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질은 나라 따라 바뀐다?

heaty와 masuk angin

by 두리안러버

싱가포르에 살 적 싱가포르인 친구들은 툭하면 본인이 “heaty” 해서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거나 튀긴 음식을 먹지 않고 있다고 했었다. 가만 들어보면 뭐 대충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 같은데 정확히 어떤 증상을 말하는 건지는 알 수 없어 싱가포르에 오래 산 남편에게 도대체 heaty가 뭐냐고 물었던 기억이 있다. 남편도 정확한 증상을 이야기하진 못했지만 보통 우리나라에서 몸살기운이 있다 혹은 감기기운이 있다 할 때의 증상을 읊었다. 목이 칼칼해져 온다거나 소화가 평소보다 잘 되지 않는다거나, 몸의 순환이 좋지 않아 변비가 지속된다는 등등의 증상이었다.


Heaty의 사전적 정의: (in traditional Chinese and Ayurvedic medicine) denoting or relating to something, typically food or medicine, that is warming, stimulating, or energizing to the body.


음식에도 heaty 한 음식이 있어 몸이 좋지 않을 땐 heaty 한 음식을 절대적으로 피하는데 대표적인 음식은 튀긴 음식(기름진 음식), 망고, 두리안, 매운 음식 등등이다. 중국인들의 음양과 기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 이 단어는 처음엔 낯설었지만 내가 싱가포르를 떠날 때쯤엔 입에 달고 사는 단어 중 하나가 되었다. 오죽하면 싱가포르에 사는 한국인들이 모여서도 “오늘 나 너무 heaty 해서 이거 먹으면 안 돼…” 타령을 하고 있었을까.


한국에도 튀긴 음식을 먹고 바로 찬 음식을 먹으면 배탈이 난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배가 아프다 등의 음식과 관련된 상식이 있었지만 heaty는 뭔가 그보다 더 큰 개념이었다. 특히나 아이를 키우면서 이 개념은 반강제적으로 뼈저리게 익히게 되었는데 아이가 컨디션이 난조이거나 변비일 때는 절대 망고를 아이 간식으로 준비하면 안 된다거나 땅콩버터를 주면 안 되는 등 이해가 될 듯 이해가 되지 않는 여러 주의사항들이 있었다. 웃긴 건 나도 이 개념에 젖어 들어 어느 순간 망고철 망고를 연달아 계속 먹으니 변비가 생기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더니 목까지 칼칼해져 “나 드디어 heaty 한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아”라고 남편에게 선언하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한국에 살 땐 전혀 문제가 없었던 몸이었는데 같은 몸을 가지고 싱가포르에 살면서는 날이 더워서인지 아니면 다들 heaty를 입에 달고 살아서였는지 나조차도 툭하면 heaty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럴 때면 남편은 시어머니가 주신 출처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중국 한방약을 쥐어주곤 했다. (이 약은 우리가 인니로 이사한 지금도 주기적으로 시어머니가 오실 때마다 조달해 주신다)


그렇다면 인도네시아에 건너온 지금은 어떠할까.

싱가포르에 heaty가 있다면 인도네시아는 masuk angin 이 있다. masuk 은 들어가다, angin은 바람이라는 뜻으로 몸에 바람이 든다는 말이다. 이 masuk angin은 인도네시아인 생활 전반에서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인데, 바닷가 바람만 맞아도 바람 든 다고 몸을 꽁꽁 싸매거나 방에서 에어컨 바람을 강하게 맞아도 바람이 든다며 무척 걱정한다. 오토바이 문화인 이곳에서 사람들이 더운 날 몸을 꽁꽁 싸매고 오토바이를 타는 것은 몸이 햇볕에 타지 않게 하기 위함도 있지만 오토바이를 타며 맞는 바람이 몸에 들지 않게 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런 이들이 짱구나 울루와뚜에서 웃통을 시원하고 벗고 아니면 아슬아슬한 비키니만 걸치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관광객들을 보면 멋있다는 생각보단 크게

두 가지를 걱정한다.


1. 오토바이 타다가 넘어져 다치면 찰과상 크게 입을 텐데

2. 몸에 바람 들 텐데


보통 masuk angin 하게 되면 몸에 가스가 많이 차서 체하거나 소화가 안 되고 반대로 몸이 으스스해지며 열이 나고 어질어질하기도 하고 설사를 하기도 한다. (발리밸리랑 어떤 면에서는 증상이 비슷하다).

masuk angin을 겪게 되면 인니인들은 tolak angin이라는 국민시럽을 먹는다. 우리 할머니가 몸이

안 좋으실 때마다 맨소래담으로 온몸을 바르시던 것과 비슷하게 인니인들에게 tolak angin은 만병통치약 같은 존재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가스활명수의

역할 정도로 볼 수 있겠다. 보통 tolak angin을 먹게 되면 몸이 순간 따뜻해지면서 몸에 있던 가스가 위로든 아래로든 분출되며 속이 조금은 편안해진다.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면 minyak putih라고 불리는 파스향이 강하게 나는 타이거밤 느낌의 오일을 몸 곳곳에 발라 문질문질 마사지를 가볍게 해 주면 도움이 된다.


싱가포르에서 금방 heaty 해지던 내 몸은 발리로 넘어와 바닷바람 한 두 번을 쐬고 나더니 masuk angin을 밥 먹듯 하는 몸으로 변했다. 우리 가족 중 가장 masuk angin에 취약한 사람이 바로 결혼하기

전까지 masuk angin이 뭔지도 모르던 한국인인 나라는 사실. 인도네시아인인 남편과 아이는 그리 가스가 잘 차는 편이 아닌 반면 나는 집에서 선풍기 바람만 직접적으로 쐬어도 금방 속이 불편해지며 가스가 차는 tolak angin 신봉자가 되었다. 인니인들이 외국에 나갈 때 꼭 싸가는 짐에는 삼발 (우리나라로 치면 고추장 소스), tolak angin이 들어있다더니 나는 요즘 한국에 갈 때 꼭 tolak angin을 아이 거, 내 거 구분해서 몇 봉지씩 가지고 간다.


사는 곳이 변하면서 나 자신의 체질이 변하는 것인지 체질을 이해하는 각기 다른 문화에 적응하는 것인지 하루는 heaty 하고 다음 날은 masuk angin 하며 우리 집에는 국적 다양한 약봉지만 쌓여가는 웃픈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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