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2주 전 혓바늘이 크게 돋았고, 이제서야 슬슬 아물 기미를 보인다.
피로도를 측정하는 시금석, 스트레스 수치를 알려주는 바로미터 같은 입병이다. 나의 신체 상태와 정신적 스트레스 지수는 입 안의 상태를 보면 정확히 알 수 있다. 조금만 피곤하고 조금만 신경 쓰는 일이 있으면 곧바로 혓바늘이 돋거나 입안이 헐거나 입술이 부르튼다. 열심히 비타민을 챙겨먹고 써니가 아침 저녁으로 과일을 챙겨줘서 최근에는 발병 주기가 길어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광고 문자 메시지마냥 불쑥 찾아든다.
그런 상태가 되면 평소보다 더 말수가 줄어들고 입이 짧아진다. 평상시에도 지극히 차분하고 말수 적고 들뜨지 않는 성향인데, 이 기간이 되면 그 상태가 극대화된다. 남들이 볼 때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도 화 또는 불만이 가득 차 있다거나 말을 걸기 어려울 정도로 예민해져 있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오해 사기에 딱 좋다. 어쩔 수 없이 꼭 필요한 말만 한다. 음식을 가려 먹는다. 스스로 입단속을 하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 상태가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입병이 찾아올 때면, 사도 바울이 평생 고통을 겪었던 '육체의 가시'(고린도후서 12:7)가 떠오른다. 평생 나아지기를 간구했지만 그 역시 섭리의 하나로 끝까지 남아 바울을 일깨웠다. 그것마저 은혜로 받아들이고 자랑하였던 바울처럼, 입병 역시 어쩌면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일 수도, 너무 욕심내지 않게 하려 하심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말을 줄이고 음식을 가리며 최근의 생활과 생각을 돌이켜 본다.
선친께서 친히 붓글씨를 써서 액자에 담아 걸어두었던 문구 중 하나가 '病從口入, 禍從口出(병은 입으로 들어오고, 화는 입에서 나간다)'였다. 그와 함께 적어두셨던 가훈이 '勤而無言(부지런할 뿐 군말을 말라)'이었다. 입단속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는 법이 없으니 특히 설화를 조심하라는 게 선친의 지론이었다. 어릴 때부터 말을 뱉기 전에 한 번 곱씹는 연습이 습관화되었다. 말수가 적어진 원인이기도 하고, 말 대신 글을 쓰는 걸 좋아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주어담을 수 없는 말보다는 쓰고 들여다보고 고칠 수 있는 글이 더 편했다.
입병이 나는 순간은 비명처럼 선명하지만, 입병이 낫는 과정은 소리 없이 고요하게 찾아온다. 무심히 지내다 보면 어느새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와 있다.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할 때는 쉽게 깨달으면서도 그게 언제 그쳤는지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러고 보니, '병이 나다'와 '병이 낫다'는 참 오묘한 말 장난 같다. 'ㅅ(시옷)' 받침 하나로 상태가 극명하게 바뀐다. 어려움이 닥치면 붙들고 간절히 기도하면서도 회복되면 어느새 잊어버린다.
'병이 난' 상태보다 '병이 나은' 상태일 때 감사의 기도로 더욱 매진할 수 있길 오늘도 소망한다. 이제 곧 혓바늘이 완전히 가라앉고 '시옷' 하나를 털어낸 자리에 진정한 나음(Recovery)이 찾아오면, 가장 먼저 써니가 챙겨줄 디저트의 달콤함을 온전히 음미해야겠다. 그리고 입을 열어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고맙다는 인사를 아낌없이 건네야겠다. 침묵으로 배운 절제의 시간이 헛되지 않도록, 다시 찾은 나의 언어들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아닌 맛있는 케이크 한 조각 같은 위로와 평화가 되기를 조용히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