들으라며 MP3 음악파일을 담은 CD를 선물 받기도 했다.


유독 말수가 적었던 친구도 있다.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손님이 와서 ‘이 케이크는 맛이 어때요?’라고 묻는데, 아주 짧게 ‘맛있어요.’라고 답하는 걸 보고 써니가 화들짝 놀랐다. 나중에 불러서 케이크 하나하나 맛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붙여 알려주고 맛보게 했다. 그 후 다른 손님이 와서 맛을 물어볼 때, 거의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써니의 설명 그대로 옮기는 모습을 발견하고 서로 웃었다. 케이크에 익숙해진 후에는 수다가 늘었다. 말수가 적다고 느꼈던 건 선입견이었다.


팔아서는 안될 물건을 손님에게 판매한 친구도 있다. 녹차 롤케이크는 빛에 약해서 쉽게 변색되기 때문에 플라스틱 모형을 전시하고 본 제품은 냉동 보관하는데, 손님 주문에 그 플라스틱 모형을 포장해서 드렸다는 것을 집에 가서 케이크를 펼친 후 깜짝 놀란 손님 전화를 받고 알았다. 새 제품으로 가져다 드리고 그 모형은 회수해 왔고, 그 친구는 레전드 알바로 기록되어 후임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최강 동안이었던 친구도 있다. 매장 마감 후 종종 근처 고깃집에 가서 늦은 회식을 하곤 했는데, 한 번도 예외 없이 모든 식당에서 주민등록증 검사를 받아야만 했다. 앳된 외모와 다르게 똑소리 나고 영어회화도 능숙했다. 매장 주변이 학원가여서 원어민 선생님들이 자주 찾았는데, 그럴 때면 물 만난 고기처럼 농담을 섞어 가며 케이크를 추천했다.


유난히 순수했던 친구와 그걸 놀려먹던 친구도 있다. 우리는 이따금 와인 파티를 하며, 나의 최애 보드게임 ‘달무티’를 즐기곤 했다. 그 당시 새로 합류했던, 달무티 카드를 처음 접한 친구가 타로 카드가 아니냐고 물었고, 장난기가 동한 다른 친구는 타로 카드가 맞다며 타로점을 한 번 봐주겠다고 나섰다. 애정운을 보겠다며 뽑은 카드가 낡은 옷에 곡괭이를 들고 겨드랑이 털까지 선명한 광부 카드였는데, 너무도 그럴싸하면서 심각한 카드 해석을 곁들었다. 갑자기 그 친구가 펑펑 울음을 터뜨렸다. 이름도 비슷했던 그 두 친구는 톰과 제리마냥 티격태격하며 오랫동안 함께 일했다.


키가 훌쩍 크고 행동이 빨랐던, 그림 솜씨가 좋았던 친구도 있다. 써니도 키가 큰 편이라서 그 두 사람이 카운터에 나란히 서 있으면 발판이라도 놓고 서 있는 것 같았다. 그 큰 키에 온 매장을 부지런히 오가며, 사소한 모든 것들을 알아서 챙겼다. 일거리가 주어지기 전에 스스로 미리 챙기는 스타일이라 가만히 앉아서 쉬고 있는 모습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성실함은 분명 어디에 있든지 반짝거리며 인정받을 거라 생각되는데, 매장을 그만둔 후 소식이 끊겨 아쉽고 궁금하기만 하다.


그 친구 못지않게 성실함으로 기억되는 친구도 있다. 처음 면접 볼 때 맥도널드 알바 경험을 자신 있게 말했었는데, 말마따나 일처리 속도도 빠르고 그만큼 말도 빠르고 적응도 빨랐다. 중간에 해외 언어연수를 가야 해서 그만두었었는데, 연수를 마칠 즈음에 써니에게 연락을 해서 다시 복귀할 수 있냐고 물어올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다시 매장으로 돌아와서 직장에 취업할 때까지 다녔고, 직장을 다니면서도 늘 들러서 소식을 전했고, 매번 알바 끝나기를 기다려 주던 남자친구와 결혼하고 백일도 안 지난 이쁜 아기를 꼭 보여드려야 한다며 칭칭 감싸매고 친정 드나들듯 찾아온다.


손님들이 친절함으로 기억하는 친구도 있다. 결혼하면서 신혼집이 멀어져서 아르바이트를 어쩔 수 없이 그만둘 수밖에 없었는데, 오히려 손님들이 더 아쉬워하고 소식을 궁금해했다. 그 친구에게는 차마 전하지 못했지만 내 주변에 있는 삼십 대 초반 동생이 우리 매장에 들렀다가 ‘혹시 그 친구, 지금 애인 있어요?’라고 물어오기까지 했다. 이미 정해진 짝이 있다는 말에 진심으로 아쉬운 표정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커플도 마찬가지로 일부러라도 시간 내서 매장에 들러 아빠 엄마의 선한 얼굴을 꼭 빼닮은 아이를 보여주고 간다.


도도해 보이면서도 은근히 허당끼가 있는 친구도 있다. 회식자리에 그 친구가 빠지면 왠지 허전하다. 어떤 분위기든지 끌어올리는 재주가 있다. 졸업 후 스튜어디스를 하면서도 비행이 없는 날이면 아무런 이유 없이 혼자 매장을 찾았다. 써니가 바빠서 말을 못 섞는 상황이면, 시간 남아돌아 보이는 나를 붙잡고 수다를 풀었다. 해외 출장길에 비행기를 탈 때마다 우연한 만남을 기대해 보지만, 그렇게 마주치지는 못했다.


꼼꼼한 자기소개서로 기억되는 친구도 있다. 이렇게 자기 PR에 적극적인 대학생이 있나 싶을 정도로 눈에 띄었다. 학교 과제로 직접 촬영하고 편집한 영상물이 완성되면 내게 보여주며 진지한 평가를 요청했다. 도전하고 고뇌하고 사랑하고 아파하는 모든 모습이 좋았다. 꿈에 바라던 광고계에 진출하고, 얼마 전에 책을 출간했다고 저자 사인이 담긴 저서를 들고 찾아왔다.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하며 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친구도 있다. 항상 밝고 항상 부지런한 그 친구를 늘 응원했다. 기간제 교사로 취업하면서 가게를 떠났는데, 교사를 하면서도 계속 수시로 찾아와 소식을 전했다. 참 시험이 쉽지는 않나 보았다. 준비 과정의 소회를 담아서 책을 집필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다는 표정으로 그것을 들고 방문했다.


아, 어떤 것도 한 장의 그림으로 그려내는 능력의 소유자도 있었다. 새해가 되면 그 해에 맞춰서 케이크를 들고 뛰는 토끼, 여의주 대신 조각케이크를 입에 문 용 등을 작은 칠판 게시판에 형형색색 분필로 아주 멋드러지게 그렸다. 어린이집 취업 때문에 그만 둔 이후에도 종종 시간내서 들러서 칠판 그림을 업데이트해 준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매장을 거쳐간 인연들이 떠오른다. 써니의 기억 속에는 더 많이 더 뚜렷하게 남아 있을 테다.


누가 정한 원칙도 아닌데, 사정상 매장을 그만두게 되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손으로 정성껏 적은 편지를 건넨다. 작고 이쁜 카드에서부터 2~3장에 이르는 장문의 편지까지 다양하다. 항상 써니와의 마지막 인사는 포옹이다. 써니는 편지를 건네고 인사를 하는 친구들에게 늘 상남자처럼 ‘이리 와, 안아 보자’며 팔을 벌린다. 당황한 친구들은 잠시 망설이다가 부끄럽게 안기는데, 그 몇 초가 지나면 갑자기 눈물을 쏟곤 한다.

매장을 정리하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편지를 읽는다. 엄마처럼, 언니처럼, 이야기 들어주셔서 고마웠고, 짧게 일하고 그만두게 되어서 아쉽고 죄송하고, 함께 일했던 기억 오래 간직하겠다는 내용들이 많다. 써니는 “내가 잘해준 것도 없는데...”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며, 그들의 새로운 미래를 응원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 매장은 이 친구들에게 잠시 쉬어가는 '정거장' 같은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인생의 가장 치열한 시험 공부를 하며, 누군가는 첫사랑의 열병을 앓으며 이 정거장에 머물다 갔을 테다. 비록 우리는 매장이라는 정거장에 머물러 늘 그 자리에 서 있지만, 떠난 이들이 온갖 다양한 기쁜 소식을 들고 다시 찾아올 때마다 우리 매장의 시계는 그들이 머물던 그 찬란한 청춘의 시간으로 되돌아간다. 20년 동안 우리가 다루었던 것은 비단 케이크만이 아니었나 보다. 이 친구들과 함께 나눈 '성장'이라는 공간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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