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문득 내 상태가 ‘시’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문학의 한 장르인 ‘시’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음악의 계이름 ‘시’를 말하는 것이다. 음정을 하나하나 쌓아올려 ‘도-레-미-파-솔-라-시---’에 이르러 소리를 길게 끌어보면 묘한 떨림이 느껴진다. 안정된 ‘도’ 음에 닿지 못한 불안함, 조금 모자르고 조금 아쉬운 불완전함, 소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증폭되는 안타까움, 그런 느낌들이 ‘시’에 담겨 있다.
성가대 옆 자리에서 베이스 파트 음잡이를 하던 집사님 덕분에 이 음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여기 이 음 있잖아요. 계이름으로 '시'에 해당하는... 잘 들어보면 느낌이 묘하지 않나요?
그렇게 음에 대해서 하나하나 신경 써 본 적이 없던 터여서 그 멘트가 신선하게 귀에 담겼다. 악보 오선지 위에서 ‘도’보다 한 음 낮은 위치에 놓여 있는 ‘시’. 한 음 차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음들처럼 온음 차이가 아니라 어설프게 반음 차이가 나는 소리다. 스마트폰에 깔아둔 피아노 건반 앱을 열어서 ‘시’와 ‘도’를 번갈아 누르면서 소리의 차이를 들려준다.
저 음을 화성학에서는 '리딩 톤(Leading Tone), 이끈음'이라고 한다고 하더라구요. 으뜸음인 ‘도’는 '토닉(Tonic)'이라고 하구요. 도에서부터 음을 쭈욱 쌓아서 다시 도에 이르기 바로 전 단계, 즉 7음에 해당하는 게 리딩 톤인 ‘시’인데 자꾸 토닉인 ‘도’로 수렴하려는 기질을 갖는다고 하네요. 느껴져요?
끄덕대면서 듣지만 반쯤은 못 알아듣고 반쯤은 새삼스러웠다. 옆 자리 집사님이 평소에 알던 분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 말을 들은 후 스마트폰 스피커에서 나는 ‘시’와 ‘도’를 번갈아 들어본다. 참 불안한 음이다. 그런데 묘한 매력이 담겨 있다. 무언가 결말로 단정 짓기 바로 전 상황, 내적 갈등의 최고조, 혼돈의 극대화, 위로도 아래로도 오도가도 못하고 길을 잃고 방황하는 소리 같다. 토닉이 안정적 울림이라면, 리딩 톤은 긴장된 떨림이랄 수 있겠다.
인생 오십이 넘으면 천명을 안다고 했으니 모든 게 안정적일 것만 같았다. 아니, 안정적'이어야' 할 것만 같았다는 게 오히려 정확한 욕심이다. 어릴 적 생각으로는, 지금 내 나이였던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모습은 안정적이며 완벽에 가까웠다. 모든 것을 알고, 모든 판단에 정확하며,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완성체였다. 말하자면 으뜸음 그 자체, 토닉이었다.
그런데, 세대가 변한 것인지, 내가 여전히 성숙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그때 그들의 위선이었는지 모르겠으나, 막상 내가 그 나이가 되고 보니 안정적인 것도 없고 완벽한 것과도 거리가 멀었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이는지 알 수 없으나, 퇴근길 운전을 하며,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며, 문득 하루를 되짚어 돌이켜 보면 여전히 불안하고 불완전하고 위태롭고 흔들리고 연약하기 그지없다. 딱 리딩 톤의 느낌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시'가 매력적인 이유는 바로 뒤에 '도'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으뜸음을 향해가려는 그 간절한 욕망 때문에 '시'는 오선지 위에서 가장 역동적인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는 게 아닐까. 완벽한 '도'에 안주해 버린 삶보다, 여전히 '도'를 갈망하며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나의 오십 대가 어쩌면 더 생동감 넘치는 것 아닐까.
불안하다는 것은 아직 가야 할 곳이 있다는 증거이고, 불완전하다는 것은 채워질 여백이 남았다는 뜻일 테다. 오늘도 나는 위태로운 반음의 경계 위에서 기분 좋은 긴장감을 즐기기로 했다. 벌써 토닉에 이르기에는 인생이라는 악보가 너무 많이 남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