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나초코케이크 하나 주세요.
미니 사이즈 말씀하시는 거죠?
네, 혹시 오늘 만든 케이크인가요?
아, 어제 들어온 케이크에요.
내일 먹을 건데 상관없겠죠? 언제까지 먹을 수 있나요?
소비기한은 내일모레까지로 되어 있어요. 꼭 냉장보관 하셔야 하구요.
네, 그걸로 주세요. 감사합니다.
케이크 하나가 쇼케이스를 떠나 예쁘게 포장되어 손님 손에 들려서 나간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과 공간에서 작은 역할이나마 충실해 해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손님의 뒷모습을 본다.
슬슬 매장 마감업무를 시작한다.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는 시각에 오늘 날짜를 다시 복기한다. 이 시각이 되면 홀케이크는 물론 조각케이크와 쿠키, 초콜릿 등 모든 제품에 표시되어 있는 소비기한을 하나하나 체크해야만 한다. 예전에 유통기한을 기준으로 했던 것이 얼마 전부터는 소비기한으로 변경되었다. 쇼케이스에 진열된 상품들에 표시된 날짜를 점검하고 냉장고에 보관된 것들도 일일이 챙긴다. 하루 정도 촉박하게 남은 것들은 따로 분류한다. 먹는 데에는 크게 문제없으나 판매하기에는 애매한 상품들이다. 그런 것들은 마감 업무를 돕는 아르바이트생의 퇴근길에 챙겨주기도 하고, 집에 가져와서 야식 대용으로 먹기도 한다.
써니는 태블릿을 열어 내일 수령할 제품 배송 물량 발주를 넣는다. 미리 주문받아 놓았던 목록들을 꼼꼼히 챙기고, 현장 구매 손님들을 위해 대략적인 판매량을 제품별로 예상해서 주문을 넣어두어야 한다. 소비기한이 길지 않은 케이크류 제품 특성 때문에 재고가 생겨도 반품이 안 된다. 모두 자체 소비를 해야만 하므로 내일의 수요를 예측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매장 점주가 갖춰야 하는 가장 중요한 노하우라고 할 수 있다.
20년째 매장을 운영하면서도 가장 어렵고 가장 알 수 없는 게 ‘내일은 도대체 얼마만큼의 케이크가 판매될까’를 추측하는 것일 테다. 내가 곁에서 봤을 때 써니는 그 분야의 달인이다. 간혹 소비기한까지 판매되지 않은 제품들이 어쩔 수 없이 생기기는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그 수량이 많지는 않다. 비결을 물어본 적이 있다. 돌아온 답은 간단했다. ‘보수적으로 예상해서 욕심부리지 않고 너무 많이 주문을 넣지 않는 것’.
소비기한을 생각하다 보니 몇 주 전 형님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나이 터울이 좀 있는 큰형님이 문득 어릴 적 추억을 또 꺼냈다. 너무 어렸던 나로서는 기억에 없으나 가족의 추억으로 두고두고 전해 듣다 보니 실제 기억처럼 떠올리게 되는 에피소드다. 서너 살 말을 막 배우고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때, 부모님은 동네 어귀에서 작은 ‘상회’를 운영하셨다고 한다. 지금으로 따지면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처럼 생필품과 먹거리를 판매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유통기한이 다 된 먹거리는 늘 삼형제의 야식거리였다. 찜기 안에서 오랜 시간 판매되지 않아 불어터진 호빵을 꺼내고, 유통기한이 임박한 우유를 추려내서 식탁에 모여서 먹었다고 한다.
하루는 매장을 지키고 있는 어머니 앞에 어리고 작고 귀여웠을 내가 쓱 나타나더니 갑자기 노래와 율동을 하더란다. ‘커피 우유 주세요, 빨대도 주세요.’ 어머니는 그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고 기막히기도 했단다. 분명 저 배후에 큰 놈과 작은 놈이 있다는 것을 알겠는데, 둘을 불러서 혼을 낼지 싶다가도 얼마나 유통기한과 상관없는 새 우유를 먹고 싶었으면 저랬을까 싶으셨단다. 앵벌이 사건은 그렇게 웃음으로 끝났지만, 삼각뿔 모양으로 담긴 커피 우유는 두고두고 추억을 다시 떠오르게 하는 제품으로 남게 되었다.
매장 마감 시간이다. 마무리 청소도 다 했고 쇼케이스 제품들도 모두 확인했으며 내일을 위한 발주 입력도 마쳤다. 불 꺼진 쇼케이스 위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는 세 가지 시간이 교차한다. 어제의 흔적(재고)을 비워내고, 오늘의 수고(판매)로 살아가고, 내일의 설렘(발주)을 채워 넣는 이 반복적인 행위가 어느덧 20년의 연륜이 되었다.
"언제까지 먹을 수 있나요?"라는 물음에 나는 속으로 대답한다. 물리적인 기한은 정해져 있지만, 이 케이크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 소중하게 저장된다면 그 '유효기한'은 무한해질 수 있을 거라고. 어린 날의 내가 어머니 앞에서 춤추며 얻어낸 우유 한 팩이 오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내 마음 속에서 여전히 신선하게 살아있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