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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곰살곰 Nov 30. 2020

좋은 집이란 이야기가 쌓이는 집이다.

 폐기물 아래에서 열린 호박 그리고 그 호박으로 만든 딸아이 표 볶음밥 

아이들도 나도 참 좋았던 2층 집이 철거하는 과정에서는 2층이라 힘이 든다. 가야 할 길이 먼데 철거만 하고 있으니 언제 끝이 나나 싶은 생각에 머리가 무거워지곤 한다.

이럴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몸을 쓰는 게 제일이다.

1층 부엌 바닥 철거 중

2층 바닥 철거에 이어 1층으로 내려왔다. 

1층도 기본 2중일 거라 생각하고 단단히 준비를 했는데 다행히 1층 부엌과 거실은 한 번만 깨면 된다. 오래된 집이어서인지 처음에는 거실과 부엌에 보일러가 없었고 마루로 된 형식이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작업을 안 해도 되는 건 아니지만 2중의 철거가 힘겨웠던 터라 어찌나 반갑던지...

1층 거실 부엌 철거

대신 2층 바닥 철거작업에서는 없었던 메쉬철망이 보일러 배관과 고정되어 있어 하나하나 제거해야 했다.

보일러 배관인 XL 파이프를 절단하는 커터기로 손잡이를 움켜쥐며 살짝 손목을 돌리면 부드럽게 커팅이 된다. 

쉬워 보여 한번 해본다고 했다가 칼날이 정확한 위치에 있지 않을 때 움켜쥐어 고장 내버린 마이너스의 손인 나로 인해 더운 날씨에 새로 사러 나가야 했다.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역시 당신의 힘은 남다르다며 남편이 웃어주었다. 


무엇하나 대충이라는 법을 모르는 꼼꼼함의 대명사인 남편과 지금 당장 중요한 것부터 해결하고 그게 아니라면 상황에 맞게 둥글둥글하게 처리하는 나...
작은 실수도 용납치 않는 남편은 준비과정부터 남다른 철저함을 보이기에 어쩔 수 없는 변수에 의한 실수라도 스스로를 탓하곤 한다. 반면 나는 사람이 하는 일이란 게 실수가 있을 수 있고 그때 또 하나씩 배워가는 거라며 또다시 둥글둥글함을 보인다.
우리는 이런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때론 자신이 가지지 못한 장점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남편은 스스로에게는 용납 못할 실수라도 아내가 하는 일에는 웃음으로 넘어간다. 
보일러 배관이 고정되어있던 메쉬 철망

바닥을 여기저기 다 부수다 보니 잠깐 쉴 곳도 없는 상황, 남편이 비장의 무기를 준비했다. 

1층 안방 1차 철거 중

어디서든 앉을 수 있는 편안함과 웃음까지 선물해 준 엉덩이 부착형 쿠션 의자, 우리는 이 의자를 일명 개미 궁둥이라 부르기로 했다. 철거도 힘들지만 쌓여가는 PP포대를 보는 일은 더 힘겹다. 배관을 치우기 위해 쌓인 포대를 치우고 나니 나중에 설치한 보일러답게 촘촘하게 깔려있는 난방 배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1층 안방 배관

제일 위에 설치된 배관을 메쉬 철망에서 분리하고 절단한 후 걷어내고 보니 이전의 보일러 방통 바닥이 보인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바닥을 깬 후 배관만 제거하고 콘크리트를 그대로 두었다.

심지어 위의 사진처럼 바닥의 1/3 정도는 콘크리트를 깨고 들추어내지도 않았는지 레고처럼 서로 아귀가 딱 맞아떨어진 채 그대로 있다. 아마도 1/3 부분은 보일러 배관이 설치되지 않아서 그랬을 거라는 남편의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초기 보일러 배관이 엉망으로 설치되었던 것을 이미 보았던지라 놀랍지도 않았다. 


그런데 굳이 보일러 배관만을 제거하고 콘크리트는 다시 그대로 두고 그 위에다가 보일러 배관 작업을 덧방 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두께가 낮아진 것도 아니고... 무슨 연유에서인지 알 길이 없다.

안방은 위 사진처럼 2차 폐콘크리트를 제거하고 나니 그 아래에 또다시 폐콘크리트가 얼굴을 내밀었다. 안방은 주로 기거하다 보니 보일러를 3번 설치했었던 것 같다고 한다. 

사진으로는 단차가 잘 표현되지 않지만, 위의 사진처럼 총 3개 층으로 구성된 안방 바닥, 정말 힘든 바닥 철거작업이었다.

마지막 3층의 가장 아래쪽 폐콘크리트를 걷어내면 이 집의 특징인 황토 바닥이 보인다. 

과연 올해 안에 철거가 다 끝났소 있을까... 하는 걱정이 밀려온다.


3층 바닥도 바닥이지만 벽에 핀 곰팡이도 골칫거리인 1층 안방...

유독 곰팡이가 많은 안방 벽은 스크래퍼로 그냥 긁어내지 않고 분무기로 물을 뿌린 후 제거하기로 했다.

남편의 오른쪽에 보이는 압축 분무기를 이용해 벽지를 적셔준다. 벽지를 제거할 곳이 많고 곰팡이 제거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서 압축 분무기가 없었다면 작업이 훨씬 더 힘들어졌을 것이다. 물을 넣고 펌프질을 10회 정도 하면 자동으로 분무가 되는 압축 분무기, 작은 스프레이로 분무할 생각만 했던 나에게는 신세계였다.


1차로 벽지를 벗겨냈으니 곰팡이 소탕작전을 시작할 차례이다. 독한 곰팡이 제거제를 뿌려야 하기에 중무장이 필수다.

싸우러 나가는 장수 같다며 남편이 찍어준 사진에 엄마를 닮은 딸아이 표 그림이 더해지니 폐가처럼 나온 뒷 배경마저 괜찮아 보인다. 곰팡이 제거제를 뿌린 후 다시 물을 뿌려가며 벽을 씻어낸다.

(상) 곰팡이 제거 전 (하) 곰팡이 제거 후

아래쪽 까만 부분은 곰팡이 제거제로도 제거가 안되니 나중에 다시 2차로 제거해 보기로 했다. 

1층 거실

치워도 치워도 다시 쌓이는 PP포대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방이며 거실에 폐콘크리트를 담은 PP포대를 방치할 수 없어서 마당으로 옮겨 쌓기 시작했다.

마당

또다시 폐기물로 채워져 가는 마당의 모습에 암롤박스를 부르기로 했다. 2.5톤 암롤박스도 4번째이다 보니 암롤박스 운전기사님과도 이제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다. 

버려야 할 게 많아 폐기물을 마대에서 빼내어 차곡차곡 쌓아가기 시작한다. 재활용할 길이 없는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하이새시(기존 부엌과 거실 사이의 문)도 처리 대상이다.

(상) 컷쏘로 새시 프레임 절단 (하) 채워져 가는 암롤박스

유리문은 암롤박스에 넣고 해머로 깨서 부피를 줄이고, 암롤박스에 들어가지 않는 새시 프레임은 컷쏘(컷팅쏘우)라는 장비로 절단했다. 최대한 꼼꼼하게 적재한다고 했는데도 못 치운 폐기물이 아직도 많다. 

(상) 잘 채워진 암롤박스 (하) 깨끗해진 마당

어찌나 꼼꼼하게 잘 쌓아놨는지 생각보다 많은 양이 쌓여있었나 보다. 그래도 한결 개운해진 마당에 기분이 좋아진다. 남아있는 폐콘크리트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메울 부분을 폐콘크리트로 메우기로 했다. 

일단 대문 옆의 재래식 화장실부터 시작한다. 나중에 무인 택배함이 되어 줄 곳이기에 메워야 한다.

정화조 청소가 된 재래식 화장실에 폐콘크리트를 과감히 투척한다. 굵은 폐콘크리트와 작은 폐콘크리트를 바꾸어가면서 채워나가고 마지막은 모래로 덮어 준다. 그런데 재래식 화장실의 특유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다. 미장을 하고 나면 냄새가 나오지 않을 거라고 하는데, 지금의 냄새가 워낙 강렬하여 그때는 괜찮을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이번엔 2층 아이 방으로 사용될 확장한 부엌 쪽을 메운다. 확장한 아이방의 부엌 쪽 바닥이 낮아 방 높이와 동일하게 맞추기 위한 작업이다. 


마지막으로 보일러실 및 세탁실이 되어 줄 부엌 옆 공간으로 향한다.

부엌과 30 cm 이상의 단차가 있어 드나들기가 불편하기에 꼭 메워야 하는 곳이기에 폐콘크리트를 아낌없이 투척한다. 남김없이 부으려 했는데 남편이 바닥에 단열재를 깐다고 그만 부으라고 한다. 

남편의 머릿속은 모든 그림이 그려져 있는 듯한데, 나는 잘 모르니 작업하면서도 의문점이 많아 남편에게 자주 물어보게 된다. 

2018년 6월 11일 호박 보호대 설치 중인 남편

폐기물 정리를 하다 손상된 호박꽃이 안쓰러워 보호대를 설치했던 남편의 사랑 덕분인지 호박이 열려 자라기 시작했다. 며칠 전부터 따야 될 것 같다고 남편이 말했는데 호박이 작아서 좀 더 두면 더 자랄까 싶어 두었더니 어느새 노랗게 익어가고 있어 따서 집으로 가져왔다. 

집에 돌아오면 저녁을 차리느라 바로 쉴 수 없었는데, 남편의 사랑이 담긴 호박에 딸아이의 정성이 더해진 볶음밥 덕분에 편안한 저녁이 되었다. 2018년 7월 13일, 조금 느리고 힘들지만 이렇게 우리 가족만의 이야기가 담긴 보금자리가 만들어져가고 있다. 


좋은 집이란 무엇일까? 사람마다 정의는 다르겠지만, 이렇게 하나씩 우리만의 이야기가 쌓여가는 집이 좋은 집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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