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랑을 꿈꾸는 두 남녀의 이야기
첫날 밤
송헌은 거실의 소파베드에 몸을 묻었다. 선향도 안방으로 가서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둘 모두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었다. 보일러만 웅웅대며 돌아갔다. 12시간이 지났다. 정적을 깬 것은 알람 소리였다. 송헌은 알람 소리를 찾아 나섰다. 집안 공기가 따뜻했다. 안방 문은 열려있었다. 선향은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약간 더웠는지 이불로 배만 덮고 있었다. 베개는 땅에 떨어져 있었다. 방에서 아이보리 비누향이 났다. 알람을 끄고 선향을 깨우러 갔다.
선향은 머리 곁에 걸터앉아 있는 송헌의 다리를 잡고 몸을 끌어당겼다. 몸이 침대 위에서 미끌리듯 송헌과 가까워졌다. 그러고는 송헌의 허벅지를 베개처럼 사용했다. 선향은 눈을 감고 푹신하다고 속삭이듯 말했다. 송헌은 선향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잠자는데 방해가 될까 봐 곧 멈췄다. 선향은 송헌의 팔을 잡아 머리를 계속 쓰다듬어 달라는 시늉을 했다. 선향의 허우적대는 것 같은 모습에 송헌은 웃음이 났다. 다시 선향을 쓰다듬었다.
송헌의 눈에 선향의 머리둘레가 무척 작은 것 같이 보였다. 손을 이용해 머리 둘레를 쟀다. 한 뼘, 두 뼘, 세 뼘에서는 조금 모자랐다. 50cm 정도 나왔다. 송헌은 자기 머리 둘레보다 12cm 나 작은 머리가 신기했다. 한 손으로 쥘 수 있나 잡아보기도 하고 조그만 귓불이 신기해서 들여다보기도 했다. 두피 마사지로 잠을 깨우면 개운하겠다는 생각에 송헌은 선향의 두피를 아프지 않을 정도로 지압 했다. 선향이 시원하다며 몸을 바로 누웠다. 송헌은 인정받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머리 감겨 줄게요" 송헌이 말했다.
선향이 일어나 마주 보고 앉았다.
"좋아요" 선향이 말했다.
송헌은 식탁 의자로 쓰는 등받이가 없는 의자를 욕실로 가져왔다. 선향은 바른 자세로 눕듯이 앉았다. 옷이 젖지 않도록 수건으로 목을 둘렀다. 따뜻한 물이 나오길 잠시 기다렸다.
"여름용 쿨 샴푸밖에 없네요." 송헌이 말했다. 선향이 쿡쿡 거리며 웃었다.
"시원하니 좋을 것 같아요" 선향이 말했다.
"이따가 마트에 가야겠어요. 같이 가요." 송헌이 말했다.
"좋아요. 저 오늘 4시에 끝나요." 선향이 말했다.
"세수는 내가 할게요." 선향이 말했다.
"세수도 해 줄게요. 재밌네요"
"아이코 괜찮아요."
송헌은 세수하고 있는 선향의 소매가 젖지 않게 걷어올려줬다.
"저는 나가서 아침 만들게요." 송헌이 말했다.
첫 아침 식사
송헌은 냉장고를 열어두고 뭘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다. 냉장고에는 물과 사과만 들어있었다. 그렇다고 아침부터 라면을 끓여줄 수는 없었다. 욕실 문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송헌은 5분만 나갔다 온다고 화장실 문 너머 선향에게 말하고 편의점으로 달렸다.
즉석밥 2개와 간편 미역국을 샀다. 꼬마김치와 날달걀도 샀다. 1만 원에서 몇 백 원 거슬러 받으면서 오늘은 마트에 꼭 다녀와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했다.
다시 집으로 달렸다. 집에 돌아오니 선향은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아침 햇살을 받은 선향은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편의점 비닐 봉지를 들키지 않게 감췄다. 미역국을 위한 물을 끓이고 전자레인지에 즉석밥을 돌렸다. 달걀 부침을 하려고 했으나 달걀 볶음이 됐다.
화장을 마친 선향이 싱그러운 공기를 몰고 식탁으로 왔다. 주변 공기가 상쾌해졌다.
"우와 정말 맛있어요." 선향이 미역국을 먹으며 말했다.
"네 많이 드세요." 송헌이 말했다.
"오늘 밤에는 우리 집으로 갈래요? 양쪽 집에서 하룻밤 씩 지내보면 어떨까요?" 선향이 말했다.
"좋아요" 송헌은 선향 집 냉장고에 있는 아삭아삭한 김치가 간절했다.
"저 오늘 쉬어요" 송헌이 말했다.
"월요일인데 쉬어요?"
"네 도서관은 월요일에 쉬어요. 주말에는 직원끼리 돌아가면서 하루만 쉬고요. 오늘 선향 씨 일하는 카페에 같이 가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그럼요. 되죠. 대환영!"
"네 옆에 있고 싶어요." 송헌이 말했다.
"네 좋아요. 늦겠어요. 송헌씨도 어서 씻어요. 머리에 새 집 있어요."
"네!"
"설거지는 내가 할게요." 선향이 말했다.
벽의 시계는 8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랑이란
카페로 이동했다.
선향은 조수석 햇빛가리개를 내려서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물에 젖은 도로는 햇빛을 반사했다. 눈이 부셨다. 햇빛가리개를 올리지 않고 그대로 뒀다. 송헌은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카페에 도착했다. 9시 5분 전.
"커피 한 잔 내려줄게요" 선향의 웃는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네 고마워요."
송헌은 선향이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것을 보며 서있었다. 선향의 동작은 군더더기가 없었다. 노즐에서 커피나 흘러나왔다. 우유에 갈색의 커피가 섞였다. 이질적인 둘이 만나 조화로운 하나가 됐다.
"정성을 더 했어요."
송헌은 눈을 감고 선향이 정성을 다해 만들어준 커피를 음미했다. 커피의 향이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송헌은 여전히 눈을 감고 향기를 느끼고 있었다.
"옷 갈아입고 올게요" 선향이 말했다.
송헌은 선향이 일하는 곳 바로 앞 아일랜드식 테이블에 노트북과 노트를 놓았다. 서로 언제든 눈을 맞출 수 있는 자리였다. 10시간 동안 내려뒀던 블라인드를 선향이 하나씩 끌어올리고 있었다. 부팅중인 노트북 화면에 선향의 모습이 비쳤다. 송헌은 일어나서 도와주려고 했지만 선향이 손동작으로 송헌을 제지했다. 송헌은 그때 '자발적 복종'에 대해 생각했다. 안도감을 느꼈다. 선향은 남은 블라인드를 몇 개 더 걷어올리고 음악을 틀었다. 첫 손님이 들어왔고 송헌은 글쓰기를 시작했다. 사랑에 대해 써 내려갔다. 9시 30분 이었다.
[... 사랑은 그 사람을 현재에 살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 발을 딛고 살면 불행해진다. 과거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만 바라보면 공허해진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에 두 발을 딛고 살아야 한다. 우리는 그래서 사랑을 한다. 진짜 사랑을 하면 우리는 현재에 산다....]
한참 동안 글쓰기에 집중하고 있던 송헌은 선향이 가까이 온지 몰랐다. 선향은 송헌의 글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선향이 송헌의 팔 사이에 양팔을 집어넣어 키보드를 잠시 점유했다. 송헌은 선향의 머리카락이 오른쪽 볼에 닿자 간지러움을 느꼈다. 복숭아 향이 났다. 선향은 한 줄을 바꾼 다음 잠깐 동안 타이핑을 했다.
[사랑 많이 줄게요.]
송헌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선향의 두 손을 잡았다.
"선향 씨 고마워요."
"내가 더 고마워요."
"아녜요. 내가 조금 더 고마워요"
"아니 아니 내가...... 그래요. 그럼 송헌 씨가 나를 좀 더 좋아하는 걸로 해요."
"하하 맞아요." 송헌이 말했다.
카페에 파트너가 한 명 더 출근했다. 손님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11시 정각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