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차에는 케이크가 타고 있어요

by 영두리

자동차 운전 행태를 돌이켜 보니 크게 세 가지 주행모드가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나의 주행모드는 동반 탑승자에 따라 달라진다.


출퇴근이나 원거리 출장 때에는 대부분 혼자 탑승하게 되는데, 이때는 차선 흐름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2차선과 1차선을 오가며 운전한다. 주행선과 추월선에 대해 까탈스러울 정도로 민감한 편이긴 하나, 그렇다고 2차선에서 앞차 뒤꽁무니만 마냥 졸졸 따라가는 스타일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그렇게 운전을 해대면서도 길안내 용도로 주로 사용하는 티맵 측정 운전점수는 98점대에 육박한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규정 속도 이상으로 지르지도 않고, 급출발 급정거도 거의 하지 않는 느긋한 운전 스타일이다.


종종 써니가 옆자리에 앉게 되면 운전은 평소보다 조금 더 조심스러워진다. 마치 운전면허 도로주행 심사관을 옆에 태운 것처럼 운전한다. 제한속도 초과를 경고하는 알람도 싫어하고(명상 내지 수면을 방해한다), 급정거와 급가속도 싫어하고(옆에서 양손에 간식과 음료를 들고 챙겨주는 상황이 많다), 주변 차량의 경적 소리에 예민한 스타일(우리 차 때문에 그러는 거냐는 질문이 바로 이어진다)이다 보니, 혼자 운전할 때보다는 더 신경 써서 운전하는 편이다. 연애 시절-이미 기억에서 가물거릴 정도로 예스럽긴 하나- 급정거 상황에서 오른팔을 급히 뻗어 상체 쏠림을 제지하는 즉각 반응에 대해 무척 고마워했던 때가 있었는데 최근에는 그런 상황마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차에 케이크 상자가 실리는 경우가 있다. 매장 근처에 케이크를 배달해야 한다거나, 본사 공장에서 급히 케이크를 공수해 와야 한다거나, 회사에 간식용 케이크를 가져간다거나 하는 경우다. 케이크라는 존재가 트렁크나 뒷좌석에 실리게 되면 운전 스타일은 완전히 달라진다. 운전하는 내내 ‘이 차에는 케이크가 실려 있다’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예전에는 케이크 밑판에 자그마한 고정 핀을 두어서 케이크가 밀리지 않도록 하곤 했는데, 이물질 취식 사고가 자주 발생하면서 이 고정 핀은 사라진 지 오래다. 케이크 상자가 조금만 흔들려도 밑판 위에서 쏠리거나 밀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보니, 케이크를 싣고 운전하다가 할 수 없이 급정거하는 경우 케이크 상자 안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는 일종의 노이로제 비슷한 버릇이 생겼다. 특히 그 케이크가 티라미수인 경우라면 운전은 더욱 예민해진다. 케이크 위에 덥혀 있는 코코아파우더는 자칫 요철 구간을 급히 지나치게 되면 여지없이 사방으로 날린다. 케이크 상자를 열어보지 않아도 상자 안의 상황에 예측될 정도다. 이럴 때는 정말이지 차 뒷유리에 ‘이 차에는 케이크가 타고 있어요’라는 스티커를 만들어서 눈에 띄게 붙여두고 싶기도 하다.


생각해 보니 결국 내 운전의 주행모드를 결정하는 것은 자동차의 성능이나 편의사양이 아니라, 내가 누구와 함께 있고, 무엇을 싣고 가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 돌발 신호와 급커브와 요철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세상이라는 도로를 주행하면서도, 시간과 바꿔도 아깝지 않은, 내게 지극히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한 나만의 배려이자 노력의 일환이다.

남들이 보기엔 조금 답답하고 느린 주행일지 모르나, 목적지에 도착해 상자를 열었을 때 흐트러짐 없는 온전한 모양을 마주할 수 있다면 그 수고로움은 충분히 값진 것이다. 내 차 뒷유리에 붙지 못한 그 가상의 스티커는, 어쩌면 내 마음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붙어 나를 이토록 조신한 운전자로 만들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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