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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리안러버 Jun 29. 2024

휴양지에서 휴가 가기

숨은 발리 찾기


발리는 한국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휴양지이자 전세계 사람들이 휴양을 즐기기 위해 오는 곳이다. 그렇다면 휴양지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어디로 휴가를 가느냐.


발리에 산지 1년 반이 되어가는 우리는 이런저런 이유로 막상 발리를 많이 돌아다녀보지는 못했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찾는 길리나 누사 페니다도 아직 가보지 못했다. 다만 바닷가와 가까운 사누르에 살아서인지 우리는 관광지로 핫한 울루와뚜, 짱구, 꾸따 등 바닷가보다는 사람이 덜 북적이고 산공기가 시원한 북쪽으로 휴가를 간다. 단기 관광객들이 택하지 않는 조금 더 먼 지역으로 휴가를 갈 수 있다는게 이 곳에 사는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방학 발리의 북서쪽 멘장안으로 휴가를 떠났다.


남쪽 휴양지나 우붓에 머물면서 스노쿨링, 다이빙을 위해 당일치기로 멘장안을 다녀오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지만 우리에겐 남는게 시간에 조잘조잘 집에서쉼없이 떠드는 5살짜리 딸이 있지 않은가. 우리는 집을 나서야했다. 하룻밤에 조식포함 2만원밖에 하지 않는 멘장안에 있는 홈스테이를 예약하고 우리는 무조건 차 시동을 걸었다. 먼저 갈 곳은 요새 발리 사는 엄마아빠 인스타에서 매우 핫한 Bali Farm House. 한국도 그렇지만 아이를 위한 다양한 시설이 생길수록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생겨서 기쁜 것 반, 그 시간을 위해 지불해야하는 비싼 입장료와 동물 먹이주는 비용에 부담스러운 것 반. 하룻밤 숙소비보다 비싼 세 식구 입장료를 손을 덜덜 떨며 지불하고 아이는 제일 좋아하는 토끼를 맘껏 만져보았고 남편은 평생 소원이었던 알파카를 처음 만났다.


발리 농장이 있는 지역은 호수와 산 능선이 어우러져 장관인 브두굴이라는 곳인데 인도네시아에서는 흔하지 않은 딸기를 재배할 수 있는 손에 꼽는 지역 중 하나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 느낀 것이지만 발리는 정말 없는 것 빼곤 다 있는 곳이다. 자연으로 보면 산과 바다가 모두 있고 음식으로 보면 인도네시아 다른 지역에서는 비교적 구하기 힘든 돼지고기, 주류는 물론이거니와 서양식에서 흔하게 쓰이는 샐러드야채, 허브, 딸기까지 모두 발리에서 난다. 심지어 발리 북쪽은 와인 포도 재배에 적합해 Hatten Wine 이라는 발리 와이너리도 있다. 한국인으로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깻잎이 없다는 것 정도?! (갑분 깻잎 타령… 인도네시아 반둥에서는 깻잎을 재배할 수 있어 한국인 수요가 많은 자카르타에는 깻잎이 풍부하다고 들었는데  발리에서는 나지 않는 것 같다)


농장 구경을 마치고 우리는 브두굴을 조금 더 지나 문둑 이라는 지역에서 하루를 묵었다. 뒤돌면 동네 뒷산이 있는 한국에서 자란 나는 사실 굽이굽이 이어지는 능선과 시원한 산공기, 구불구불한 산길이 낯설지 않았다. 문둑 가는 길은 명절이면 할머니댁에 갈 때 매번 지나던 진부령길이랑 별다르지 않았지만 이런 풍경을 발리에서 볼 수 있다는게 새로웠달까. 문둑은 흔히 떠올리는 발리답지 않게 꽤나 쌀쌀해서 한국 가을날씨마냥 긴팔 긴바지를 입어야했다. 숙소 바로 앞 마당에서는 산을 넘어 바닷가까지 한 눈에 보여서 노을이 질 때 무척 예뻤다. 아이는 마당에서 네잎클로버를 찾겠다며 부지런히 돌아다녔고 그 덕에 남편과 나는 따뜻한 차를 마시며 신선한 산공기를 만끽했다. 이 숙소의 하이라이트는 모닥불이었는데 밤에 각 방 앞 마당에 요청하면 모닥불을 피워주었다. 미리 준비해간 마시멜로우와 비스킷, 초콜렛으로 스모어도 만들어먹으니 아이 입에서 최고의 휴가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요즘 드는 생각인데 우리가 행복하다고 느끼는건 결국 얼마나 자주 행복한 순간을 누리느냐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우리는 요즘 아이에게 기쁜 순간, 행복하다 느낄 수 있는 순간을 자주 많이 만들어주려고 노력중이다. 남편은 어렸을 때 아버님이 퇴근하시고 같이 야식을 사서 밤에 드라이브를 나가 강 주변에서 같이 야식을 먹었던 기억과 그 때 느꼈던 기분이 지금까지도 생생하다고 했다. 나 또한 별거 아닌 기억이지만 어렸을 때 가족이 함께 여행갔던 기억과 그 때 느꼈던 설렘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때는 우리 부모님들도, 시부모님도 몰랐을 것이다. 그 기억으로 우리가 지금도 가끔 웃음짓고 있다는걸.


아이를 키운다는건 신기한 일이다. 아이가 행복하다 느끼는 순간을 위해 엄마와 아빠는 부단히도 노력한다. 주말 아침 주방을 뒤집어놓으며 다같이 팬케이크를 만들고, 평범한 저녁시간 갑자기 피자 한 판 사들고 오토바이로 바닷가에 가서 짠 바닷바람을 맞으며 우걱우걱 식은 피자를 먹는다. 활짝 웃는 아이의 함박웃음, 끊이지 않는 아이의 웃음소리 그게 뭐라고. 다행인지 아이는 남편을 닮아 리액션이 아주 좋다. 무엇을 해줘도 싱거운 반응이었던 나와 연애하느라 연애기간 내내 고생했던 남편은 본인을 닮은 아이를 만나 쿵짝이 아주 잘 맞는다.


문둑에서의 하룻밤이 지나고 아침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주변 폭포 탐험에 나섰다. 문둑은 걸으면 폭포가 10분에 하나씩 보일 정도로 크고 작은 폭포가 많다. 폭포에 가면 남편과 아이는 최소 발이라도 물에 꼭 담가보는 편. 재미없는 나는 멀찍이 서서 그 둘이 재미보는 사진만 열심히 찍는 편이다. 숙소로 돌아와 체크아웃 후 멘장안으로 다시 출발.


여행하며 그 지역 음식은 꼭 먹어보고 싶어하는 남편은 인도네시아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나와 결혼한게 천만다행이라고 항상 이야기한다. 근데… 그거 아니… 너 나랑 인도네시아 여행하다가 만났어. 거의 처음 본 사람과 다름 없을 때 같이 다짜고짜 자바섬을 여행하면서 우리는 서로 입맛이 잘 맞는다는걸 이미 알았다. 그 때는 남편이 심지어 비건이었을 때였는데도 말이다. 그 이후 우리는 태국, 영국, 한국, 모로코, 싱가폴에서 여행/데이트를 하며 수많은 끼니를 함께 했는데 음식을 잘못 먹어 탈이 났을지언정 음식으로 정이 상한 적은 없었다.


멘장안을 가는 길에 있던 발리 현지음식 와룽에 들러 싱아라자에서 유명하다는 시오박을 먹고 멘장안 숙소로 향하던 중 구글맵에 Hatten Wine 포도밭이 가는 길에 있는걸 확인. 구글리뷰를 보니 밭을 둘러보고 세 가지 와인을 시음하는데 일인당 100,000 루피아. 우리돈으로 하면 9000원이 안되는 돈이었다. 운전을 하는 남편이 걱정이 되었지만 이미 숙소 근처이니 시음 후 천천히 쉬었다가 가면 되겠다 싶어 급 포도밭 투어를 했다. 바닷가 거의 바로 앞에 자리잡은 포도밭은 꽤나 멋있었다. 와이너리 투어는 미국이나 호주 유럽에서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작은 규모이지만 발리에서도 이렇게 착한 가격으로 가능하다니!


오랜만에 와인을 마신 후 맛있었던 화이트 와인 한병을 사들고 적당히 기분좋은 상태로 멘장안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방 컨디션을 보고 살짝 당황했다. 구글 맵에서 멘장안 스노쿨링 출발지에서 가까운 곳 중 리뷰가 좋은 곳을 고른 것이었는데 침구나 방 자체는 깔끔했지만 어린 아이와 함께 지내기엔 조금 어둡고 오래된 방이었다. 아무렴 어떤가. 하룻밤 2만원에 조식도 주고 주인 아저씨 부부가 친절하고 스노쿨링 하는 곳과 가까우니 그거면 됐지.


여행을 하다보면 함께 하는 사람과 여행에서의 우선순위가 잘 맞는게 중요한 것 같다. 어떤 사람에게는 숙소에 더 투자하고 숙소에 있는 부대시설을 즐기는게 중요할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숙소보다 외부 액티비티가 중요할수도, 또 어떤 사람은 맛집이나 음식에 더 비중을 두는 사람이 있다. 나와 남편은 배낭여행을 하던 버릇이 남아있어서인지 숙소는 오래되거나 작더라도 깨끗하면 그만이라는 주의라 대부분 저렴한 숙소를 구하고 호텔이나 숙소에 있는 식당보다는 외부에 있는 저렴한 현지 식당에 가는걸 좋아한다. 원래 그런 둘이 만난건지 장거리 연애 5년 결혼 6년에 지긋지긋하게 함께 떠돌아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맞춰진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발리는 자바섬 끝에 위치해 있어 자바섬에서 발리 북쪽에 있는 항구를 통해 많은 물류가 오고간다. 덕분에 차를 타고도 배로 발리와 자바섬을 오갈 수 있다. 자바섬에 가깝다보니 발리 북쪽은 자연스럽게 자바 분위기가 물씬 난다. 힌두교가 대부분인 발리이지만 이곳은 자바에서 온 무슬림들이 많이 거주해서인지 사누르에서 살 땐 전혀 들을 수 없던 기도소리도 많이 들리고 음식점도 자바식 음식점, 모스크도 길에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인도네시아 다른 지역, 심지어 자카르타에서도 기도소리나 모스크는 흔한 풍경인데 발리에 살다보니 내가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다는걸 깜빡 잊었던 것 같다.


다음 날이 밝아 멘장안 투어를 가기 위해 아침을 서둘러 먹고 들뜬 아이를 데리고 현지 다이빙 스노쿨링 센터를 찾았다. 발리는 보통 호주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관광지 어딜가도 호주인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발리 북쪽으로 넘어온 이후 호주인보다는 유럽 관광객들을 훨씬 많이 만났다. 우리와 함께 보트를 탄 분들은 나이가 꽤나 지긋한 프랑스 할머니 할아버지분들이었는데 나보다 예쁜 비키니를 입고 멋지게 스노쿨링을 하는 모습을 보니 늙어서도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체험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는 내 오랜 결심이 떠올랐다.



바닷가에서 몇 걸음 걸어들어왔을 뿐인데도 물 아래는 이미 아쿠아리움 저리가라였다. 물은 한없이 투명하고 아쿠아리움에서 보던 형형색색 물고기들이 떼지어 다니는게 장관이었다. 입으로 숨을 쉬어야하는 어른 스노쿨링 고글과 다르게 아이의 스노쿨링 고글은 눈코입이 한 곳에 들어가는 일체형이라 아이가 쉽게 숨을 쉴 수 있었다. 아이는 책에서만 보던 물고기들을 보자 흥분해서 계속 조잘거리며 “아빠 여기봐 저 물고기 우리 저번에 책에서 봤잖아! 이름이 뭐야?” “엄마 저기봐 파란 불가사리도 있어!!!” 라고 외쳤지만 숨을 쉬느라 입이 막혀있는 우리 둘은 묵묵부답. 그걸 알 턱이 없는 아이는 대답이 없는 우리에게 왜 대답이 없냐며 불쑥 화를 냈다. 스노쿨링을 하면 아이도 조용히 물 속을 즐길꺼라 믿었던 우리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 아이의 끊임없는 질문공세에 몇 번이나 물 위에서 호스를 빼고 대답이나 설명을 해줘야했다.


멘장안을 가자고 나섰을 때 돌아오는 길에 바로 돌아올지 아니면 하루를 중간 지점에서 더 보내고 돌아올지 결정하지 않은 채 길을 떠났다. 사누르로 돌아올 시간이 다가오며 우리는 불현듯 일년 전 남편의 사촌동생이 추천했던 브두굴 근처 에어비앤비를 떠올렸다. 프랑스인 부부가 운영하는 곳인데 호수 전망도 좋고 아늑한데다 집주인이 직접 해주는 음식이 정말 맛있다고 했다. 급하게 집주인에게 연락해 예약이 가능한지 물어봤더니 다행히도 우리가 돌아가는 날 묵을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여행하는 동안 먹었던 미고렝, 나시고렝, 대충 만든 음식에 질려버린 우리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브두굴로 향했다.


가파르고 좁은 산길을 지나 우리가 도착한 스테파니, 루도 부부 그리고 딸 마농의 산장. 잘 꾸며진 정원에서는 탁트인 호수와 산 전경이 보이고 집 안은 유럽 시골 산장을 옮겨놓은듯 특유의 나무집 냄새와 정감이 넘쳤다. 20년 전 발리로 이주해 살면서 세 딸을 키워낸 이 부부는 각자 하던 일을 정리하고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 이 곳으로 이사와 에어비앤비를 시작했다고 했다. 코로나로 에어비앤비를 시작하자마자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이후 사람들에게 입소문을 조금씩 타면서 이제는 산장 안에 작은 레스토랑도 오픈해서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는 윗층 두 방을 에어비앤비로 운영하고 있지만 별채에도 새로운 방을 만들어 곧 오픈할 예정이라고 했다.


집 안 곳곳에 묻어있는 집주인의 안목과 유럽에서 공수한 아기자기한 소품들, 본인들이 직접 제작한 가구들 등 볼거리도 너무 많았지만 외국인 부부로 이 곳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온 이야기, 현지 사람들과 일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 등 이 곳에 처음 정착하는 외부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니 오래 알았던 사람들인 것처럼 정이 갔다. 돈을 지불하고 묵는 숙소이지만 그렇지 않게 느껴지도록 주인 부부는 마치 친한 가족을 대하듯 그렇다고 부담스러울만큼 살갑지는 않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우리 가족을 대해주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와이너리에서 사온 와인 한병을 오픈하고 주인 아주머니가 직접 준비해주는 정말 집에서 만드는 프랑스 가정식을 먹으며 이 곳을 추천해준 사촌동생 커플에게 감사해마지 않을 수 없었다. 정원에서 키우는 호박꽃으로 만든 에피타이저와 바로 앞 딸기밭에서 딴 딸기로 만든 주스. 우리가 발리에 와서 막연하게 꿈꾸던 모든 것을 실현해낸 이 부부의 노력과 안목에 연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본인들도 딸이 셋이라며 말괄량이 수다쟁이 딸아이를 살뜰하게 챙겨주던 부부의 친절함과 세심함은 에어비앤비가 상업화되기 전 hospitality의 정수를 보여주는 듯했다.


노동력이 비싸지 않은 이 곳에서는 보통 현지인이 운영하는 홈스테이도 다 청소부나 요리 보조를

고용하기 때문에 주인 얼굴을 보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이 곳은 거의 하나부터 열까지 호스트들이 직접 손님을 챙겨서인지 숙소를 사용할 때도 지인의 방을 빌려쓰는 것처럼 소중하게 다루게 되었다. 발리에서 이 정도의 수압을 내는 샤워기를 설치하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 정도의 정원을 꾸미고 가꾸는데 얼마나 많은 손이 가는지 아는 우리여서인지도 모르겠다.


이상하게도 싱가폴에서 살 때부터 우리는 누군가를 항상 집에 초대하는 쪽이었다. 어린 아이를 키우고 있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거나 다른 이의 집에 가는건 못내 부담스웠고 요리를 둘다 즐겨해서였는지 싱가폴 그 좁은 주방에서도 우리는 친구들과 친구가족을 초대해 요리를 대접했다.

발리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초대를 받는 입장보다는 초대를 하는 입장이 되는 것이 더 편했고 그렇게 발리에서 알게된 아이들 친구 가족, 남편쪽 친척 등을 위해 우리 부부는 항상 집에서 요리를 대접했다. 누군가를 초대해 우리의 요리를 대접하고 그들이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건 행복한 경험이다. 하지만 초대한 집주인으로서 밥 먹는 중간중간 손님의 빈잔과 빈그릇을 주시하며 채워주고 손님들이 오기 전 아이가 어지러놓은 집안을 치우는 일은 때로는 벅찬 일이기도 하다. 특히 하하호호 즐겁게 친구들과 대화하고 뒷정리를 도와주겠다는 이들에게 손사레를 치며 사양한 후 그들을 돌려 보내고나면 자정이 넘어까지 쌓여있는 설거지와 씨름하다 녹초가 되어 잠들기도 한다. 그러다 이 곳에 오니 누군가의 집에 초대되어 대접받는 기분을 새삼 다시 느끼게되었고 (비록 비용을 지불했지만) 호스트의 사사로운 수고로움을 아는 우리는 이 부부에게 더 감사할 수 밖에 없었다.


어쨌든 이렇게 우리의 첫번째 발리 로드트립은 아무도 아프지 않고 아무런 차사고 없이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비록 눈에 보이는건 산더미같이 쌓인 빨래와 텅텅빈 우리집 냉장고이지만 발리에 이사와 느꼈던 외로움, 막막함, 불안함이 많이 가라앉고 우리 이제 발리에 사는구나 하는 뭔지모를 안도감 느껴진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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