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 어디까지 가봤니?

숨은 발리 찾기

by 두리안러버

성대하게 유치원을 졸업한 아이의 기나긴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손녀의 졸업식을 축하하러 오신 시어머니까지 함께 여름 방학을 지내고 있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같이 운동을 가던 아이친구 엄마들은 하나 둘씩 가족 여행을 떠났다.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는 말이 있듯 비교적 자연과 가까운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휴가를 간다면 마음껏 걸을 수 있고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도시로 휴가를 떠나는 편이다. 아이 친구 가족들 중 한 가족은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로, 한 가족은 반둥으로, 다른 가족들은 수라바야, 자카르타 등등 다른 도시에 살고있는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휴가를 떠난 사이 우리 또한 긴 여름 방학을 어떻게 보내야하나 고민을 거듭했다.


한국에 다녀온지 얼마 되지 않아 도시에 대한 목마름이 별로 크지 않은 데다, 싱가포르에서 살다 발리로 넘어온 우리는 아직 싱가포르로 휴가를 갈만큼 싱가포르가 그립진 않았다. 지난 여름 발리의 북서쪽 멘장안과 브두굴 쪽으로 떠났던 로드트립이 꽤나 만족스러웠던 우리는 이번 여름 발리의 북동쪽 Karangasem으로 우리의 휴가지를 정했다.


보통 덴파사르에서 현지 발리인들을 만나 그들의 고향을 물어보면 Karangasem 출신으로 소개하는 이들이 많다. 시골지역이기 때문에 이 곳 젊은 사람들은 일자리가 풍부한 덴파사르와 관광지역에 머물며 일하는 경우가 많다. 두리안, 살락 등 과일재배와 계단식 논이 많은 지역이자 넥스트 우붓으로 꼽히는 Sideman이 위치한 지역이기도 하다. 다이빙, 스노쿨링으로 유명한 Amed도 크게 보면 Karangasem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Sideman에서 이틀 밤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 Candidasa 해변에서 하루를 보내는 일정으로 길을 나섰다.


이번 해 발리의 건기는 참 우기스러운 건기이다. 마른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선선한 바람이 부는 건기의 전형적인 날씨가 아니라 항상 구름 아니면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고 비가 쏟아질듯 습한 기운이 계속 되다가 별안간 우기 때만큼 비가 쏟아지기도 한다. 이 날씨는 결국 우리가 여행을 하는 동안에도 계속되었다.


2년 전 막 발리에 이사왔을 때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며 이사갈 집을 찾은 후 이사가기 전까지 붕 뜬 기간동안 우리는 차도 없이 Sideman과 Amed를 여행했었다. 1월 초였던 탓에 툭하면 비가 오는 데다 두 지역은 고젝이나 그랩같은 어플로 쉽게 차를 부를 수 있는 지역이 아니다 보니 일단 숙소에 체크인 하고나서 그 주변을 둘러보기가 쉽지 않았다. Amed에서는 심지어 파도가 너무 거세 스노쿨링은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채 덴파사르로 돌아와야했다. 게다가 꼬불꼬불 산길을 쉬지 않고 달린 탓에 멀미도 꽤나 했었던걸로 기억한다.


이번에는 직접 운전을 해서 떠나는 여행이니 평소 멀어서 가보지 못했던 지역 맛집을 들려가며 쉬엄쉬엄 Karangasem 지역을 돌아보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이 쪽 지역을 여행한다고 하니 평소 일 때문에 발리 곳곳을 누비는 현지음식 전문가 친구가 맛집 두어 곳을 추천해주었다. 첫번째는 Klungkung에 위치한 나시아얌 맛집. 매운 음식을 마다하지 않는 우리는 발리의 나시아얌을 매우 사랑한다. 점심을 먹기 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했던 우리는 점심을 포장해

Sideman 숙소로 향했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가 먹은 발리음식들. 다시 먹으러 먼길 가고플만큼 하나같이 맛있었다

조식까지 포함해 하루 300k 였던 게스트하우스는 의도치 않게 우리가 작년에 묵었던 숙소 바로 옆에 위치해있었다. 아주 깔끔하진 않았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불평할 수가 없었다. 발리를 여행하며 특별한 경우가 아닌 다음에는 한 밤에 1주따 이상 (8-9만원) 투자하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우리의 룰이다보니 그간 정말 다양한 퀄리티의 숙소를 경험해보았던 것 같다. 오래되었지만 깨끗한 숙소에서부터 지속적으로 가도 정말 관리가 잘 되어있어 항상 가고 싶은 숙소. 겉은 멀쩡해보이지만 관리가 잘 되지 않은 숙소, 오래된데다가 지저분하기까지한 숙소 등등. 날씨와 기후 때문에 관리가 어려운 이 곳 사정도 물론 있지만 조금 더 세심하게 관리했다면 훨씬 더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며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곳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는 게스트하우스나 단기 숙소에만 한정되는게 아니라 일반적인 주거용 주택에도 해당된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숙소 가까이 논과 밭을 따라 한 시간정도 트랙킹을 했다. 한국이나 자카르타에서 발리에 오면 공기가 벌써 다르다고 하지만 덴파사르에서 살다가 시데만에 오니 비오기 전 푸릇푸릇한 아침 공기에 정신이 맑아졌다. 이후 우리는 게스트하우스 아주머니의 추천을 받아 북쪽에 있는 폭포와 발리식 민속촌인 penglipuran village 를 방문했다. Penglipuran village는 내국인 관광객들에게 매우 핫한 관광지인데 경복궁에 한복을 입고 누비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있듯이 이 곳엔 발리전통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는 내국인 관광객들이 아주 많았다. 민속촌 느낌이지만 각 가구마다 아직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모두 기념품과 전통의상 대여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듯했다. 소셜미디어에서 유명한 고요하고 아름다운 발리 전통마을의 모습을 찾아보긴 어려웠다.


민속촌보다 더 좋았던 곳은 그 다음 날 Sideman을 떠나며 Candidasa를 가던 중 들른 Samsara Living Museum 이었다. 위치 상 관광객들이 주로 가는 Amed 와 Sideman 사이에 위치해 있고 가는 길이 워낙 산꼬부랑길이다보니 마주 달려내려오는 트럭에 가슴을 쓸어낸 게 몇 번이었지만 비를 뚫고 달려간 보람이 있는 곳이었다. 비가 오는 날 우산을 쓰고 차에서 내린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 Wayan 씨의 설명을 통해 우리는 발리 문화에 대해 조금 더 제대로 이해하게 된 느낌이었다.


외지인으로 이 섬에 이주해 살며 발리인들과 친해지기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매일 길에서 발리식 장례식, 결혼식, 기도행렬을 마주하지만 그 속에 숨은 뜻을 물어볼 수 있는 이는 주변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발리인들은 이미 본인들의 가족 및 커뮤니티가 탄탄하고 이 곳에서 자라며 사귀어 온 같은 발리인 친구들이 많다보니 굳이 외지인과 깊게 교류할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다 기회가 생겨 발리친구에게 의식이나 문화에 대해 물어보더라도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설명할 수 있는 친구들은 (특히 젊은 세대는) 그리 많지 않았다. 발리문화에 대해 궁금하면 위키피디아와 챗gpt를 뒤지던 우리에게 Wayan 씨는 마치 걸어다니는 발리백과사전 같은 느낌이었다.


발리인이 태어나기 전부터 죽는 순간까지의 생의 단계에 따른 다양한 의식과 각 도구들의 상징에 대한 설명이 끝난 후 정성껏 준비된 발리 커피와 간식을 먹고나면 정원을 쭉 거닐며 작은 문화체험을 해볼 수 있었다. 아이가 좀 더 발리의 문화를 알아갔으면 해서 선택한 곳이었지만 우리가 더 많은 것을 배웠던 것 같다.

인도네시아의 일반적인 박물관이나 갤러리에 가보면 관람을 돕는 기계는 작동하지 않고 소장품은 관리되지 않아 훼손되어있으며 관람객의 생각과 편의, 동선을 도저히 고려했다고 볼 수 없는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느껴지는 곳들이 많았는데 이 곳은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적당한 설명과 미감으로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발리를 “발리”답게 보여주고 있었다. 발리 문화를 제대로 보존하고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정부의 지원없이 마을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기에 입장료가 싸지 않다고 했지만 그래서였는지 정부에서 운영하는 그 어느 박물관과 미술관보다 관리가 잘 되어있었다.


박물관을 떠나 친구가 알려준 두번째 맛집에서 배를 채운 후 우리는 candidasa에 있는 어느 리조트에 체크인을 했다. 고즈넉한 느낌의 오랜 리조트들이 쭉 줄지어있는 candidasa는 사누르와 비슷한듯 다른 느낌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예전부터 가고싶었던 카페 겸 레스토랑을 드디어 방문했는데 음식은 맛보지 않았지만 가까운 곳에 바다가 있어 바닷바람을 맞으며 커피 한 잔 하기 훌륭한 곳이었다. 고급스러운 바틱문양의 다양한 옷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이 또한 소소한 볼거리였다. 발리 전역에 즐비한 곳이 카페와 기념품 가게이지만 이런 곳을 우연히 방문할 때면 도대체 언제 누가 이런 기발한 생각을 해서 발리에 이렇게 예쁜 곳을 지었을까 항상 생각한다.

이번 발리 여행도 역시나 무사히 끝이 났고 게스트 하우스, 관광지, 박물관, 카페를 다니며 한 끝차이가 얼마나 큰 경험의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다시 한 번실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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