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회화나무

by 영두리

살면서 나무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관심 두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20년 전 생면부지의 동네에 들러 케이크 매장 자리를 알아볼 때, 부동산중개사가 먼발치를 가리키며 ‘저기 길 건너에 있는, 큰 나무 옆에 보이는 저 자리 어때요?’라고 말할 때도 사실 귀에 들리지도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나무다. 가로수가 양쪽 모두 대략 10미터쯤 간격으로 심겨 있는 왕복 4차선 도로 곁에 있는 매장이었다. 매장을 알아볼 때 절대적인 조건이 있었다. 다른 조건들, 대규모 주거단지 인근이어야 한다, 유동인구가 많아야 한다 등을 생각하겠지만 우리에게는 1순위 조건이 도로였다. 고객 출입이 편해야 하고 케이크 운반이 쉬워야 하니 무조건 도로변 1층에 위치한 매장을 찾았다. 그러면서도 너무 교통량이 많은 도로는 케이크 픽업 주차 등에 불편하므로 피해야 한다. 도로 옆 매장에만 관심을 두다 보니 가로수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매장 인테리어를 마치고, 써니의 인생 첫 자영업을 기념하기 위해서 매장 전경을 사진에 담았다. 사진에는 하얀 바탕에 가게 상호만 간단히 도드라지게 새긴 새 간판과 깔끔하게 공사를 마친 매장이 막 언박싱한 새 상품마냥 흠 하나 없이 담겼다. 그리고, 그 나무들–매장 전면 양쪽으로 각각 한 그루씩-도 관광지 인증샷 찍을 때 꼭 끼어드는 지나가는 행인처럼 자리잡고 서 있었다. 그때가 9월이었고 뜨거운 여름을 지낸 그 나무들은 자디잔 잎사귀를 주렁주렁 매단 채 1층 매장을 굽어보고 있었다.


슬슬 정체를 깨닫게 된 건 10월에 접어들면서였다. 매장 앞에 콩 꼬투리 같은 게 잔뜩 떨어져 있는 거였다. 처음에는 행인이 바닥에 흘렸나 싶었으나, 나무줄기를 따라 고개를 들어 밤하늘 별처럼 매달려 있는 열매를 보고서야 출처를 알았다. 일반 콩과는 성질이 좀 달랐다. 가을임에도 불구하고 점액질 같은 육즙에 둘러 있어서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에 짓이겨지면 바닥에 탁 들러붙었다. 콩보다는 작은, 팥보다는 납작한, 까맣고 윤기 반질반질한 초콜릿 과자 알갱이처럼 생긴 열매인데, 보도블록 틈새에도 쏙 들어가고 손님들 신발 바닥에도 붙어서 매장에 스스럼없이 입장했다. 매장 앞 열매를 쓸어 없애는 일은 ‘아저씨’의 담당 업무다, 라고 써니가 지정해 줬고 나는 맡은 바 소임을 충실히 수행했다.


11월이 되니 그 많던 열매는 어느새 적당히 사라졌다. 그 나무에는 평소 많은 종류의 새들이 깃들였다. 흔히 마주치는 까치와 참새 말고도 직박구리와 어치, 심지어 쇠딱따구리까지 심심찮게 방문했다. (아, 그러고 보니 나무 수종뿐만 아니라 조류에 대한 상식도 늘었다.) 그들이 오가면서 그 열매를 먹어 치운 것인지, 아니면 장난치다가 떨구어 놓고 간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열매는 점점 줄어들고 대신에 노랗게 변한 낙엽이 무성해졌다. 가을 찬 바람이 불 때마다 노란 낙엽이 물결쳤다. 얼핏 보면 아카시아 잎처럼 생겼는데 크기는 엇비슷하고 모양은 조금 달랐다. 가을비라도 추적추적 내리면 ‘누레오찌바(濡れ落ち葉)’가 되었다. 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보도블록 문양처럼 자리매김했다. 이번에는 낙엽을 쓸어 없애는 일로 바뀌었다. 대상만 바뀌었을 뿐 행위는 같았다.


첫 겨울이 되었다. 드디어 열매와 낙엽도 사라졌다. 대신 눈이 심심찮게 찾아왔다. 하늘에서 하늘하늘 내리는 눈이, 매장 오픈 전에는 감성을 자극했다면 매장 오픈 후에는 현실감을 깨웠다. 마냥 이쁘거나 아름답다는 감상에 젖어들 틈이 없었다. 매장에 있는 날이면 시간 단위로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아예 커다란 형광색 플라스틱 빗자루와 주황색 끌삽 등 제설도구까지 갖췄다. 이번에는 눈을 쓸어 없애는 일로 이어졌다. 계절마다 대상은 바뀌는데 행위는 엇비슷했다.


초봄에는 이 나무가 참으로 차분했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채 새들도 찾지 않고 쓸쓸히 겨울을 나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게 봄과 여름의 에너지 발산을 위한 비축 과정이라는 걸 몰랐다. 기온이 올라감에 맞춰 연한 녹색 새 잎들이 가지마다 솟아났다. 물이 오르기 시작하면서부터 하루하루 양상이 달랐다. 연한 녹색은 점점 짙어지고 잎은 가지마다 빼곡하게 들어찼다. 문제는 나뭇잎에서 뿜어내는 것으로 추정되는 끈적한 진액이었다. 늦봄과 여름, 그 나무 아래 차를 세워놓아 보면 그 진액의 위상을 깨달을 수 있다. 끈적하게 들러붙어서 워셔액으로도 잘 닦이지 않는 강력함이 있다. 길을 걷다가 점성을 가진 무언가가 신발 밑창을 붙잡는다고 여겨질 때 주변을 보면 이 나무다. 손님들이 출입하면서 이 녀석들을 데리고 들어와 바닥에 족적으로 남았다. 이제 아저씨 업무는 실외 근무에서 실내 근무로 바뀐다. 그때그때 부지런히 바닥 밀대질을 하지 않으면 매장이 엉망이 된다.


문제는 매장 앞 인도의 보도블록이 아니라 간판과 어닝이었다. 진액은 채 1년도 안된 매장의 하얀 간판을 노포 분위기로 만들어 버렸다. 밝은 갈색 바탕에 하얀 줄무늬를 넣어 디자인한 어닝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진득한 점액은 미세먼지와 합세해서 간판과 어닝에 눌러붙었다. 매년은 아니더라도 격년으로는 외주 간판 청소를 해야만 했다. 어닝은 할 수 없이 어두운 단색 제품으로 바꿨다.

날벌레도 한몫했다. 이 나무는 풍부한 먹거리로 날벌레들을 초대한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날아온 녀석들은 매장의 달콤한 냄새를 좇아 스며들었다.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매번 강조하는 말이 추가되었다. 혹시 쇼케이스가 조금이라도 열려 있는지 반드시 살필 것, 케이크를 꺼내거나 넣을 때에는 즉시 닫을 것, 수시로 쇼케이스 안에 날벌레가 들어가지 않았는지 관찰할 것. 포충기 추가 설치는 덤이었다.


그 나무에 대해 찾아보게 된 건 그렇게 1년을 겪고 나서였던 것 같다.

우리를 귀찮게 하던 존재치고는 꽤 멋스러운 이름인 ‘회화나무’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했다. ‘회화’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림을 일컫는 것은 아니었다. 회(槐)라는 음훈이 그냥 ‘회화나무 회’ 혹은 ‘회화나무 괴’를 가리켰다. 나무 옆에 귀신이 붙어있는 듯한 흉흉한 한자이긴 한데, 그러다 보니 귀신 쫓는 나무라는 의도로도 많이 심었다고 한다. 의외로 길상목에 해당하고, 큰 학자나 인물이 나길 바라며 궁궐이나 문묘 등에 심는 학자수라고도 했고, 꽃과 열매는 한약재로도 쓰이고, 줄기는 목재로도 쓰이는 쓰임 많은 나무라고도 했다. 도서관 근처 가로수인 탓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 나무를 굳이 왜 우리 매장 앞에?’라고 생각해 보다가, 그 나무가 먼저 자리 잡고 우리가 나중에 보금자리를 꾸렸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그나마 은행나무가 아니었음을 다행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매장 양쪽에 있던 회화나무 중 한 그루는 이제 없다.

뿌리가 건물 쪽으로 무성하게 뻗었는지 보도블록 일부를 들어올릴 정도로 자랐고, 거기에 보행자들이 걸려 넘어지고 심지어는 자전거 탑승자가 미끄러져 다치는 사고가 종종 발생했다. 구청에 안전사고 위험이 높으므로 무언가 조치를 취해 주었으면 싶다고 민원을 넣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환경 작업을 맡으신 분들이 와서 건물 쪽으로 향하는 뿌리 일부를 잘라냈다. 작업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는 미안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뿌리를 드러내고 다시 보도블록을 평평하게 깔아 작업을 마무리하고 철수했다.

몇 년 후 다시 민원을 넣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때 그 작업 때문일 것 같은데, 그 나무는 좀처럼 힘을 내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는 게 느껴졌다. 봄이 되어도 잎사귀가 돋아나는 게 시원찮고, 꽃도 열매도 예전같지 않았다. 결국 이끼만 잔뜩 낀 채 고목이 되어 버렸다. 다시 구청에 문의를 했고, 어느 날 와보니 나무를 통째로 드러내고 보도블록 작업을 마친 상태가 되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한 그루는 그대로 남아 있고 매우 건재하다. 우리 동네에 있는 회화나무 가로수 중에서 가장 밑둥이 두껍고 잎새가 많고 열매가 풍성하고 온갖 새들의 아지트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녀석 뿌리 한 줄기도 건물 쪽으로 향하는지, 재작년 새로 보도블록 작업을 마친 인도 일부가 과속방지턱처럼 솟아나고 있는데 차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지켜보는 중이다.

생각해 보면 이 나무는 20년 전, 아무것도 모르고 이 자리에 둥지를 튼 우리 부부를 가장 먼저 맞아준 터줏대감 이웃이었다. 내가 빗자루질을 하며 투덜대는 동안 나무는 묵묵히 그늘을 내어주었고, 진액으로 간판을 어지럽히는 대신 온갖 새들의 지저귐으로 매장의 아침을 깨워주었을 수도 있겠다. 이제 보도블록을 밀어 올리는 저 뿌리는, 어떻게든 이 땅에 단단히 발을 붙이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겠다는 나무 나름의 몸짓일지도 모르겠다. 길을 걷는 이들이 조금 불편하지 않게 살살 달래가며, 오늘도 나는 나무의 그림자 아래 쇼케이스 불을 밝힌다. 남은 한 그루만큼은 부디 우리와 함께, 이 거리의 가장 오래된 '부름켜'를 쌓아가길 바라며. 대신에 뿌리는 부디 다른 쪽으로 뻗어가길 바라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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