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오르면서 ‘오늘은 정신없고 힘들었던 악몽같은 하루였어.’라고 느끼는 것보다 ‘오늘도 역시 쳇바퀴 도는 것처럼 일상적인 하루였어.’라고 여겨지는 날이 잦아질수록 점점 의기소침해진다. 패턴화된, 무미건조한, 느낌 와닿지 않은 일상이, 하루를 넘어 이틀이 되고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훌쩍 넘어가게 되면, 조급증은 극으로 치닫고 자괴감도 부풀어 오를 대로 오르고 뭐든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 상태가 되고 만다.
이럴 때 특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무언가에 집중하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마음 놓고 책을 보거나, 공연이나 영화를 즐기거나, 오랜 벗에게 연락해 오래간만에 이야기를 나누는 것조차도 이런 상태에서는 어울리잖는 호사를 누리는 것인 양 여겨져서 자제하게 된다. 째깍거리며 걸음을 재촉하는 크로노스의 행보를 그저 의미 없이 흘려 버린다.
그러다가 문득 예전에 팽이에 대해서 써두었던 글을 발견했다. 아침 출근길에 특정 단어에 꽂히면 하루 종일 묵상하고 글을 남기던 때에 ‘오꽂단(오늘 꽂힌 단어)’이라는 말머리를 달고 두서없이 글을 쓰곤 했는데 그 글 중 하나를 다시 꺼내 들었다.
팽이가 쓰러지지 않고 오래 회전을 유지하려면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회전축이 되는 중심이 곧고 튼실해야 한다. 둘째, 몸통의 반경이 클수록 안정적이다. 셋째, 무엇보다 끊임없는 채찍질이 필요하다.
매사가 그런 것 같다. 뭐든지 오래 유지되려면 위 세 가지 팽이 회전 조건을 대입할 수 있겠다. 탄탄하고 흔들림 없는 신념과 철학이 있어야 하고, 주변을 아우르는 넉넉한 포용력이 필요하며, 시시때때로 일깨워 주고 일으켜 주는 외부의 자극도 있어야 한다. 사회생활도, 인간관계도, 신앙 활동도, 매장 영업도 모두 마찬가지다.
팽이를 일컫는 한자로는 '尜(팽이 가)'가 있다. 글자를 만든 원리가 참 독특하다. 위와 아래에는 작을 소(小)를 두고, 가운데에 클 대(大)를 끼워 넣은 모양새다. 머리와 발끝은 뾰족하고 몸통은 크다는 의미를 담은 넉넉하고 든든한 품새가 느껴지는, 내면의 신념(축)은 정교하게 다듬되 삶의 반경(품)은 넉넉하게 키우는 것을 의미하는 듯한 글자다. 영어로 팽이는 ‘top’이라고 쓰는 것도, 어원상으로는 크게 관련 없다고는 하지만, 의미를 갖다 붙이는 재미가 있다. 왠지 저 위에 나열한 원칙만이라도 제대로 지킨다면 ‘top’이 될 것만 같다.
그리스의 시인 호머(Homer)는 《일리아드(Iliad)》에서 트로이의 몰락을 빗대어 “마지막 회전에 가까워져서 비틀거리는 팽이처럼 휘청거렸다”라고 썼다고 한다. 아무리 멋진 팽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끊임없는 채찍질이 없으면 휘청거리며 결국에는 멈춰 설 것이다. 생각과 방향을 곧게 세우고, 넓고 깊게 끌어안으며,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게 안팎으로 단속하며 다시 한번 달려야겠다.
생각해 보면 써니가 매장에서 생크림을 만들 때도 한참 동안의 '휘핑(Whipping)'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단단하고 풍성한 질감이 살아난다. 휘핑이라는 단어가 ‘채찍질’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으니 이 역시 일종의 팽이일 수 있겠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일상의 고단함과 스스로를 다그치는 마음도, 어쩌면 나라는 팽이가 멈추지 않도록, 내 삶이라는 생크림이 쉽게 무너지거나 주저앉지 않도록 가해지는 필연적인 '채찍질'일지 모른다.
팽이가 가장 안정적일 때 겉보기엔 멈춰있는 것처럼 보이듯, 나의 무미건조한 일상 또한 사실은 가장 치열하게 균형을 잡고 있다는 증거일 터다. 자, 이제 다시 팽이채를 든다. 비틀거릴 틈 없이, 더 꼿꼿하고 넉넉하게. 오늘도 나는 나만의 속도로 아름답게 회전하는 중이다. 쓰러지지 않으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