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라도 어디 여행이나 다녀올까?
길게는 못 떠나겠고, 그냥 1박2일이라도 바람 쐬러 다녀왔으면 좋겠다.
다행히 3월 중에는 회사 일정상 좀 여유가 있으니 한 번 알아보자.
두 번의 긴 연휴 기간을 매장에 머물다가 결국 써니와 의기투합했다. 4월에 좀 길게 그리고 좀 멀리 훅 떠나는 걸 궁리 중이었으나 아무래도 무리가 따랐다. 회사 프로젝트 진행도, 아르바이트생 여건도, 신경 써서 챙겨야 하는 가족도, 자리를 며칠 비워야만 한다는 결정에 변수로 작용했다. 둘 다 일단 지르고 보자는 성격이 아니다 보니 결정된 바 없이 차일피일 미루던 차다.
결정한 김에 재빨리 실행에 옮긴다. 나는 가고 싶은 지역을 정하고, 써니는 그 지역 내 숙소를 정한다. 나는 주변 관광지를 찾아보고, 써니는 맛집과 카페를 추린다. 일정은 두 사람이 모두 자유로운 날짜여야 한다. 주말 주일은 매장 상황 때문에 안 되고, 매주 수요일은 병원을 방문해야 하니 안 되고... 결국 선택지는 월요일에서 화요일, 혹은 목요일에서 금요일 둘 중 하나인데, 아무래도 후자보다는 전자가 심적 부담이 적다. 더 망설이다간 이마저도 못 떠날 것 같아서 서둘러 숙소를 예약하고 결제까지 마친다.
그래, 떠나자.
예전에 ‘치유 공간정보 구축’이라는 색다른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면서 그 지역 관광학과 교수님과 교류가 있었다. 여러 차례 업무 미팅을 하던 중에 평소 궁금했던 게 있어서 여쭤봤다.
왜 ‘관광’과 관련된 학과는 있는데, ‘여행’에 관련된 학과는 없을까요?
관광학과, 관광경영학과, 문화관광학과, 호텔관광학과, 글로벌관광서비스학과 등 ‘관광’을 대상으로 한 학과명은 들어봤으나, 나의 짧은 식견으로는 ‘여행’이 들어간 학과를 본 적이 없었다. 교수님은 친절하고 자상하게 사전적 해석과 학술적 용어를 통해 그 둘을 변별해 주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관광은 ‘보는 즐거움과 휴식’에 초점을, 여행은 ‘가는 과정의 가치와 경험’에 초점을 둔다고 자의적 해석을 보태서 이해했던 것 같다.
돌이켜보니 매번 관광으로 계획을 세웠다가 여행으로 끝난 느낌이다. 호기롭게 시간 단위를 쪼개고 방문지 후보를 나열해서 전체 일정표를 만들고 떠나지만, 단 한 번도 그 계획대로 진행된 적이 없다. 교통 흐름이 수시로 바뀌고 날씨가 변덕을 부리고 예상치 못한 풍경에 발목 잡히고 난데없이 끌리는 음식이 생기다 보면 일정 계획은 그저 참고용 자료가 되고 만다. 이번 계획 역시 마찬가지일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게 그 나름의 묘미인 것 같다. 어디(where)를 가서 무엇(what)을 보고 올 것인지 계획을 세워 길을 나서는 게 관광이었다면, 결국 누구(who)와 어떻게(how) 그 시간(when)을 즐기고 돌아왔는가에 대한 기억이 더 강하게 남는 것이 여행일 것 같다, 우리에게는 여행의 압승이다.
나에게 관광과 여행의 차이점을 정의하라고 한다면, 나는 그 단어를 듣거나 말할 때 가슴이 뛰는지 아닌지로 구별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관광을 생각하면 별반 반응 없이 시큰둥한 느낌이지만, 여행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류시화 시인이 ‘지구별 관광자’라는 책을 내었다면 펼쳐보기라도 했을까? 알랭 드 보통이 ‘관광의 기술’을 말하고 김영하 작가가 ‘관광의 이유’를 적었다면 지금처럼 책꽂이에 비치해 두고 생각날 때마다 읽고 있었을까? ‘한국여행공사’가 있다면 얼마나 매력적일까?
길을 나섰던 이유(why)는 아마도 여기에 있었을 테다. 무언가 보고 즐기러 떠난 게 아니라, 함께 소중한 시간을 남기러 떠났기 때문이 아닐까. 지도를 따라가는 관광이 아니라 마음을 따라가며 우리의 이야기를 남기는 여행이 되기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