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음 한 조각을 베어 물다

by 영두리

우리 매장에서 가장 비싼 케이크는 여전히 딸기치즈타르트다. 매장을 오픈할 때부터, 아니 그 전에 여느 손님처럼 구매 방문을 했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가장 비싸고 고급스럽다. 게다가 아무 때나 먹을 수 없는 겨울 시즌 한정 제품이다 보니 더 감질나게 만든다.

재료가 이름 그대로인 케이크다. 더하거나 빼거나 꾸미는 게 없다. 고소한 타르트로 전체 틀을 잡고, 그 안에 두툼하게 부드러운 크림치즈를 가득 채우고, 그 위로 신선한 생딸기를 가지런하고 빼곡하게 덮은 제품이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케이크를 먹을 때에는 포크를 수직으로 꽂아 떠서 온 재료를 한꺼번에 맛봐야 한다. 상큼 달콤 고소한 풍미가 진하게 입 안에서 퍼진다. 봄을 기다리는, 봄을 기대하게 하는 맛이다.

딸기 따로, 크림치즈 따로, 타르트 따로 먹으면 그 맛이 나지 않는다. 섞여야 제맛이 나는,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각 재료의 특성이 살아있는, 이런 음식을 접할 때마다 합창이 떠오른다.


합창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9년 2월이었다. 동네 와인 번개에 참석했었는데, 옆자리에 앉았던 형님 한 분이 내 목소리를 듣고는 저음이 ‘매력 있다’(‘독특하다’의 미화된 표현이었으리라 짐작되는)며 중창단 가입을 권유하였다. 노래를 즐겨 하지도 않고 잘하지도 못한다고 극구 사양했으나, 일요일에 두세 시간 정도만 투자하면 되며 다들 초보자라서 수준들은 비슷비슷하며 합창보다는 친목 모임에 가까운 부담 없는 모임이라며 한사코 합류를 청했다.


결성된 지 몇 주 되지 않은 지역 내 신생 아마추어 합창 동호회로, 대략 열 명 남짓 되는 또래 모임이었다. 나의 경우와 비슷한 케이스로 권유받아 영문 모르고 일단 나와 본 케이스도 많았다. 매주 일요일 늦은 오후, 연습장이 따로 없어서 동네 작은 음악학원에 모였고, 공연과 같은 목적의식이나 실력상승 욕심 따위는 없는, 그냥 피아노 반주와 함께 악보 펼쳐놓고 이런저런 노래를 심심풀이로 불러보는 모임이어서 부담 없이 스며들었다.


내가 어느 정도 수준이었냐 하면, 혼성합창단이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파트로 구성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을 정도였다. 오디션이나 파트 배정을 위한 테스트 같은 것도 없이, 그냥 인사 나누는 목소리만 듣고 베이스 파트에 배정되었다. 학창시절에 잠시 배웠던 피아노 덕분에 다행스럽게도 낮은음자리 악보는 낯설지 않았다. 음조나 음표 역시, 음악 시간에 딴청 부리지 않고 열심히 듣고 이해해서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다만 노래를 악보에 그려진 음에 맞춰 부르지 못한다는 게 한계였다. 악보를 보면서도 음을 찾아 헤매는 모습이 마치 지도를 펼쳐들고도 방향을 못 찾는 길치처럼 여겨졌다. 새로 나눠준 악보를 보면서도 몇 번 흥얼거리더니 본인의 파트음을 바로 따라잡는 몇몇 단원들이 신기할 정도였다.


노래 연습은 핑계일 뿐이고 연습장에 모여서 먹고 마시고 이야기 나누는 게 연습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그래도 작은 공연 같은 거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냐는 단장의 부추김으로 아주 작은 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그해 11월의 일이었다. 작은 강당 무대에 업라이트 피아노로 반주하고 특수조명이라고는 전혀 없는, 딱 학창시절 학예회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그게 인생 첫 합창 공연이었다. 그리고 16년이 훌쩍 지난 2025년 11월, 제12회 정기연주회를 할 때까지도 마치 지박령인 듯 항상 그 무대에 함께 서 있었다.


아마추어 합창단 활동에 재미를 느끼다 보니 교회 예배시간에 매번 그냥 흘려듣던 성가대의 찬양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 멜로디만 들리던 찬양곡이 조금씩 입체적으로 풍성하게 다가왔다. 누가 어떤 파트를 맡아 부르는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파트별 서로 다른 음정이 적절히 섞여 화음이 되는 것에 매료되었다. 2014년 세밑, 새해맞이 미션 삼아 교회 성가대의 문을 두드렸고, 역시나 자기 소개하는 목소리만으로 베이스 파트로 배정되어 합류했다.


합창 연습은 늘 재미있고 유쾌했다. 마치 내 음역대를 고려해서 편곡된 듯한 베이스 파트 선율에 매력을 느꼈다. 선율의 밑바닥에 탄탄한 기둥을 세우는 듯한 느낌이 좋았다. 화려하거나 날렵하다기보다는 안정적이고 차분하고 들뜨지 않고 노래를 다져가는 역할도 마음에 들었다. 간혹 낮은음자리 오선지를 벗어나 위로 치고 올라가는 음정이 나와 곤혹스러운 때도 있었지만, 곁에 있는 동료들을 믿고 티나지 않게 립싱크 처리하는 스킬도 매년 조금씩 늘었다.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되는 것을 ‘합계’라고 하고, 하나 더하기 하나가 더 큰 하나가 되는 것을 ‘함께’하고 한다는 의미를 합창을 통해 깨달았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자신의 소리를 너무 도드라지거나 튀지 않게 조절하며 하나로 스며드는 것을 배운다. 서로 다른 소리의 진동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하나의 노래로 만들어지는 기쁨은 합창을 해본 사람만 느낄 수 있는 희열이 아닐지 생각해 본다.


다른 음식들도 비슷하겠지만, 서로 다른 맛의 재료가 적절한 레이어를 이루어 만들어진 케이크를 보면 근사한 합창이 떠오른다. 스티븐 핑거는 “음악은 청각적 케이크(Auditory Cheesecake)다”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나는 “맛있는 케이크는 멋진 합창이다”라고 정의하고 싶다.

생각해보면 우리네 삶도 이 딸기치즈타르트와 닮아 있다. 밑바닥의 타르트 같은 단단한 일상의 책임감 위에, 크림치즈처럼 부드러운 가족의 사랑을 채우고, 그 위에 싱싱한 딸기처럼 상큼한 인연들이 빼곡히 얹어져 비로소 '나'라는 노래가 완성된다.

오늘도 나는 매장 한 구석에 앉아서 잔잔한 음악과 커피 한 잔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다. 조금 전 매장 쇼케이스에서 떠난 케이크의 화음이 손님들의 일상에 기분 좋은 축하의 멜로디가 되어 흐르길 바라며... 누군가 '이 집 케이크 참 조화롭네요'라고 말해준다면, 나는 마음속으로 멋진 공연을 마친 뒤의 단원처럼 조용히 '브라비(bravi)'를 외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