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저녁 때 일이다. 딱 보기에도 성격이 급해 보이는 남자 손님이 휴대폰 통화를 하면서 매장에 들어선다. 쇼케이스 쪽으로 급히 다가와 서더니 진열된 케이크들을 빠르게 훑어본다.
케이크, 어떤 걸로 사오라고? 딸기생크림케이크? 여기 딸기생크림케이크라는 게 있어요?
네,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상품이에요. 혹시 어느 크기 상품으로 찾으시나요?
크기가 달라요? 자기야, 크기를 알려 달라는데?
마치 삼자통화를 하는 것 같다. 남편에게 퇴근길에 매장에 들러서 케이크를 사오라는 부탁(혹은 지시)을 했을 테고, 약간의 투덜댐과 함께 어쩔 수 없이 수락했을 테고, 이곳이 마치 오래 머물면 안 되는 공간인 것처럼 서둘러 미션을 수행하고 빠져나가려는 의도가 역력해 보인다.
크기가 뭐뭐 있어요?
현재 세 가지 크기가 있는데요. 쇼케이스 하단에 있는 게 라지 사이즈구요. 중간에 있는 게 스몰 사이즈, 상단에 있는 게 미니 사이즈에요. 셋 다 현재 구매 가능하시구요.
자기야, 큰 거, 작은 거, 쪼그마한 거 다 가능하다네? 대짜 소짜... 뭘로 살까? 어떤 걸로?
아내분으로 짐작되는 통화 상대는 무언가 한참 설명을 한다. 성격이 서로 사뭇 다른 것 같다. 통화 내용은 들리지 않지만 대략, 그 케이크를 나눠 먹을 식구가 몇 명이다, 케이크 말고도 다른 음식도 마련되어 있다, 그러니 어느 정도 크기면 적당한지 짐작할 수 있지 않느냐는 차근차근한 설명으로 짐작된다.
응, 그래. 응, 그렇겠지. 맞아, 알았어. 알았다고. 알아서 할게. 끊어.
손님이 통화를 마칠 때까지 기다린다. 통화를 하면서 연신 쇼케이스 상단과 하단을 오가며 눈대중으로 사이즈별 케이크를 훑는다. 통화 종료와 함께 빠르게 결정사항을 말한다.
저기, 가운데 있는 소짜 케이크 하나 주세요. 아, 초도 혹시 주시나요? 초는 열세 개요. 긴 거 하나, 짧은 거 세 개. 지역화폐 되나요? 그럼 이걸로 결제할게요. 아, 포인트도 적립하라고 했는데? 전화번호 넣으면 되죠? 여기 입력하면 되나요?
결제와 포인트 입력까지 5초도 걸리지 않는다. 케이크를 상자에 넣고 초를 챙기고 리본을 묶으려고 하는데, 집에 가면 어차피 리본을 풀어야 하니 그냥 달라고 한다. 결제카드와 케이크 상자를 챙겨서 부리나케 매장을 벗어난다.
그 고객이 가신 후 대짜 소짜에 대한 여운이 한동안 가시지 않았었다. 다른 고객에게 케이크 사이즈를 설명할 때마다 머리 속에서 대짜 소짜가 떠오르는 것이다. ‘저기 라지 사이즈 케이크 하나 주세요’라는 손님의 말에 ‘아, 대짜요?’라고 할 뻔하기도 했다. 케이크에 붙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크기 단위일 텐데, 묘하게 중독성이 있다. 그래서, 가끔 써니와 나는 매장 일일 결산하면서 ‘오늘은 대짜 5개, 소짜 12개, 쪼그마한 거 20개 팔았네.’라며 웃는다.
생각해 보면 '라지'나 '스몰' 같은 매끈한 단어보다, '대짜'나 '소짜' 같은 말이 훨씬 더 사람 냄새가 날 것 같기도 하다. 그 투박한 말 속에는 퇴근길 지친 몸을 이끌고 아내의 미션을 완수하려는 가장의 서두름과, 오늘 저녁 식탁의 풍성함을 고민하는 가족의 일상이 고스란히 배어 있기 때문이다. 케이크의 크기가 스몰이면 어떻고 소짜면 어떠랴. 중요한 것은 그 상자 안에 담긴 마음의 부피 아닐까? 오늘 우리 매장에서 나간 케이크들이 저마다의 집에서 '딱 알맞은 크기'의 행복이 되었기를 바란다. 크기 단위는 좀 뒤섞여도 상관없다. 그날의 축하가 모자라지 않고 풍성했다면, 그것으로 우리의 케이크는 제 역할을 다한 셈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