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현지엄마들과 친해지기

필라테스, PO 그리고 Arisan

by 두리안러버

발리로 이주한 지 만으로 2년이 꽉 채워졌다.

그새 아이는 훌쩍 커서 7월 새 학기가 시작되면 초등학교 1학년 언니가 된다.


내향형 인간인 내가 외국에서 아이를 낳아 판데믹을 겪으며 외향형인 아이를 키워내는 동안 수많은 자기 성찰, 반성의 시간이 있었다. "내향육아"라는 책을 사서 읽으며 얻었던 위로와 안도도 잠시 처음 간 식당 옆 자리에 앉은 또래 아이만 보면 말을 걸고 이내 친구로 만들어 그 아이 엄마와 플레이데이트를 위해 전번까지 주고받게 하는 아이의 사회성에 나는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싱가포르에서 출산을 하는 바람에 엄마가 된 후 사회생활의 시작이라는 한국의 산후조리원조차 경험해보지 못했던 나는 결혼 후 한국을 떠나와 싱가포르 교회에서 친해진 몇몇 싱글 언니들과 어울리는 것 외에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이 많지 않았다.


판데믹이 시작되기도 전 아이가 8-9개월이었을 무렵 한국 엄마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체험수업에 아는 분의 소개로 나가본 적이 있었다. 체험 수업이 끝난 후 엄마들 다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도무지 어색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내가 내향형이긴 해도 새로운 사람들이 있는 자리를 감당하지 못할 만큼 낯가림이 심한 사람은 아니라 생각했는데 이상했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한국인 남편이 싱가포르에서 일하고 있어 아이와 함께 싱가포르에 거주하게 된 경우였고 국제결혼을 한 분이 한 분 정도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한국인과 결혼하지 않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다들 남편이 돈을 잘 버는 직장인인데 나만 남편이 고만고만한 자영업자라 자격지심에 공감이 되지 않았던 건지. 좀처럼 엄마들의 대화에, 그 분위기에 스며들지 못하고 동동 떠버리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무엇이 문제인지 계속 고민했지만 그 답을 찾지 못했었다. 아마도 나는 그때 엄마라고 불리는 나의 새로운 정체성이 아직도 부담스러운 단계였던 반면, 엄마임이 너무 확실해 보이고 자신 있어 보였던 다른 엄마들과 어울릴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게 아닌가 싶다.


아이가 처음 어린이집을 가기 시작할 무렵은 이미 판데믹이 시작된 이후였고 규제가 강한 싱가포르의 어린이집에서는 등하원길 부모님들 사이의 왕래를 그리 반기는 눈치가 아니었다. 또 맞벌이가 대부분인 싱가포르 특성상 아이들 등하원은 조부모님, 아니면 가정부들이 담당하기 때문에 1년 반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동안 아이 친구 부모님들과 제대로 대화를 나눠볼 기회도 별로 없었다.


발리에 정착해 아이를 현지 유치원에 보내면서도 사정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국제결혼이 많은 발리라지만 대부분은 아이의 아빠가 외국인, 엄마는 인도네시아인인 경우라 아이의 등하원을 기다리며 삼삼오오 모이는 엄마들의 수다모임에 끼어들기 어려웠다. 유치원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게 된 아이친구 엄마들을 조용히 팔로우하며 내적친밀감을 쌓아갔지만 엄마가 된 후 한 번도 엄마친구를 만들어본 적 없던 나는 아이 엄마들을 만날 때마다 매일이 새 학기가 시작하는 3월 2일 같았다. 아이가 커가고 요새는 어디가 아이를 데리고 가기에 좋은지, 어느 키즈카페가 깨끗하고 가성비가 좋은지, 초등학교는 다들 어디를 보낼 생각을 하는지 아이에 관련된 현지 정보가 점점 절실해질 무렵, 그리고 이곳에서 사는 현지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생각이 커질 무렵 한 엄마가 올린 다른 엄마들과 함께한 필라테스 수업인증사진을 보고 나는 그동안 가리던 낯을 벗어던지고 "나도 끼워줘!"하고 냅다 DM을 보냈다.


같이 필라테스를 하게 된 엄마들은 자카르타 출신 무슬림 엄마, 수마트라 팔렘방 출신 화교인 엄마, 발리 출신 힌두교 엄마, 발리 출신 무슬림 엄마 이렇게 넷이었다. 항상 아이들 등하원 길에 보던 얼굴들이었지만 못내 어색했는데 악소리 나고 곡소리 나는 필라테스 수업을 함께 듣고 나니 나름 마음이 한결 편해졌고 아이들 픽업시간을 기다리며 엄마들과 점심을 먹으러 향했다. 알고 보니 우리는 서로를 오랫동안 염탐했었다. 엄마들은 남편과 항상 오토바이를 쌩하게 타고 아이를 픽업, 드롭하는 한국인 엄마를 무척 궁금해했던 것 같았다. 점심식사를 함께하며 생각보다 유창한 내 인도네시아어에 다들 깜놀. 또 내가 실은 본인들과 엄청 어울리고 싶어 했으며 알고 보면 엄청난 수다쟁이라는 사실에 더 깜놀. 인도네시아도 결국 엄마들의 대화는 똑같다. 아이들 치과 어디가 좋냐는 이야기, 요즘 학습 유튜브는 무슨 채널을 보여주냐는 이야기에서부터 간간이 나오는 시어머니 험담과 남편과의 육아 분담에 대한 불만 등등.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하다 보니 아이들을 픽업할 시간.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된 지 6년이 지나서야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같이 필라테스를 하며 땀을 뻘뻘 흘리고 어디로 맛있는 점심을 먹으러 갈까 같이 고민하는) 엄마친구들이 생겼다.


이곳 사람들은 운동하고 인증사진 찍는 걸 무척 좋아한다. 꼭 인스타그램에 올려야 해서라기보다 바짝 붙어 사진을 찍으며 와글와글하는 분위기를 즐긴다. 요즘은 필라테스가 한창 인기이긴 하지만 이곳 엄마들 인스타그램을 보면 padel, 요가, 서킷운동을 같이 하며 어울리는 게 추세인 듯하다.


이렇게 엄마들과 어울리다 보면 PO라는 단어를 종종 듣게 된다. PO는 Pre Order의 줄임말. 여기 말로는 “뻬오”라고 부른다. 이곳은 홈베이킹이 꽤 오래전부터 자리 잡아서인지 각종 절기에 직접 구운 혹은 구입한 쿠키, 전통과자나 케이크 등등을 서로에게 선물로 주는 문화가 있다. 케이크나 쿠키 등에 그치지 않고 각 엄마들이 잘하는 요리 등을 집에서 대량으로 해서 알음알음 주변 사람들에게 주문을 받아 팔기도 한다. 이게 바로 Pre Order이다. 우리나라에서 손이 많이 가는 김밥을 말거나 잡채를 할 때 우리 집 식구들 것만 하기보다는 아예 재료양을 많이 해서 옆집 앞집 아랫집 윗집 나누어주던 것처럼 전체적으로 손이 많이 가는 인니 음식을 솜씨 좋은 엄마가 미리 주문을 받은 후 한꺼번에 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혹은 그 지인들에게 판매하는 것이다.


보통 뻬오 주문을 받는 엄마가 가격과 품목, 픽업날짜를 알려주고 주문을 받는다. 이때 친구 엄마들은 본인들 것뿐 아니라 여러 개를 주문해 본인 지인들에게도 이 음식을 선물한다. 뻬오 주문을 받는 엄마는 용돈벌이를 해서 좋고,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친구엄마 음식을 팔아주니 좋고, 내가 음식을 주문해 선물한 친구들은 공짜 음식선물을 받을뿐더러 맛있는 곳을 알게 되어 좋은 법. 이렇게 아줌마들의 오지랖과 인맥을 기반으로 뻬오가 입소문을 타면 꽤나 쏠쏠한 용돈벌이가 된다는 사실.


이곳 엄마들과 어울리면 누군가는 Arisan을 시작하자는 제안을 꼭 한다. Arisan은 우리나라로 치면 엄마들의 계모임이다. 조금이라도 여윳돈이 있는 엄마들이 계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모임을 하고 모여진 곗돈을 돌아가며 나눈다. 여기도 우리나라처럼 곗돈을 들고 도망가는 사람이 있느냐? 사람살이 똑같다. 당연한 말씀이다.


발리에 정착해서 사는 다양한 외국인은 정말 많이 있지만 그들이 expat이라 불리는 그들끼리의 사회와 공동체 안에서만 살아가는 걸 보면서 나도 그러고 있지 않나 항상 불안했다. 언어가 통하고 문화가 통하는 편한 사람들과만 지내다 보면 좁고 획일적이라 답답하다 느껴졌던 싱가포르에서 벗어나 발리까지 온 이유가 과연 있을까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지난 몇 개월동안 나와 다른 종교, 문화, 언어를 가진 엄마들과 어울리며 배운 것들은 어쩌면 내가 발리에 이사 와서 1년 반 이상 겉돌며 배웠던 것보다 훨씬 더 많다. 가끔 인도네시아어로 빠르게 오가는 대화 속에서 길을 잃고 나는 누구? 여긴 어디? 하며 멍 때리며 앉아있을 때도 있다. 그룹 채팅창에서 인니 줄임말을 잘못 알아들어 약속시간에 혼자 늦은 적도 있고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하기가 다반사이지만 그래도 나는 이제야 조금 이곳에서 앞으로 살아갈 나 자신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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