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 손님은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되는 거지? 계속 전화를 안 받으시네?
써니는 케이크 손님을 받는 도중 짬짬이 계속 전화 통화를 시도하며 혼잣말하고 있다. 늘 밝은 미소로 손님을 대하는데, 지금 수화기를 들고 전화연결을 기다리는 표정에는 평소 볼 수 없었던 짜증이 한 가득이다. 묻지 않아도 상황이 짐작된다. 이건 십중팔구 노쇼 고객 때문일 테다.
그저께 전화 통화로 축하 메시지 명판을 올린 당근케이크 스몰 사이즈를 예약받았다고 한다. 초콜릿 명판 위에 생크림으로 글씨를 쓰고, 그걸 당근케이크 위에 꽂은 후 손님이 바로 픽업할 수 있도록 포장까지 해두었단다. 방문하기로 한 저녁 7시가 훌쩍 넘었는데 손님은 오지 않았고, 혹시나 싶어 전화를 드리는 데 아직도 전화 통화가 안 되는 거였다.
마감 청소까지 모두 마치고 다시 한번 전화를 걸었고 그제야 통화 연결이 되었다. 급한 일이 생겨서 지방을 내려가는 중이며 며칠 걸릴 일정이라서 부득이하게 케이크 예약을 취소해야겠단다. 통화하는 써니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리 냉랭해졌다. 미리 전화를 주셨어야 하는 게 아닌가, 명판까지 올려버린 케이크는 다른 분께 판매도 할 수 없는데 어떻게 할 건가, 예약금 선금도 없이 고객분을 믿고 준비해 두는 건데 이러시면 안 되는 게 아닌가를 최대한 차분한 어조로 전했다. 알겠다는 짧은 대답만 들은 채 허무하게 통화가 끝났다.
포장해 두었던 리본을 풀고 박스에서 케이크를 꺼냈다. 일반 예약 케이크도 이렇게 마감시각 무렵에 취소되면 소비기한 하루를 소모하는 경우가 되어서 재판매로 돌리기에는 달갑지 않은데, 명판까지 올린 케이크는 구매자 이외에는 상품 가치가 없어서 아예 팔 수 없게 된다. 명판은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케이크는 나눠 먹기 좋도록 여러 개로 조각을 내버렸다. 몇 조각은 집에 챙겨가려고 조각 케이크 상자에 따로 담고, 남은 조각들은 직원들 간식거리로 표시해서 냉장고에 보관해 둔다. 손님을 기다리며 켜두었던 쇼케이스 조명을 끄고, 매장 소등을 확인하고, 보안경비를 작동한 후 퇴근한다.
노쇼 고객이 생길 때마다 머릿속에서는 대학교 신입생 시절 교양영어 첫 시간에 접했던 해리 골든(Harry Golden)의 ‘The show must go on’이라는 제목의 에세이가 생각난다. 그 글에는 몇몇 에피소드가 소개되어 있다. 어머니 임종을 겪은 후 호텔에 돌아온 그는 세탁물 지연을 이유로 손님의 호통을 듣는다. 세상 모두가 모친상을 위로해 줄 거라는 건 본인만의 생각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한 시인(인도의 시성이라 불리는 타고르)은 제시간에 나타나지 않는 하인을 기다리며 이를 어찌 처분할지 골몰하다가 뒤늦게 나타난 하인에게 해고를 통보한다. 그 하인은 그제서야 어젯밤 자신 딸이 죽었음을 알린다. 내가 받아든 그 글의 주제는 ‘상황은 상황이고, 의무는 의무이니, 우리 인생이라는 쇼는 계속 되어야 한다.’였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문구를 괄호 안에 넣어 삽입한 채.
그 글에는 이런 문장들이 담겨 있다.
Laugh with the sorrow that's breaking your heart.(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안고 웃어라.)
Everybody goes out on the 'stage' with sorrow in his heart.(모두가 가슴 속에 저마다의 슬픔을 안고 무대 위로 나간다.)
예약을 받고 그 시각이 가까워지면 마치 ‘어린 왕자’를 기다리는 ‘여우’와 비슷한 심정이 된다. 손님이 약속한 오후 4시가 되면 오후 3시부터 설레고 4시에 가까워질수록 행복해지는 게 모든 자영업자의 입장이지 않을까 싶다.
고객 상황이 돌변했더라도 노쇼보다는 쇼였으면 좋았을 테다. 상대를 배려해서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알려주었더라면 싶어 아쉽다. 쇼는 가급적 예정대로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의 쇼 역시 어떤 상황이든지 계속 진행되는 느낌이다. 또 그렇게 아침이 되면 쇼케이스에 불을 밝히고, 밤이 되면 쇼케이스 불을 끄면서 하루 분량의 쇼를 쌓아갈 것이다.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관객이자 배우다. 내가 준비한 정성스러운 케이크가 주인공이라면, 손님의 '미리 건네는 연락'은 그 공연을 완벽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대본이었을 것이다. 비록 오늘의 공연은 빈 객석을 보며 막을 내렸지만, 우리는 다시 내일의 관객을 위해 무대를 닦고 조명을 점검한다. 가슴 속에 눅눅한 실망감을 안고서도 다시금 입가에 '환대'라는 미소를 지어 올리는 일. 그 고단하고도 숭고한 과정을 반복하며, 우리의 쇼는 내일도 어김없이 막을 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