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리안러버 Oct 12. 2022

멀고 먼 발리 가는 길

발리에 3개월 안에 가야하는 이유가 생긴 이후 모든 갑자기 생긴 일에 대한 준비과정이 그러하듯 우리는 당분간은 마음만(!) 바빴다. 9월 30일까지 우리 집을 빼줘야했고, 남편은 하던 가게 일을 정리해야했고 나는 다니던 직장에 퇴사를 고지해야했다.9월 한 달은 짐을 싸고 보내느라 바쁠 예정이기에 9월 1일을 마지막 출근일로 정하고 1년 반 다닌 회사를 (그렇지만 그 중 2개월만 빼고는 재택근무였기에 동료들과 크게 정이 들진 않았던 것 같다) 퇴사했다. 


아이를 낳기 한 달전 이사온 지금 집에서 꼬박 4년을 세 식구가 지지고 볶으며 살았다. 뭐든 필요한 것만 사고 필요한 것만 보관하자 주의인 나와 무엇이든 필요할지 모르니 일단 쟁여야한다 주의의 남편이 만나 우리는 그간 남편은 계속 자잘자잘 무엇인가를 사고 나는 이따금씩 그런 것들을 모아서 버리며 4년이 흘렀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 우리 집 모든 찬장과 붙박이장은 더이상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없이 꽉차있었고 그걸 매번 바라볼 때마다 나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매일 쓰는 물건이라도 쓰고 눈에 안 보이게 넣어놓아야 깔끔하다는 나와 매일 쓰는 물건인데 왜 자꾸 안보이게 넣어놓느냐는 남편의 생각 차이로 우린 매번 많이도 서로에게 눈을 흘겼다. 결국 이 갈등은 짐을 싸기 시작하면서 최고조를 향했는데 남편은 이 집에 이사들어 올 때 침대 밑 수납공간에 넣어놓고 4년간 한번도 꺼내보지도 않은 옷들과 가방을 발리까지 가져가야한다며 짐을 싸기 시작했고 본인이 아끼는 커피잔까지 하나도 빼지않고 모두 짐 목록에 넣었다. 반면 나는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이기에 우리 몸과 옷가지, 아이 한글책 정도가 필수적이고 나머지 그 곳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 혹은 우리가 이 곳에서 4년간 꺼내보지 않았던 물건들은 모두 버리고 가도 된다고 계속 남편을 설득했다.


기나긴 씨름 끝에 결국 남편은 본인이 원하는 모든 짐을 다 꾸려 선편으로 보냈고 우리가 마지막까지 사용하다가 들고가야할 짐들조차도 수화물 제한량보다 훨씬 많아져 출국 전날 밤에 급히 남은 짐을 친구, 가족 집에 맡겨놓을 수 밖에 없었다. 내 생각만이 옳은 것이 아닌 것을 이미 너무 잘 알고 남편의 생각에도 의미가 있는 것을 다 알지만 아이를 낳고 모유수유에 대한 의견차이로 다툰 이후 정말 많이 다투고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9월 30일 출국을 앞두고 우리는 9월에는 짐도 싸고 그간 못 가본 관광명소도 가보자는 생각에 아이의 학교도 9월 초부터 보내지 않았는데 결국 우린 아무 곳도 못 가보고 마지막 일주일은 아이가 지독한 감기에 걸려 세 식구가 정신없이 비행기에 올라탔다. 아이의 감기는 곧 내 감기가 되었고 내 감기는 곧 남편의 감기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자카르타 호텔과 가족 집에서 정신없이 2주를 꼬박 앓았다. 


실은 우리의 발리 입성 계획은 이러했다. 싱가폴에서 자카르타에 잠깐 들렸다가 나의 체류비자 서류 마무리를 위해 남편의 고향에 갔다가 서류가 마무리가 되면 다시 자카르타로 돌아와 숨을 돌리고 발리에 가는 것이었다. 인도네시아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전산화가 잘 되어있지 않아 인도네시아 남편 배우자의 신분으로 내가 체류하는 비자를 최종적으로 받기 위해서는 남편의 고향에 (자카르타에서 비행기 한번 타고 내려 다시 그 도시에서 시외버스같이 생긴 경비행기를 타고 들어가는 작은 도시) 꼭 가서 받아야한다고 한다. 체류 비자 서류 정리가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기에 우리는 발리에 정확히 언제 들어갈 수 있을지 알 수 없고 그 상태에서 미리 거주할 집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우리의 결정은 일단 비자를 정리하고 발리에서 한 달정도 잠시 체류할 곳을 구한 뒤 그 곳에 가서 1년 이상 살 집을 보러 다니자였다. 발리는 1년 세를 미리 몰아내는 것이 보편화 되어있기도 하고 워낙 하자가 많은 집들도 수두룩해 나름 현지에 가서 집을 보고 결정하는 것이 맞겠다는 계산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아직 남편 고향은 가보지도 못하고 아직도 자카르타에 발이 묶여 붕 떠있는 상태이다. 세 식구 감기도 다 나았고 고향에 갈 준비가 되었는데 이번엔 또 가족행사가 있어 꼭 참석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극 계획형인 내가 계획이라곤 다음 끼니 계획밖에 안 하는 남편을 만나 계획없이 발리로 이주하는 모험을 하고 있는데 더 이상 나는 얼마나 더 나를 내려놓아야하나 모르겠다. 언제쯤 이 붕뜬 상태가 끝나고 내가 발 붙일 곳에 도착이나 할 수 있을런지... 

매거진의 이전글 발리 여행/답사 그 이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