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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리안러버 Nov 03. 2022

멀고 먼 발리 가는 길 -3

매일 비슷하게 흘러가는 나날에 딱히 글을 쓸 거리가 많지 않다.

우리는 아직도 남편의 고향에 머물고 있다. 시댁에는 가정부가 있기 때문에 빨래와 요리, 청소 걱정이 없이 살 수 있어서 좋다. 싱가폴에서는 바쁘게 집안일을 하며 아이가 늘어놓은 장난감을 틈틈이 치우다가 버럭 아이에게 짜증을 내기 일쑤였던 반면 여기서는 아이가 장난감을 어질러놓아도 어느 새인가 금방 정돈되어있고 빨래는 속옷 한 장까지 다림질되어 깔끔하게 개켜져 우리 방에 놓여진다. 이 무슨 황송한 삶인가 싶지만 막상 인간은 언제나 그렇듯 가진 것에 감사할 줄 모르고 가지지 못한 것을 찾게 되는가보다. 망중한이라고 이렇게 평생 살 수 있는게 아닌 이상 빨리 앞길을 찾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우리는 일찌감치 결혼이든 아이의 출생이든 바로바로 양국에 신고했기에 모든 기본적인 중요한 서류는 가지고 있었다. 다만 인도네시아는 이를테면 결혼 증명서 원본이 우리에게 있어도 내가 이 곳에 인도네시아인의 배우자로 살기 위한 체류비자를 받기 위해 각종 구청 시청에서 우리의 결혼 증명서를 "확인"했다는 또다른 증명서가 필요하다. 중요한건 구청에 가면 이러한 증명서들을 어느 직원이든 쉽게 발급해주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직원이 담당하고 있고 다른 직원들은 이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침 일찍 이 서류를 발급받기 위해 찾아갔을 때도 그랬다. 담당 직원은 아들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유로 휴가중이었고 그녀를 대체할 인력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무력하게 다음 주 그 직원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오라는 심드렁한 대답들 뿐. 시트콤같은 상황에 우린 그저 실소만 머금고 집에 돌아와 다음 주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후 월요일이 되어 다시 찾아간 사무실에는 담당 직원이 앉아있었고 우리에게는 해당되지도 않는 서류들에 대한 일장연설을 들려준 후 우리가 원하는 서류를 받기 위해서는 5만원 가량의 돈을 내야한다고 했다. 서류발급비용에 대한 요금표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그 비용에 대한 영수증을 준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5만원이란 여기서는 꽤나 큰 돈인데 아무 근거도 없이 그 돈을 요구하니 그 돈은 거의 100% 바로 그녀의 지갑 속으로 들어갈 것이 뻔했다. 남편이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인 것과 현지에서 나고 자란 것 같지 않은 우리의 행색때문인지 그렇게 우리는 눈뜨고 코를 베였다. 이 곳 관료주의와 답답한 행정시스템에 신물이 나는 지금에서야 나의 영주권 지원은 마무리가 되는 듯하다. 다만 영주권이 최종적으로 나오되려면 한두어 달이 걸리고 그 이후 외국인거주신고나 현지 신분증 발급을 위해 내가 이 곳에 다시 와야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지금 현재 상황이다.


이와는 별개로 싱가포르를 떠나온지 한 달이 넘어가자 한국음식에 대한 그리움이 나날로 커지고 있다. 자카르타에서 머물 때는 비교적 한국 음식 재료들을 구하기도 쉽고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한국 음식점도 많았지만 남편의 고향으로 넘어온 이후로 기본적인 한국 재료를 자카르타에서 사오지 않은걸 계속 후회하는 중이다. 나보다 한국음식을 더 찾는 남편 덕에 우리는 싱가포르에서도 집에서 한국음식을 많이도 해먹었더랬다. 고춧가루, 고추장, 된장 뭐 하나 찾기 어려운 이 곳에서 한국 음식 먹기를 거의 포기하고 있을 무렵 이 곳 마트에서 찐 한국 고추장과 현지 참기름을 발견했다. 이윽고 한국 음식을 해먹을 수 있을 것이란 나의 희망이 뭉게뭉게 피어올라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소면 비슷한 국수를 사와 오늘은 매운 비빔국수와 해물파전을 점심에 해보려고 준비중이다. 사람은 어딜 가든 살기 마련이라더니 고추장 하나로 내가 한국음식 만들 생각을 하게되다니 싶다가 아... 된장이랑 고춧가루만 있으면 이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자꾸 욕심이 늘어간다. 발리에 가기도 전에 이 깡시골의 삶에 점점 적응해가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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