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맘때 쯤이다. 서서히 한계가 오는 시기.
주말 내내 남편과 집에서 하루종일 한 명은 아이를 보고 한 명은 집안일을 하며 아이를 재우고나면 서둘러 우리의 부족한 잠을 보충해야하기에 급히 잠이 들었다.
남편이 출근하는 평일이면 한편으로는 혼자 할 일이 많아져 힘들어지는 반면 기대되는 시간이 있다.
아이의 낮잠시간이다. 그 시간만큼은 나도 홀로 집에서 누구의 방해도 없이 허비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는 것이다. 아이에게 들킬까 전전긍긍하며 인스타그램의 동영상을 소리없이 보지 않아도 되고, 긴 뉴스 기사를 끝까지 읽을 수 있다. 한 시간 뒤에 답하고 두 시간 뒤에 답이 와서 결국 끊어지고 말았던 모처럼만의 친구와의 카톡도 시간만 잘 맞는다면 이어나갈 수 있다. (특히 대화 상대가 같은 애엄마라면 둘이 카톡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건 거의 신이 주신 타이밍이다.)
요즘 들어서는 아이가 낮잠을 자면 급하지 않은 집안일은 아이가 깨어난 이후로 미뤄놓는 편이다. 어디선가 육아와 가사를 근무에 비유한다면 아이가 낮잠자는 시간은 오롯이 나의 휴식시간이어야지 초과근무시간이 되어선 안된다는 글을 읽었는데 크게 공감되었다. 아이가 자는동안 내가 쉼없이 집안일을 하면 이를 알 리 없는 아이가 에너지가 충전되어 깨어났을 때 나는 지나치게 피로해져서 결국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좋지 않다는걸 체험했기 때문이다.
한 가정을 책임져야하는 가장의 부담과는 별개로 많은 가정주부들이 직장으로 향하는 남편을 "부럽다" 표현하는 이유는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고도 아이와 물리적으로 떨어져있을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뭐 하나에 집중하면 그것밖에 못하는, 죽어도 멀티플레이어는 못되는 나같은 사람이라도 아이가 설령 혼자 잘 놀고 있어서 다른 집안일을 하고 있다한들 나의 눈과 귀와 온 신경은 아이에게로 향해있다. 아이와 함께 있는 이상 그 곳이 집이든 집이 아닌 바깥이든 나의 모든 에너지는 아이의 동선에 쏠려있어 다른 아무 생각도 들 겨를이 없다. 그러니 아이가 잠자고 있는 시간은 나에게는 정말 천금같은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아이에게로 쏠려있던 신경을 나에게로 잠시나마 향할 수 있게 돌려놓는 시간이니 말이다. 그 천금같은 나의 휴식 시간이 점점 내 곁에서 사라지고 있다. 아이가 낮잠을 거부하는 것이다. 사실 아이의 낮잠시간은 아이의 체력을 충전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나의 멘탈을 다잡는 시간이었는데...
언젠가는 없어질 시간이라는걸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이별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얼마 전부터 일주일에 한번 씩 낮잠없는 날이 생기더니 이번 주에는 통 자려들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 자신이 사라져간다고 생각한건 여러 번이지만 이렇게 또 유일하게 나로 돌아갈 수 있었던 시간이 줄어드니 결국 나에게는 엄마와 주부라는 이름만 남게되는건가 허무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