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토 피아노

by 영두리
이 부분에서 작곡자가 제시한 악상 기호를 유의해서 표현해야 해요. 자, 보세요. 메조 피아노로 진행하다가 메조 포르테로 커지면서 크레센도 표시가 되어 있죠? 그리고 나서 수비토 피아노가 적혀 있어요. ‘갑자기 여리게’라는 뜻이에요. 격정적으로 치닫다가 갑자기 여리게 전환되는 그 느낌을 살려야 해요.


성가대 지휘를 맡은 전도사님이 이번 주 찬양에서 놓쳐서는 안 될 핵심 부분들을 쪽집게 과외 하듯이 요소요소 알려주고 있다. 1부 예배를 섬기는 성가대에 소속되어 활동 중이다. 오전 7시 20분 1부 예배 시작 전에 찬양 연습을 마쳐야 하기에 매주 주일 아침 6시까지 출석해야만 한다. 연습시간은 항상 빠듯하다. 파트별 음정을 세세히 점검하고 지도할 짬이 나지 않는다. 개인별 연습을 충실히 해왔다는 전제 아래서 전반적인 곡 흐름과 강조 포인트 위주로 대략 3~40분 정도 소리를 맞추고 본당 리허설을 위해 이동해야만 한다.


이번 주 찬양에서 특히 강조되는 부분은 작곡자의 의도를 살린 강약 조절이었다. 특정 가사가 반복되는데 그걸 무턱대고 같은 세기로 부르면 밋밋하고 재미없다. 의미를 따져 보면 같은 가사가 반복되면서 조금씩 더 강조되는 부분이니 점점 세게 변하도록 불러야만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곡의 분위기가 바뀐다. 이 부분에 ‘sub. p’라는 악상기호가 조그맣게 적혀 있다. 성가대원들은 하나같이 필기구를 꺼내서 그 부분에 동그라미를 치고 별표를 그리고 ‘갑자기 여리게’라고 한글로도 적어둔다. 지휘를 보면서 찬양한다면 분명히 몸짓과 표정으로 지휘하는 전도사님 특유의 ‘깜짝 놀라며 쪼그라든 듯한 연출’을 보며 이 부분을 알아챌 수 있을 테지만, 막상 본 예배 찬양 때 악보에서 눈을 못 뗄 상황일 수도 있어서 나도 열심히 강조 표시를 해둔다.


이번 주 찬양도 무사히 은혜 가운데 마쳤다. 예배에 참여한 성도들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다 보니 지휘자님의 지휘 너머 성도들의 모습까지 살피는 여유마저 조금 생겼다. 우리의 화음 한 음 한 음에 집중하는 모습과 함께 내가 전하고자 한 가사의 의미가 오롯이 전해지는 게 성도들의 표정으로 확인된다. 찬양은 일반 합창과는 또 다른 장르가 아닐까 싶다. 아름다운 찬양은 기교와 실력보다는 진정성을 가지고 노랫말에 담긴 참뜻을 가사를 전달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짧고도 어수선했던 2월은 이틀 동안의 프로젝트 중간점검 워크숍으로 끝났다. 삼일절 대체휴일을 낀 3일간의 연휴를 맞이하기 전에, 프로젝트 일정 중반을 넘어서는 시점에 도래한 김에 원래 일정에는 따로 계획되어 있지 않았던 ‘하프타임’ 행사를 집어넣었다. 스스로 옥죈 족쇄처럼 월말이 다가올수록 행사 부담은 점점 커졌고 그만큼 준비하는 손길이 바빠졌다. 시스템 구축 진행사항을 가시적으로 보여주고 설명하기 위해서 팀원들과 나 자신을 닦달하고 채근했다. 중간점검 행사는 큰 이슈 없이, 남은 기간에 대한 안정적 진행 당부와 함께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3월 초에 맞이한 3일간의 연휴는 ‘수비토 피아노’의 느낌이었다. 종결은 아니지만 훅 달아올라서 절정으로 치닫다가 갑자기 사그러들어 고요하고 조심스럽게 새로운 구간으로 진입하는 느낌, 매장에서는 2월말 매출 결산을 마치고 새로 원점에서부터 3월 매출을 시작하는 느낌, 마침 3월 새학년 시즌과 겹쳐서 여전히 남아있는 학창시절 버릇으로 새로운 설렘을 품는 느낌, 차가운 공기가 순해지고 옷차림이 부드러워지고 마음이 새삼 다시 열리는 느낌. 그런 3월이 ‘갑자기 여리게’ 시작되었다.


일상이라는 제목의 나만의 악보 위에 펜을 들어 슬쩍 ‘sub. p’라고 소심하게 적어 놓는다. 절대 대문자로 적어서는 안 된다. 저 악상기호는 소문자가 어울린다. 그 위에 나만이 볼 수 있는 동그라미 몇 개, 별표 몇 개를 더한다. 어지러웠던 2월의 프로젝트 진행도, 숨 가쁘게 달려왔을 우리 매장의 매출 기록도 잠시 내려놓고, 다시 낮은음에서부터 차분히 쌓아 올리며 리셋하라는 격려 같다.

인생이라는 곡에서 가장 아름다운 울림은 가장 크게 내지르는 순간이 아니라, 폭풍 같은 연주 뒤에 찾아온 이 고요한 여백에서부터 다시 시작된다는 걸 이제는 안다. 3월의 첫 손님, 3월의 첫 출근, 3월의 모든 처음을 기다리며 나는 가장 여린 목소리로 봄의 인사를 준비한다.


반가워, 3월.

작가의 이전글이 차에는 케이크가 타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