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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곰살곰 Dec 03. 2020

비워진 곳에 남편을 향한 사랑이 차올랐다.

온열병에 장염까지 힘들어서 한동안 집 고치기 작업은 생각지도 못하다 기운을 추스르고 마지막 남은 바닥 철거 대상인 서재로 사용할 방을 작업하기로 했다. 남편이 파괴함마(뿌레카)로 부순 바닥의 시멘트 덩어리가 너무 커서 PP포대에 담기 어려워 해머 망치로 부수어 넣고 있는데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 연출된다.

저것은....

토르....?

정말 토르의 파워와 스피드가 간절해지는 순간이었다. 


양파 같은 우리 집은 역시 이 방도 3번의 방통 작업이 되어 있어서 부수고, 담고, 치우고  3번의 작업이 필요했다. 이젠 놀랍지도 않아 사진도 찍지 않았다. 마지막 바닥 철거까지 마무리되었으니 이제 한 숨 돌려도 될 거라 생각했다. 바닥을 철거한 후 남겨놓았던 은박매트만 걷어 내면 끝나는 줄 알았다.

바닥 철거 후 부엌과 거실 사진

보일러 방통 아랫부분에 모래가 깔려 있어 걷기가 불편할 것 같아 은박매트를 걷지 않고 그대로 두었던 거실과 부엌의 저 은박매트만 걷어내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남편은 그것이 아니라고 한다.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결국 불안은 늘 그렇듯 현실이 된다. 바닥 단열을 위해 스티로폼을 깔아야 하므로 방들처럼 모래를 걷어내서 바닥을 낮춰야 한다고 한다. 

모래만 걷어내면 좋겠는데 모래 안에 자갈, 벽돌, 타일, 폐콘크리트 등 여러 가지 것이 섞여 있어서 '레기'라는 농기구로 자갈을 분리해서 모래는 따로 모은다. 

한꺼번에 다 걷어서 PP포대에 담으면 안 되냐는 나의 말에 모래는 다시 사용할지도 모르니 따로 분리하는 것이 좋단다. 무슨 말인 줄 알지만 그렇게 하면 도대체 작업은 언제 끝난다는 말인지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거드는 나도 힘든데 힘든 일은 다하는 남편은 더 힘들 것이다. 항상 웃으며 아내부터 걱정하는 남편이지만 그의 마음은 오죽할까.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모래를 모으고 있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삽질이 왠지 분노의 삽질처럼 보였다. 

살아가면서 현실 또는 드라마에서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그냥 묻자'


철거하면서 그런 말이 자연스레 이해되었다. 

그렇다. 묻으면 편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 집은 천장도 벽도 2중, 3중이었던 것이다. 이해되면 안 되는데 자꾸만 이해가 된다. 이 힘겨운 시간을 지켜본 남편의 지인들도 나와 비슷한 심정이었나 보다.


"나라면 이렇게 철거 안 해요. 힘들어서 어떻게 해요. 문 틀을 높이고 집이 조금 좁아지더라도 그냥 덧방으로 작업하세요"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다는 사실은 어쩌면 그 생각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는 결론으로 나아가게도 한다. 나 역시 우리 그냥 놔두고 덧방 하면 안 되겠냐고 몇 번이나 물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 남편에게는 절대 통하지 않는 이야기이다. 


결국 우리는 남편의 계획에 맞게 결국 이렇게 낮추었다.

방 문턱을 기준으로 약 7~8cm 낮춘 후 남편이 설명을 시작했다. 


"저 상태의 바닥을 자나무로 바닥 평탄화를 하고, 비닐을 깐 다음, 단열재를 놓고 그 위에 은박매트와 매쉬 철망을 놓은 다음 보일러 XL 배관을 설치할 거예요. 그 후에 차단막을 깔고 방통작업을 하는 거지요."


당시에는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지만 이제는 남편이 왜 그렇게까지 고생하면서 어려운 작업을 고집했는지 몸으로 확인하고 있다. 추위를 힘들어하는 아내를 위해 단열에 최대한 신경을 쓰던 남편은 바닥에 75mm 단열재를 깔았다. 그로 인해 이전 아파트보다 훨씬 더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아마 그때 바닥을 낮추지 않아 남편이 생각하는 두께의 단열재를 깔지 못했다면 결코 이 따뜻함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작업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작업을 불러온다. 마당이 또 폐기물로 한 가득이다. 남편이 보호 중인 호박이 어찌나 잘 자라는지 호박이 다치지 않게 폐기물을 옮기다 보니 작업이 더 힘겨워진다. 하지만, 남편의 원칙과 따뜻한 마음으로 인한 힘겨움이라면 직선 길도 돌아서 가야 하는 이 상황도 웃으며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제 힘겨운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이다. 비산먼지를 잡기 위해 물을 뿌려가면서 부지런히 암롤 박스에 폐콘크리트를 옮겨 담는다.

이 날은 날씨가 어찌나 뜨겁던지 반팔을 입고 작업한 남편의 팔이 화상을 입기도 했다. 


암롤박스에 폐콘크리트가 채워질 무렵 할머님 한 분이 오셔서 버릴 물건이 없냐고 물어오셨다. 철거를 하며 철과 알루미늄 등은 차후에 고물상에 팔기 위해 하나하나 분리해서 모으고 있는 우리였기에 없다는 말이 나올 줄 알았는데 남편은 고민도 하지 않고 가져가시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 모습도 놀라웠지만, 나중에 리어카를 가져와 실으시려는 할아버지에게 위험하다고 말리며 직접 하나하나 옮기는 남편의 모습에 하루의 피곤함이 사라지는 듯했다. 작업이 마무리될 즈음 할아버지가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셨다. 미안하고 고맙다며 돈을 건네시는 할아버지와 놀라며 그러시지 말라고 오히려 마당이 치워져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이야기하던 남편, 장점이 많은 사람이지만 그중 사랑을 넘어 존경을 불러일으키는 남편의 모습이다. 


흐뭇한 시간도 잠시, 다시 일을 할 시간이다. 폐콘크리트를 붓고 널브러진 PP포대 정리를 시작한다. 양파 같은 우리 집에서는 또 언제 필요할지 모르니 차곡차곡 정리해서 택배함으로 만들 재래식 화장실에 쌓아두었다.

힘겹지만 정리가 된 마당을 보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하지만, 정리된 모습이 그리 오래 가진 않는다. 작업을 시작하면 다시 또 채워져 간다. 거실과 부엌에서 걷어낸 모래를 PP포대에 다시 옮겨 담는데 60포대가 넘게 나왔다. 다른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쌓여있는 포대들을 옮겨야 한다.

옮길 곳을 고민하다 PP포대를 쌓아 두었던 재래식 화장실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필요할 때 빼내서 쓰기로 결정했다. 

역시 남편은 무엇 하나 흐트러짐 없이 정리한다. 남편의 깔끔한 정리와 함께 철거 작업이 마무리되어간다. 


철거는 비우는 작업이다. 버릴 것이 끝도 없이 나왔다. 
비우는 것에도 기준이 있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나의 집이 되어가는 중입니다』中


그냥 한꺼번에 버렸다면 시간이 단축되고 수월했을 것이다. 남편의 비우는 기준을 지키느라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로 인해 더 소중한 것이 남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더 잘 알아갈 수 있었던 시간을 지나 남은 앞으로의 시간도 이 사람과 함께라면 행복하겠다는 따뜻함이 마음속에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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