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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곰살곰 Dec 02. 2020

40년된 주택과의 전쟁,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천장, 벽, 바닥 철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간다는 생각에 화장실 철거로 넘어왔다.

2중이든 3중이든 천장 철거는 이제 쉽게 느껴진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우리 집, 역시 2층 화장실 천장도 2중이다. 가볍게 한 번 철거한다. 바깥쪽 마감재를 철거하니 안쪽은 부스러져 가는 합판 마감재가 삐죽이 고개를 내민다. 떨어지는 먼지들이 엄청나므로 가능한 눈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철거해야 한다.

이제 2차 철거에 들어간다. 곰팡이가 가득한 합판은 이미 기능성을 완전히 상실했다. 종이 조각처럼 바스러지는 합판이 부서지면서 반갑지 않은 냄새가 욕실에 퍼진다. 


공사하면서 씻을 공간이 필요해 1층 화장실 바닥 철거는 천천히 할 예정이기에 벽 철거만 하면 되는 1층 욕실로 작업 공간을 옮겼다.

1층 욕실은 2층으로 향하는 내부 계단 아래에 위치하고 있어 층고가 낮고 폭도 좁아 화장실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나 많은 고민이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조금이라도 넓게 써보자는 마음으로 벽면의 타일을 제거하기로 했다. 그런데 떠발이 공법(몰탈(시멘트+모래+물)을 타일에 얹어서 부착하는 방법)으로 부착한 타일은 40년 동안 굳어 있어서인지 타일만 겨우 떨어지고 몰탈은 덩어리채 벽돌로 쌓은 벽과 일심동체 상태이다. 


타일을 깨는 것도 힘들었지만 먼지와 파편들이 눈에 자꾸 들어오는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다. 고글형 보안경을 착용해 보았지만 안경에 자꾸 습기가 차서 작업이 불가했고, 헬맷형 보안경을 착용해도 양 옆에서 들어오는 파편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입지 않은 내 옷을 이용해 헬맷에 전기테이프로 고정하여 자체 제작한 남편표 안전 보안경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팔 부분까지 묶어주니 귀여움 그 자체다. 한바탕 웃고 난 후 다시 안전하게 벽타일을 깨기 시작했다. 

계단 쪽 벽면 타일은 어찌 깼는데 부엌과 마주하고 있는 왼쪽 벽은 저기까지만 깨기로 했다. 왼쪽 벽은 벽돌 한 개로 벽이 구성된( 0.5b 쌓기) 상황인데 파괴해머의 진동에 벽돌 이음 부분에 균열이 생기는 것 같아 저 라인까지만 철거한다고 한다. 무언가 하다가 만 느낌이지만 마무리는 남편이 잘 알아서 하리라 믿는다.


이제 다시 2층 화장실로 넘어갔다.

옛날에 만들어진 주택의 화장실이어서 그런지 넓이가 조금 아쉽다. 타일이 덧방 시공되어 벽에서 3cm 정도 돌출되어 양쪽 합하면 6cm 정도 면적이 줄어든 상황, 거기에 또 덧방 시공을 할 순 없다는 남편의 단호한 의지와 함께 거리낌 없이 철거가 시작되었다. 사진으로는 몇 장의 간단한 변화로 보이는 작업이지만, 벽면의 덧방 타일과 바닥의 타일까지 정말 힘겨운 시간이었다. 


글을 정리하고 있는 모니터 속 예전 화장실 사진을 본 남편이 "어이구야"라는 외마디를 남기고 지나간다. 다시 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까? 난 그때는 몰랐기에 덤빌 수 있었다고 말하곤 한다. 이제는 어떤 시간이 기다리는 줄 알기에 선뜻하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반면 남편은 아이들이 독립하면 2층 집은 필요 없으니 팔고 도시 외곽에 땅을 사 직접 집을 짓고 싶다고 한다.

건축과는 무관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고 경험도 전무한데 어떻게 이 시간을 이어갈 수 있었는지 옆에서 함께 했던 나 조차도 의문 가득이다. 집을 하나씩 고쳐가는 금손도 대단하지만 이 시간이 즐겁다는 남편의 반응 또한 놀랍다. 이런 남편에게 종종 말한다.

"당신은 건축 쪽을 전공했으면 정말 좋았을 것 같아요."
"그럼 당신을 못 만났겠지요^^"

보통 자식을 키우며 욕심을 내기도 하고 맘껏 해줄 수 없는 상황에 미안하다고들 하는데, 난 남편을 보면 그런 마음이 든다.

'여보, 삶이 또 한 번 있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만약... 만약... 또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그때는 내 아이로 태어나요. 당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시간 맘껏 밀어줄게요'

타일 제거 후 남은 벽면의 울퉁불퉁한 시멘트는 그라인더로 연마해서 평탄화 작업을 할 예정이다. 


1층에서 천장을 봤을 때 2층 화장실을 중심으로 누수의 진행 흔적이 있었기에 바닥 타일을 제거한 후 제대로 방수 작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바닥 타일을 걷어내는데 물기를 머금고 있어서 조금 더 파보았더니 샘이 솟기 시작했다.

우리를 멘붕에 빠트린 시간...

수도 배관에서 누수가 있는 것 아니냐는 나의 말에 2층으로 오는 수도 원배관을 철거해서 그럴 리 없다는 남편의 말은 나를 더 혼란스럽게 했다.

2번째 사진의 세숫대야로 7번을 퍼다 부었는데도 마지막 사진처럼 물들이 자꾸 솟아난다. 삽을 대고 있는 마지막 사진은 1층과 2층의 콘크리트 경계 바닥이다. 


처음 보는 상황에 무슨 큰 일을 저지른 건 아닐까 걱정이 큰 나와는 달리 남편은 바닥 높이를 맞추기 위해 쌓아 놓은 모래들이 머금고 있는 물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는 것 같다며 부실시공을 하면 이런 못 볼 상황을 보는 것이라고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 

바닥의 모래가 모두 물을 머금고 있어 결국 바닥의 자갈과 모래를 모두 걷어내기로 했다. 자갈은 크기 별로 담고 모래는 욕실 앞 거실로 옮겨놓았다. 


아... 정말 까도 까도 끝이 없는 우리 집, 그대의 이름은 양파...

어차피 세면대와 샤워기를 설치하려면 오수 배관도 새로 놓는 것이 좋다며 긍정마인드로 전환한 남편이 부담 없이 파괴 해머질을 하다가 변기 배관이 깨졌다. 변기 배관도 어차피 새로 놓으려고 했다며 이것은 치밀한 계획 하의 의도된 행동이라며 하하하하 웃는다. 

(상) 1층 작은 방 천장 (하) 1층 거실과 작은 방 사이 천장

위 사진이 2층 욕실 부근의 1층에서 바라본 천장 사진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누수가 넓은 범위에 걸쳐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저런 상황이라면 욕실의 방수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고 알려온다.


누수를 막기 위한 힘겨운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완전하게 모습을 드러낸 2층 욕실, 철거를 하면서 놀라운 것을 많이 봐서 이제 놀랄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하게 민낯을 드러 낸 욕실을 보니 알 수 없는 한숨이 나온다. 

그래도...

누수의 원인을 확실히 알았고 해결할 수 있었으니 다행이다라고 위안 삼아 본다.


2018년 7월 23일, 욕실 철거작업까지 마무리한 후 25일부터 1박 2일 남편과의 오붓한 여행을 다녀왔고, 그 후 6일 정도 앓아누워있었다. 그렇게 한 동안 집에 가보지 못하다 8월에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많이 자란 호박 줄기와 새로운 호박이 우리를 반겨왔다.

목이 마를 호박에 물을 주며 다시 힘차게 작업을 시작한다. 욕실 철거까지 마무리되었으니 슬슬 벽돌 등 자재를 구입해 우리 집에 새 옷을 입힐 준비를 해야지 생각했는데, 또 다른 철거 작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힘겨웠던 시간...

그래도 지났으니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마무리 철거 작업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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