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죄송한데 매장 홀 마감 시각이 다 되어서요. 잔과 접시를 먼저 좀 치워도 될까요?
벌써 저녁 8시 40분이 되었나 보다. 홀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손님들께 양해를 구해야 하는 시각이다. 한창 주고받는 대화를 방해하는 것 같아 못내 죄송하긴 하지만 그래도 마감 시각이라는 게 있으니 말씀드려야만 한다. 남은 음료와 조각 케이크를 서둘러 드시거나 테이크아웃 포장을 요청하신다. 서둘러 자리를 비워준 후 매장 앞에 무리 지어 서서 한참 동안 못다 한 말씀을 더 나누다가 헤어지는 손님들께는 매번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매장 마감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치르다 보니 다른 매장에 늦게 들르는 경우에도 그 매장의 마감 시각이라든지 브레이크 타임 같은 운영시간 규정에 민감하다. 조금씩 양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부분 아니냐고, 너무 정 없이 구는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 시간에 담긴 많은 나름의 속사정을 알고 있기에 매장의 원칙에 군말 없이 따른다. 그럼에도 추가 시간을 할애해 주는 경우라면,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예상치 못한 선물이라도 받은 듯 무척 감사하게 여긴다. 귀한 시간을 선뜻 양보하고 배려해 주었다는 걸 알기에...
손님들이 나가고 근무자만 남게 되면 매장 마감용 음원을 튼다. 본격적인 마감 의식이 시작된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신성한 리추얼이다.
써니 사장님은 일일 매출과 현금 시제를 점검하고 쇼케이스에서 냉장고까지 하나하나 재고를 파악하고 소비기한을 확인하고 예약주문서에 적힌 케이크를 세고 이것들을 종합해서 발주서 초안을 작성하고 한참을 검토하고 망설이고 수정한 후 마침내 태블릿을 열어 내일 물량의 케이크를 주문한다.
마감 업무를 하는 아르바이트생은 주방 싱크대에 쌓인 빈 접시와 잔들을 설거지하고 행주류를 깨끗하게 빨아서 널어두고 커피머신을 구석구석 닦아내고 약품 소독하고 쇼케이스에 있는 케이크와 트레이들을 거둬서 정리하고 화장실에 가서 휴지통을 비우고 청소를 진행한다.
거기에서 빠진 공간, 매장 홀은 아저씨 몫이다.
넓지 않은 매장이지만 열 개의 탁자와 스물한 개의 의자를 이리저리 옮기고 들춰가면서 청소기로 구석구석 꼼꼼하게 먼지와 머리카락을 빨아들이고 현관에 놓인 출입매트 위의 이물질을 제거한다. 청소기를 작동함과 동시에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도 리추얼 요소 중 중요한 하나다. 부르는 노래는 동네 아마추어 합창단 연습곡이거나 주일 찬양곡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메인 멜로디가 아닌 베이스 파트 선율이라는 게 한계이긴 하다. 청소기의 웅웅대는 소음과 은근히 잘 어우러진다. 이것이 나만의 생각, 나만의 만족이라는 걸 모르고 있지는 않아서 남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의 볼륨으로 나지막이 대략 두세 곡 정도의 노동요를 부른다. 대략 십 분 남짓 소요된다.
청소기로 먼지 청소를 마치면 물걸레로 바닥과 테이블 발판을 닦는다. 이때는 노래를 흥얼거리지 않는다. 걸레질에만 집중한다. 어릴 적 페인트칠하는 컴퓨터용 게임을 하듯이 물걸레가 지나가지 않은 곳이 한 군데도 남지 않도록 구석구석 하는 게 관건이다. 바닥은 대리석으로 되어 있는데, 20년 전 매장 영업 개시할 때 시공했던 것을 아직도 그대로 쓰고 있다. 그 당시 인테리어 업계에 종사하던 친구가 우리 매장 공사를 맡아 진행하면서 ‘이 수입 대리석이 단가는 좀 있지만 오래 쓰고 물리지 않을 거야.’라고 할 때 어련히 전문가가 알아서 하겠지하며 믿고 맡겼었던 제품이다. 중간중간 청소업체에 부탁해서 대리석 표면을 갈고 나면 다시 산뜻한 색상과 문양이 되살아난다.
청소를 마치면 탁자와 의자를 가지런히 정렬한다. 바닥의 눈금에 탁자 발판 끝을 맞추고 탁자들 사이의 간격을 조절하고 의자들이 너무 깊지도 너무 엷지도 않게 탁자에 들어가도록 배열한다. 영업을 시작하고 손님들이 앉으면 흐트러질 게 당연하지만, 아침에 개점하러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차분하고 단정하고 깔끔한 느낌으로 하루 일과가 시작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정리한다. (물론 내가 매장을 개점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마감 청소는 마치 리셋 버튼을 누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주방도, 커피머신도, 쇼케이스도, 일 매출 기록도, 갓 정리를 마무리한 홀 상태처럼 다시 내일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 리셋된다. 오늘의 하루를, 손님이 많았든 적었든 힘들고 고단했든 무료하고 지루했든 상관 없이 모든 성격의 하루를, 다시 처음으로 돌려놓는 의식이다.
내일 아침, 첫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마주할 공기가 '어제의 피로'가 아닌 '오늘의 환대'이길 바라며 나는 마지막 의자의 오와 열을 맞춘다. 비록 내일이면 다시 흐트러질지라도, 매일 밤 이토록 정성껏 리셋 버튼을 누르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리가 이 공간을 이토록 아끼고 있다는 고백이자, 내일 우리를 찾아올 누군가의 하루가 새로운 시작이길 바라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모든 조명을 끄고 매장을 나서는 길, 등 뒤로 정렬된 의자들이 어둠 속에서 차분하게 내일을 기다리고 있다. 어제가 오늘이 되고, 오늘이 내일이 되는 이 평범하고도 위대한 순환과 반복이 이어질 수 있음에 그저 모든 게 감사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