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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곰살곰 Nov 27. 2020

"당신 오늘 정말 수고했어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한마디

셀프리모델링 중 남편이 가장 신경 쓰고 있는 것은 난방이다. 추위를 힘들어하는 아내 걱정에 바닥 보일러 배관을 새로 놓기 위해서 바닥 철거를 시작했다. 기존에 2번의 배관작업이 2층으로 쌓여 있어서 철거하지 않고  또다시 그 위에 보일러 배관을 놓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상) 1층 장판 제거 중 (하) 마당에 쌓인 장판

바닥 철거 전 장판을 걷고 보니 그 아래에 또 깔려 있는 장판, 이 집은 천장도 2중 장판도 2중이다. 

바닥 철거는 2층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장판을 걷어낸 후 바닥을 조심스레 깨보니 보일러 배관이 드러났다.

파괴함마로 바닥을 부순 후 배관을 걷어낸다. 보일러 방통 미장은 두껍지 않으므로 처음에만 포인트치즐(노미)로 깨고, 이어서 플랫치즐(다가네)로 부수면 쉽게 부서진다.

살구색 배관이 나중에 설치된 보일러 배관이고, 남편이 잡고 있는 노란색 배관은 온수배관으로 화장실로 향하고 있다고 알려준다. 아무리 들어도 뭐가 뭔지 이렇게 마구 잘라도 되는 건지 의문이 들지만, 남편은 과감히 배관을 잘라 1층 화장실의 임시 수도 배관으로 연결했다. 작업할 때마다 설명 해주곤 하지만 들어도 모르겠던 시간을 지나 지금은 직접 할 줄은 몰라도 대충은 안다.


위에 설치된 보일러 배관을 걷어낸 다음 깨진 시멘트를 모두 포대에 담아 밖으로 빼낸 후 또다시 바닥을 부수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닥을 깨면서 보일러 배관이 나와야 하는데 나오지 않는다며 이상해 하던 남편이 나중에 한숨을 내쉰다. 

2층 작은 방 보일러 배관

"어떻게 보일러 배관을 이렇게 설치할 수 있지?"


남편은 쓴웃음을 지으며 조심스레 모양을 유지해 배관을 올려놓고 나를 불렀다. 배관의 간격도 위 사진처럼 들쭉날쭉 일정하지 않고(들어 올리면서 틀어진 게 아님), 설치하다가 배관이 부족해서 인지 사진 위쪽에는 전혀 배관이 놓이지 않았다. 잘 모르는 내가 봐도 부실시공으로 보이니 꼼꼼한 남편이 보기에는 얼마나 답답해 보였을까.

2층 안방 벽지 제거 중

남편이 바닥을 부수고 있는 동안 나는 벽지를 제거하기로 했다. 삼국지의 장비가 사용한 무기와 비슷해 보이는 저 도구는 스크래퍼이다. 작은 손잡이가 달린 스텐 헤라는 보았어도 저런 긴 막대 손잡이가 달린 스크래퍼는 처음이었는데, 힘도 덜 들고 위쪽까지 닿아서 아주 좋은 효자 공구였다. 

(상) 2층 안방 벽지 제거 전 (하) 2층 안방 벽지 제거 후

2층 안방 벽지가 1차로 제거되었다. 남아 있는 작은 벽지들은 압축 분무기로 물을 뿌려서 제거할 예정이다. 

작은 벽지들을 뜯어내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나에게 남편은 물을 뿌려서 제거하면 쉽게 제거된다고 그냥 놔두라고 알려왔다. 역시 사람은 알아야 몸이 덜 힘들다.

2층 작은 방바닥 철거가 끝난 후 거실 바닥 철거를 시작했다. 2층 거실은 보일러 배관이 설치되어있지 않아 사진에 보이는 깨진 시멘트만 철거하면 되어서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보일러가 설치되지 않았다면 이곳에 살던 이들은 겨울을 어찌 보냈을까?


2중 바닥 철거도 힘들지만, 부순 폐콘크리트를 마대자루에 담아 옮기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우선 부쉈던 2층 작은 방과 거실 폐콘트리트의 마대자루에 담아 차곡차곡 한쪽에 쌓아놓아야 했다. 먼저 부수었던 바닥의 폐콘크리트를 마대자루에 담아 밖으로 모두 옮긴 후 2차로 부순 폐콘크리트를 옮겨 담아야 하니 작업이 더디고 힘들다.

(상) 2층 거실 (하) 2층 작은 방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바닥 철거였지만 '사랑'과 '함께'의 힘으로 버티다 보니 드디어 2층은 안방 바닥 철거만 남았다.

힘을 내 1차 벽지를 제거한 2층 안방 바닥 철거를 시작했다. 2층 안방 바닥 1차 제거 후 드러난 배관은 나중에 시공한 배관이라 그래도 꼼꼼하게 작업해놓은 것 같다고 남편이 알려주었다.

위의 사진이 나중에 설치된 보일러 배관으로 구석까지 빈틈없이 일정한 간격으로 잘 설치되어 있었다. 이제 저 배관을 걷어내고 다시 한번 폐콘크리트를 치운 후 2차로 부숴야 한다. 모든 것이 2중인 우리 집 철거의 길은 끝이 없음에 힘겨워질 무렵 남편의 재치 있는 상황 표현에 미소를 짓기도 했다.

"아무래도 건축 당시에 보일러 설치팀이 건축주랑 싸웠나 봐요. 그렇지 않고서야 보일러를 이렇게 설치할 수 있을까요?"

앞서 작은 방처럼 안방도 보일러 배관을 1/3은 안 하고 만 이상한 보일러 시공이다. 겨울에 보일러를 틀어도 전혀 따뜻하지 않았을 저 왼쪽 부분에 남편의 유머가 더해지니 당황스러움이 웃음이 되었다. 이제 부숴놓은 콘크리트를 정리할 차례이다. 사실 깨부수는 것보다 마대자루에 넣어서 옮기는 게 더 힘들지만, 정리만 하면 된다고 자기 최면을 걸어본다. 

보일러 배관 아래쪽에 10cm 정도 깔려 있는 황토 흙은 그대로 두기로 하고 폐콘크리트만 걷어내기로 했다. 

바닥 콘크리트를 모두 부수기는 하였으나 레고처럼 서로 맞물려 있고, 아래쪽 흙은 그대로 두기로 하여 '네기'라는 농기구를 이용했다. 삽으로는 꿈쩍도 안 하는 것이 갈퀴 같은 '네기' 도구를 사용하니 쉽게 걷힌다.

네기로 거실 바닥을 정리 중인 남편

주로 남편이 삽을 이용해 폐콘크리트를 담고 내가 마대자루를 잡아주곤 했지만, 남편이 거실 바닥을 정리하는 동안 나도 한번 삽을 들어보았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삽질

이제 전문가의 포스가 느껴진다고 농담하던 남편이 힘드니 놔두라고 말려온다. 집 공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기에 할 수 있는 일이 생기면 힘들다기보다는 내가 도움 줄 수 있는 작업이 생겼다는 것에 반가웠다. 


기술이 없어서, 지식이 없어서, 공구 사용법을 몰라서...

위험해서, 힘이 부족해서...

이런저런 이유로 많이 도와줄 수 없는 나인데도 부인 고생만 시킨다며 남편은 늘 미안해하고 안쓰러워했다.

 

집수리와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아온 남편과 내가 집을 새로 짓는 듯한 수리의 시간을 쌓아갈 때 가장 필요한 건 기술이 아닌 서로를 향한 믿음과 배려였다. 서로를 향한 사랑의 응원도 받았으니 다시 힘을 내 2층 바닥 철거와 폐콘크리트 정리를 마무리할 시간이다. 

쌓아둔 폐기물을 2층 밖으로 옮기는 데에도 요령이 필요했다. 철거된 바닥 폐기물 양이 많아서 차곡차곡 쌓아야 공간이 확보된다. 마대 자루는 강한 여름 햇볕에 찢어지기 쉬우므로 직사광선이나 비를 막기 이해 폐장판을 이용하여 덮어두었다. 


치우면 채워지고 치우면 다시 채워지는 폐기물과의 전쟁.

2층 콘크리트 폐기물만으로도 2.5톤 암롤박스가 채워질 듯 해 3번째로 암롤박스를 불렀다.

폐콘크리트 단일 폐기물 처리이므로 마대포대는 모두 걷어내야 한다. 혹시라도 2층의 폐콘크리트가 모두 나가지 못하면 난감하기에 마대포대에서 폐콘크리트를 붓고난 후 빈틈없이 발로 밟아 공극을 줄여 최대한 많이 실을 수 있도록 한다. 또한 폐자재 특성상 비산먼지가 많이 발생하기에 조심조심 작업하면서 먼지가 최대한 나지 않도록 했다. 


정말이지 철거는 부수는 것보다 정리하는 것이 3배는 더 힘들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생기기 시작했고, 주먹이 잘 쥐어지지 않던 시간, 뜨거운 날씨에 줄줄줄 흐르는 땀이 더욱 힘겹게 느껴졌지만 서로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었다.


당신 오늘 정말 수고했어요.
1층 바닥 철거 중 '찰칵'

어쩌면 우리가 잊고 지내는 아름다운 말 중 하나가 아닐까? 

바쁘고 힘겨운 삶 속 '나'를 찾고 위로해주라는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가장 아끼고 사랑해야 할 이에게는 소홀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에너지를 쏟고 자신을 포장하며 살아간다. 난 가정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 가정의 중심은 아이들이 아닌 부부라고 믿기에 가장 소중한 남편에게 아름다운 말을 아끼지 않는다. 


"여보, 정말 수고했어요. 당신과 함께 집을 만들어나가는 시간은 나를 만들어가는 시간이기도 해요. 

항상 고맙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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