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보러 갈래?

by 영두리

써니와 함께 오래간만에 강릉으로 1박2일 짧은 일정의 여행을 다녀왔다. 봄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싸늘한 기운이 남아 있는 3월 중순이지만, 날씨나 볼거리를 고려하기에 앞서 회사 일정과 매장 아르바이트생 상황이 우선이다 보니 다소 어정쩡한 때로 정해서 떠났다.


여행은 여행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리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달력과 함께 두 사람의 일정표를 나란히 펼쳐놓고, 아직 아무런 일정이 없는 날과 확률상 급한 일정이 갑자기 생기지 않을 것 같은 날을 몇 개 간추리곤 그중 하나를 골랐다. 그 다음은 행선지를 정할 차례다. 그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참 동안 들르지 못했던 강릉으로 망설임 없이 정했다. 불과 몇 년 사이 새로운 숙박시설이 생겼나 보다. 송정해수욕장을 끼고 있는, 작년에 오픈한 새로운 호텔로 1박을 예약했다.


둘 다 제이(J) 성향에 따라 항상 여행계획을 세우고 떠나지만 막상 여행지에 도착하면 매번 현실은 다르다. 그래도 크게 실망하는 적은 없다. 다행스럽게도 여행 내내 에프(F) 기질이 발동하여 변화무쌍한 상황마저 공감해 버린다. 써니는 오랜만의 강릉 여행을 위해 몇몇 둘러볼 곳을 찾아서 카톡으로 전달해 준다. 본다. 나는 그것들을 토대로 방문지 후보 목록을 만든다. 써니의 목록에는 호기심 끄는 카페와 베이커리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나는 그 목록에 산책 삼아 둘러볼 몇몇 곳을 거든다.


안반데기가 강릉에 있네? 거기 가볼까?
안반데기? TV에서 소개하는 걸 얼핏 본 것 같기도 한데... 별이 잘 보인다는 곳이었던가?
응, 맞아. 별 구경하러 가는 곳이라고 하네. 우리, 별 보러 갈래?


그렇게 목록에 안반데기도 추가해 두었다. 요즘 가뜩이나 별 볼 일 없던 일상이었는데, 별 보러 가자는 그 말에 새로운 기대가 부풀었다. 인터넷을 뒤져 몇몇 방문기를 읽어보고, 스마트폰으로 별 사진을 어떻게 찍는지도 미리 찾아보며 소년처럼 내심 설렜다. 숙소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슬슬 움직이기만 해도 수많은 별이 펼쳐진 풍경을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겨울의 꼬리는 길었다. 따지고 보면 3월이라고는 하지만 음력으로는 여전히 정월에 해당했다. 겨울이 음력으로 달력을 세며 아직 나의 때는 끝나지 않았다고 버티는 것처럼, 여행을 고작 일주일 남겨둔 때에 꽃샘추위가 찾아왔다. 영하의 기온으로 회귀했으며, 심지어 영동지역에는 봄비가 아닌 꽤 많은 양의 눈이 내렸다는 일기예보도 들렸다. 여행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강릉의 일기예보를 눈여겨보면서 하필이면 여행 당일 저녁과 밤 시간대에 표시된 ‘구름 많음’ 아이콘이 신경 쓰였다. 상황이 여의찮으면 할 수 없지 뭐, 하며 에둘러 기대를 낮추었다.


강릉으로 향하는 도로 위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느긋하게 움직이면서 새말 IC에서 빠져나와 이른 점심으로 막국수에 녹두전도 즐겼다. 강릉에 도착해서는 소화를 시킬 겸해서 오죽헌을 둘러보았다. 아직 매화는 절정에 이르지 않았으나, 그나마 그중 성미 급한 몇몇 나무가 때 이른 춘상객을 반겼다. 바깥채 툇마루에 앉아서 봄 햇볕을 쬐며 막 개화한 율곡매를 한참 동안 감상하였다. 단팥빵 매니아인 써니를 위해 일부러 초당 쪽에 있는 단팥빵 전문점을 찾았으나 이미 판매 물량이 소진되었다는 입구 푯말을 보고 되돌아 나왔다. 음식류 판매 자영업을 하는 처지에서는 아쉬우면서도 한껏 부럽기만 한 문구였다. 후보 목록에 올려두었던 카페에 들렀고, 어떤 맛일지 궁금했던 시그니처 카페라떼를 주문했으나 별반 감흥을 얻지 못하고 잠시 머물다가 나왔다. 예닐곱 개 후보에 올려두었던 목록에서 하나를 지웠다.


써니가 일부러 여행 목록에 올려놓았던 독립서점 ‘당신의강릉’에 들러서 한참을 머물렀다. 언제부터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여행을 가면 그 지역 색깔을 담은 서점에 들러보려고 노력 중이다. 서점과 출판사 운영자이면서 저자이며 강사이기도 한 김민섭 작가와 마주쳤다면 더 좋았을 텐데 우연한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 대신 우리 케이크 매장에 놓아둘 책 두 권을 구입해서 나왔다. 숙소에 들러 체크인을 하고, 딱 마음에 드는 전망과 객실 상태에 매우 흡족해하며 여장을 풀어놓았다. 여전히 겨울 바다 느낌이 아직 남아 있는 한적한 모래사장에 나가서 바다의 멈추지 않는 수다를 들어주며 잠시 걷다가 근처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나눴다. 아직은 구름이 남아 있는 상태인데,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스마트폰으로 날씨를 검색한다. 날씨를 예보하는 아이콘이 구름 많음에서 맑음으로 바뀌었다.(심지어 달과 별 모양으로 되어 있는 마음에 드는 아이콘이다.)


내비게이션에 안반데기 주차장을 목적지로 설정하고 밤길을 나섰다. 강릉 시내를 벗어나자 가로등-탕후루 모양을 닮았다-조차 없는 깜깜한 국도가 시작되었다. 큰 저수지와 구불구불한 물줄기를 곁에 끼고 있는 도로라는 것을 내비게이션 지도 상으로 어렴풋이 알아챌 수 있을 뿐, 눈에 보이는 것은 그냥 헤드라이트가 미치는 반경 내에서 인지되는 몇 십 미터 앞 도로가 고작이었다. 우리가 뒤쫓거나 우리 뒤를 따라오는 차가 한 대도 없고 마주 오는 차도 몇 대 안 되다 보니 상향전조등을 켰다가 껐다가 하면서 한참을 달렸다. 산길로 접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왕복 2차선 도로인데, 도로 양쪽으로는 여전히 눈이 쌓여 있다. 제설작업을 한 지는 좀 된 듯 도로 중앙 부분은 마른 바닥이 느껴지긴 했지만 군데군데 젖어있는 곳도 꽤 많다. 자동차 디스플레이에 있는 온도계를 확인하니 어느새 0도에 가깝게 떨어지고 있었다. 슬슬 걱정과 불안이 커졌다.


거기에 아무도 안 가나 봐. 우리 차 밖에 안 보이는데? 별 안 봐도 되는데.


써니가 조심히 입을 열었다. 굳이 끝까지 갈 거냐는 속내가 느껴지는 말이다. 나도 가타부타 대꾸를 하진 않았지만 내심 불안하긴 했다. 초행길인 데다가 칠흑같이 깜깜하고 분명히 어딘가는 결빙 구간이 있을 게 당연해 보이는 도로 상태가 마음속 걱정을 키웠다. 그 상태로 대략 3~4km 정도는 더 가야만 목적지에 도착한다. 차를 돌릴까 말까 망설이는 와중에도 그냥 계속 어둠 속으로 나아갔다. 눈이 쌓여 있는 급회전 오르막 구간도 점점 더 많이 눈에 띄었다. 느낌상 꽤 오랜 시간 주행한 끝에 마침내 안반데기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찾아본 자료에서는 마을이 있고 카페가 있다고 되어 있었는데 가로등 몇 개 켜져 있을 뿐 아무런 인기척 없이 깜깜하고 고요하기만 하다.


저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이긴 하는데... 가볼까?


막상 운을 뗐지만 사실 차를 돌려서 내려갈까도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도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자는 생각에 조금 더 차를 몰아 길을 나섰다. 언덕 위 거대한 풍력 발전기 발치에 이르러서 다시 멈췄다. 헤드라이트에 비친 길은 아직 어둠 속에 남아 있는데 더 이상 나아갈 자신이 없었다. 차 머리를 돌린다면 딱 여기가 적당하겠다 싶었다. 차에서 내려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이 어둠에 적응하면서 서서히 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시에서 하나 둘 셋 넷 하며 겨우 세던 것과는 전혀 다른 별들의 세상이었다. 써니도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차에서 내렸고, 이내 탄성을 질렀다. 별밭이다!


셀카봉의 손잡이를 벌려 간이 삼각대를 세우고 스마트폰을 고정한다. 카메라의 전문가 모드로 진입해서 ISO는 높이고 셔터 스피드는 한참 늦춰 세팅한다. 몇 컷의 사진을 찍고, 확인하고, 지우고, 다시 찍었다. 시력이 약한 내 눈에 보이지 않았던 별들까지도 사진에는 무수히 담겨 있었다. 이름을 아는 별자리라고는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 자리, W 형태의 카시오페이아, 사이좋은 삼형제 오리온이 전부인데, 운 좋게도 한번에 북두칠성과 오리온을 찾아냈다.


조금 멀리 떨어진 산 정상에서 차 한 대가 라이트를 켜고 슬금슬금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아까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차였다. 아마도 별빛 관람을 위해서 차량 라이트조차 꺼두고 있었나 보다. 우리 차가 주차한 곳을 지나칠 때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행여라도 차 옆에 멈춰 선다면 정상 풍경은 어떠며 오르는 길은 험하지 않은지 물어보려고 했으나, 마치 길을 얼른 비켜주려는 의도인 것처럼 망설임 일절 없이 그냥 지나쳐 갔다.


용기와 욕심을 내어 나도 산 정상 방향으로 차를 움직였다. 하지만, 길에 접어들자마자 후회가 시작되었다. 딱 차 한 대가 겨우 갈 수 있는 좁은 길이 시작되었고, 길 옆으로는 가파른 어둠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차를 돌릴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있다면 당장에라도 돌리고 싶었으나 그런 공간을 찾기 쉽지 않다. 여차하면 후진을 해서 되돌아가야 할 것 같았는데, 그 좁고 깜깜한 오르막길에서 후진을 선택한다는 것은 더욱 무모해 보였다. 할 수 없이 이 길의 끝에 부디 너른 공간이 있길 바라며 조심히 그리고 천천히 정상을 향해 올랐다. 다행히도 그 정상에는 차를 네댓 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고, 이미 올라와 있던 한 대의 차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둠 속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빛이 사라진 세상, 별들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마치 망설임 끝에 결단을 내린 선택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이 진풍경이 펼쳐졌다. 이것은 진(珍)풍경이 아니라 진(辰)풍경이라고 해야겠다. ‘별’천지요, ‘별’세계였다. 별 볼 일 없던 일상에서 고생 끝에 별을 얻은 성취감(星取感)마저 느껴졌다.


겨우 올라서서 별을 보긴 했는데 그곳에 그다지 오래 머무르지는 못했다. 날씨도 춥고, 아무도 없는 적막 속에 풍력발전기가 스윽스윽 돌아가는 소리도 스산하고, 마감 시간 전에 숙소에 가서 내일 케이크 배송 물량 주문도 처리해야만 했다. 차를 돌려서 다시 조심스럽게 내리막을 되짚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슬쩍슬쩍 ABS가 작동할 정도로 군데군데 결빙 구간이 있다 보니 신경은 바짝 곤두섰다. 산길에서 빠져나와 일반도로로 접어들 때까지 딱 한 대의 차량을 마주쳤다. 상향등을 해제하고 길 옆으로 비켜주면서 안전운전을 기원했다. 별을 보러 가는 길인지, 마을로 귀가하는 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야외 주차장에 주차한 뒤 혹시나 해서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아주 몇몇 별만 희미하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고 서로 위로하며 웃었다. 깜깜한 산길에서 써니가 "별 안 봐도 된다"고 말했을 때, 사실 그건 별이 궁금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운전대를 잡은 내 불안을 읽었기 때문임을 안다. 그럼에도 끝까지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과 의지 때문이었던 것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도시의 불빛 속으로 돌아온 후 안반데기에서 마주한 풍경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별 볼 일 없는 하루가 반복되더라도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우리만의 소중한 별밭이 가슴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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