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눈을 기억하는 마음으로

by 영두리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유명한 라틴어 구절이 있다.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절대 진리가 있음을 잊지 말고 반드시 기억하라는 의미다. 처음이 있으면 끝이 있고 삶이 있으면 죽음이 따라붙는 게 당연할 텐데, 여전히 처음과 삶에 대해서만 관심을 두고 기억하는 것 같다.


몇 년 전 겨울 초입에 첫눈이 왔을 때 페이스북 담벼락에 짧게 끼적여 놓았던 글이 생각난다.


첫눈이 왔다.
'첫눈'을 '첫 눈'으로 띄어 쓰면 멋없다. 관형사인지 합성어인지를 따지는 것과 상관없이, 그냥 오롯이 첫눈이어야 한다. 모든 '첫'은 기억하고 기록해야만 한다. 그 역사적인 시작이 오늘이다.


다행히도 문법상으로도 ‘첫눈’은 일부러 띄어 쓰지 않는다. ‘첫’이라는 단어가 독립적으로 쓰이는 관형사임에도 불구하고 몇몇 단어에게는 붙여쓰기를 허용했다. ‘첫날·첫선·첫발자국·첫출발·첫인상·첫마디·첫사랑’ 등 우리가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많은 ‘처음’들은 합성어의 자격으로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생각 같아선 모든 처음들에게 붙여쓰일 권한을 부여하고 싶다. 하루 장사의 시작을 열어준 마수걸이 손님은 ‘첫손님’이라고 써야 할 것 같다. 그 손님이 우리 매장에 처음 왔다면 ‘첫방문’이어야 하고, 그것을 기억하자면 우리의 ‘첫만남’이라는 단어로 기억하고 싶다. 딱 한 번일 수 있는, 0에서 1이 되고 무에서 유가 되는, 전혀 차원이 다른 소중한 역사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첫’ 예찬론자로 지냈었는데 문득 정반대 방향에 있는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3월에 접어들면서 드디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서둘러 오는 듯 영상 10도를 훌쩍 넘는 날씨가 이어졌는데, 얼마 전 말 그대로 꽃샘추위가 보란 듯이 찾아들었다. 기온은 시간을 거슬러 다시 한겨울이 된 듯 영하권으로 곤두박질치고 하루 종일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마침내 한밤에 들어서며 탐스러운 눈송이로 바뀌었다. 그런데, 첫눈은 그렇게 고유명사인 양 소중하게 기록하고 칭송했었으면서도 막상 마지막 눈에 대해서는 한 줄 짧은 감상도 붙이지 않았다. 처음 내렸던 눈이 ‘첫눈’이었다면 마지막 찾아온 눈은 ‘끝눈’(막차나 막판처럼 막눈이라고 쓰고 싶지만 의도치 않게 다른 의미로 해석될 것 같으니)이라고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내린 그 눈을 굳이 기리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 눈이 마지막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모호한 날씨 때문일 수도 있다. 칼로 케이크 자르듯 단언하며 ‘끝’이라도 선언하기에는 예측할 수 없는 추위가 이어져서일지도 모른다. 아니다. 그건 핑계에 불과하다. 굳이 마지막을 기억하고 느끼고 새길 생각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아직까지 다소 스산하긴 해도 3월에 이른 달력은 봄에 들어선 게 확실하며, 조만간 새로운 계절을 알리는 꽃들이 여기저기서 필 테고, 그렇게 지난겨울은 까맣게 잊어버릴 게 분명하니 슬쩍 스쳐 간 끝눈 따위는 신경 쓰이지 않았을 테다.


얼마 전 고인이 되신 연기자 이순재 선생님의 인터뷰 중에 “대사를 외울 수 있을 때까지는 연기하고 싶다. 매 작품이 유작이라는 마음으로 임한다”라는 말이 기억난다. 지금 맡은 작품, 지금 외우는 대사, 지금 연습하는 연기가 어쩌면 생의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장인의 간절함을 가슴속에 새긴다. 마지막이라는 것은 없을 것처럼 처음만 기억하며 살던 나는 매 순간을 마지막처럼 사셨던 그 분의 말씀을 떠올리며 여전히 부족함을 느낀다.


돌이켜보면 내 삶의 수많은 '마지막'들은 예고 없이 찾아왔고, 나는 그것들을 어처구니없이 소홀하게 흘려보냈다. 지인들과 나누었던 가벼운 식사와 담화와 인사가 정말 마지막이 될 줄 알았다면 더 뜨겁게 나누고 끌어안았을 것이다. 다음 기회라는 게 주어질 거라는 알량한 예견으로 소중한 마지막을 놓친 것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온갖 처음은 기억하고 있으면서, 그게 마치 영원히 되풀이되고 지속될 것처럼 마지막을 생각하지 않은 채 지내온 날들을 돌아본다. 20년 전 첫 매장을 열던 날의 두근거림과 설렘은 아직도 생생하지만, 언젠가 이 매장 역시 마지막 날을 맞이할 것이다. 오늘 들렀던 고객이 그날까지 다시 들르지 않는다면 아마도 그게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 될 것이다. 이 모든 순간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익숙했던 일상이 갑자기 낯설고 귀하게 다가온다.


죽음이라는 주제는 너무나 무겁고 부담된다. 의식적으로 피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죽음은 아니더라도 마지막이 있음을 기억하는 것, ‘메멘토 피시스(memento finis)’ 정도를 새기고 사는 것은 어떨까?

흩날리는 끝눈을 바라보며, 나는 비로소 마지막의 아름다움을 배운다. 처음의 설렘만큼이나 마지막의 고요함도 소중하다는 것을. 겨울의 끝눈이 녹아서 봄꽃의 거름이 된다. 모든 끝은 또 다른 시작의 씨앗을 품고 있다. 우리 삶의 마지막 순간들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기억과 유산으로 남아 새로운 생명을 키워낼 것이다.

오늘도 나는 내 삶의 마지막 장(Chapter)을 써 내려간다는 마음으로, 가장 다정하고 진실한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첫'인사이자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작가의 이전글기도 ‘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