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매장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 두 사람의 스마트폰에서 동시에 메시지 도착 알림이 울렸다. 이런 경우는 크게 세 가지에 해당한다. 가족 단체톡방에 새로운 톡이 등록되었거나, 재난 혹은 기상 알림 문자가 도착했거나, 온라인 예약 앱에 새로운 예약이 접수되었을 때다. 운전 중인 나보다 보조석에 앉아 있는 써니의 손이 더 빠르다.
예약 하나 들어왔네. 근데 2월 17일 예약이야. 올해 설이 2월 17일 아냐?
이번 설 당일이 화요일이지? 2월 2일이 월요일이었으니까. 3일이 화요일이었고, 거기에 14일을 더하면... 17일. 그러면 화요일이 맞겠네.
주말에는 매장 아저씨 신분이지만 평소 주 캐릭터는 회사원인 게 분명한 나는, 날짜를 계산할 때 한 주 근무를 시작하는 월요일이 기준일이 된다. 매주마다 네댓 개의 주간보고를 작성하고 검토하는 게 습관인 탓이다. 그러고 보니 올해 설이 채 열흘도 남지 않았다.
예약 사이트에 설날 휴무 체크가 안 되어 있나 봐. 어떡하지?
예약하신 손님 연락처를 알 수 있나? 연락해서 취소해 달라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은데?
예약자의 연락처를 찾아서 바로 전화를 드린다. 설날 당일 매장 휴무 사정을 설명하면서 조심스럽게 양해를 구한다. 전날은 영업하냐고 묻는 듯하다. 설날 하루만 휴무이므로 예약할 수 있다고 말씀을 드린다. 곧바로 예약 취소 메시지가 도착하고, 신규 예약 메시지가 뒤따른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온라인 예약사이트 정보부터 수정한다. 그렇게까지 서두를 필요는 없으나 혹시라도 다른 예약자에게도 그런 경우가 생길까 봐서인지 마음이 조급하다.
휴무일 설정 메뉴를 한참 만에 찾아서 겨우 설정한다. 휴무일 공지를 올리는 메뉴가 따로 마련되어 있긴 하지만 매장 휴무 여부만 표시될 뿐 개별 상품 예약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온라인 예약 대상으로 등록된 개별 상품마다 일일이 일정을 선택해서 세팅해야만 하는 방식이다. ‘UX(User Experience, 사용자 경험) 설계가 그다지 사용자 친화적이지 않은 것 같다’는 속생각이 입 밖으로 쑥 튀어나올 뻔했다. 회사를 벗어나면 업무 스타일을 좀 잊고 지내야 하는데 싶어서 입을 서둘러 단속한다.
쉬는 날이 따로 없는 연중무휴 매장이지만, 그나마 설날과 추석 당일은 잠시 쉰다. 명절 연휴의 영업 여부는 강제 사항은 아니고 지점별 자율결정 사항이긴 하지만, 유통기한이 길지 않은 케이크를 보관하거나 판매하기 위해서는 연휴를 오롯이 쉬기에 부담이 따라서 대개는 당일 하루 정도만 짧게 쉰다. 연휴 기간에는 출근 가능한 아르바이트생이 있으면 함께 일하고, 상황이 여의찮으면 그냥 써니와 둘이 매장을 영업한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매번 가족 모임은 명절 당일에 모여서 간단히 식사하는 것으로 치른다. 이번 설 연휴도 주말 주일을 포함해서 장장 닷새 동안 이어지는데, 당일 하루인 2월 17일에만 쉬면서 가까운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나누는 것으로 정했다.
어찌 보면 두 사람 모두 쉼 없이 부지런히 달리는 것 같다.
써니는 영업을 시작한 후 대략 20년 동안 휴일 없이 거의 매일 출근해서 매장을 챙긴다. 아르바이트생이 매장 오픈 준비와 케이크 취급과 음료 제조 등 손님 응대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자유롭지 못하다. 손에 익을 만하고 믿고 맡겨둘 만한 수준에 이르면 중간중간 개인 시간을 갖기도 하는데, 그렇더라도 케이크를 정리하고 발주를 넣는 업무는 본인이 감당해야 하는 업무라고 여기다 보니 매장을 오래 비우지도 못한다.
나도 역시 주말과 주일,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로 매장에 머문다. 출퇴근을 동행하고, 식사할 때 말벗하고, 소소한 일을 거들고, 단골손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매장 한편에 자리 잡고 앉아서 노트북이나 책을 본다. 휴일에도 매장에 따라 나와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마음에 쓰였는지 집에 가서 좀 쉬거나 스크린골프를 치거나 사우나에라도 다녀오라고 등을 떠밀기도 하는데, 그렇게 매장에서 잠시 벗어나 있더라도 계속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비유가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문득 ‘경장(更張)’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율곡 이이는 ‘성학집요’에서 국가 경영을 창업, 수성, 경장의 단계로 구분해 두었는데, 매장 경영도 어쩌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새로운 일을 시도하여 창업하고, 이를 분주하게 갈고 닦아 수성한다. 그 다음 단계가 경장이다. 가야금의 줄을 다시 한번 팽팽하게 당겨서 조율하는 과정과도 같은데, 한창 연주 중인 가야금을 조율할 수는 없을 테니 이 과정에는 반드시 쉼과 돌아봄이 필요하다.
우리가 설날 단 하루, 매장의 셔터를 내리고 쇼케이스의 불을 끄는 이유는 단순히 몸을 쉬게 하기 위함이 아니다. 느슨해진 마음의 줄을 다시 팽팽하게 조이고, 혹시라도 너무 팽팽해져 끊어질 듯한 일상을 적절히 늦추기 위한 우리만의 '경장'인 셈이다. 2월 17일, 그날 하루만큼은 오롯이 쉼과 돌아봄으로 충전해야겠다. 오랜만의 가족 모임에서 나누는 음식과 정담이, 그리고 써니와 함께 매장을 벗어나 잠시 즐기는 소중한 시간이, 피할 수 없는 일상이라는 가야금을 다시금 아름답게 울리게 할 귀한 조율의 시간이 되어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