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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리안러버 Nov 17. 2022

멀고 먼 발리 가는 길 - 4

이쯤이면 이 제목으로 과연 몇 번의 글을 써야 발리에 도착이나 할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우리는 지난 주말 자카르타 남편의 형님 집으로 다시 넘어왔다. 그저 며칠 머물다가 발리 임시 거처를 구해 빨리 떠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번에는 남편의 한국 비자때문에 자카르타에 머물러야하는 상황이다. 국제결혼 커플이 흔히 겪는 문제인듯한 비자문제. 내년 2월 결혼하는 내 하나뿐인 남동생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 남편 자카르타의 한국대사관에서 한국 방문을 위해 비자를 받아야한다. 상대 국가의 비자를 위해 각자의 여권을 상대국에 맡겨놓고 우리 부부는 여권도 없이 여기저기를 누비고 있다. 외국에 가면 여권이 나의 신분증이 되기 때문에 항상 지니고 있어야한다는 나의 오랜 생각에 무색하게 나는 영주권 발급을 위해 남편 고향 이민청에 여권을 남겨둔 채 이 곳 외국인임시거주증을 신분증 삼아 비행기에 올랐다. 


자카르타는 인도네시아의 빈부격차가 극명하게 보이는 곳이다. 쇼핑몰을 걷다보면 일가족과 그 아이들의 보모가 함께 거니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H&M 에서 옷 가지 두어 점을 집어들어 가격표를 보면 그런 보모들의 한 달 월급이 훨씬 넘을 때도 많다. 싱가폴의 쇼핑몰이 일반적인 서민들도 흔히 오갈 수 있는 곳이라면 자카르타의 쇼핑몰은 철저하게 중산층 이상을 위한 쇼핑몰이다. 인도네시아는 물가가 싸다는 일반적인 편견은 자카르타에는 특히 자카르타 쇼핑몰에는 해당사항이 없다. 싱가폴 물가에 버금가는 식당의 메뉴와 가격을 보고있자면 이 곳이 자카르타인지 싱가폴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예전 자카르타에 처음 발 디딛 순간부터 자카르타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어딜 가든 이어지는 교통체증에 창 밖으로 보이는 고층 건물, 호화로운 아파트들과 바로 앞 판자촌의 모습. 이 곳에 오래있다보면 이런 모습을 보는 것에 내 자신이 익숙해지고 무뎌질 것이 무서워졌다. 오토바이가 아닌 차를 타고 쇼핑몰을 거닐며 가정부가 있는 형님 집에 머무르며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나 자체가 모순이긴 하지만 말이다.


남편의 한국 비자가 나오면 우리는 드디어 발리행 비행기에 오를 예정이다. 우리가 발리행을 결정하고 순간부터 많은 이들이 발리에 가면 살 곳은 구해졌는지, 가서 어떤 일을 할 예정인지 물어왔는데 그 때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답이라곤 가서 둘러보고 결정할 예정이라는 말 밖에 없었다. 그 말을 매번 하면서 내 계획형 자아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아마 남편은 모를 것이다. 지금도 우린 다음 주 발리에서 지낼 곳을 찾아보기 시작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정해진 기한이 없이 움직일 수 있는 자유로움도 있다는 걸 처음으로 느끼는 중이다. 난 항상 목표와 기한을 정하고 그걸 최단시간에 이뤄내기 위해 달리는 삶을 살아왔는데 목표와 정해진 기한이 없으니 마음을 조리지 않아도 되고 과정을 한편으로 즐길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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