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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곰살곰 Nov 25. 2020

남편을 닮아가는 나, 우리 부부를 닮아가는 집

철거보다 어려운 처리

천장을 뜯고 나면 또 하나의 천장이 나오고 바닥을 깨고 나면 또 하나의 바닥이 나오고 셀프 리모델링의 길이 이리 험난할지 몰랐다. 2중 철거와 폐기물 정리가 쉽지 않았지만, 직접 하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생각에 땀 흘려가며 진행해왔던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수익이 크지 않아 번거로운 일로 인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철거도 했는데 폐기물 처리라고 못할까


전화만 하면 마당에 종류별로 분류해놓은 폐자재를 가져갈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직접 철거까지 해야 수익이 많이 남아서 인지 폐자재 처리만을 하겠다는 업체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업체가 2.5톤 암롤박스를 가져다 놓을 테니 직접 실어야 한다는 이야기만을 해왔고, 폐자재를 옮기는 일까지 가능하다는 업체의 견적은 170만 원이었다. 결국 우리는 2.5톤 암롤박스에 직접 싣기로 했다. 

2018년 6월 22일 단일 목재폐기물 처리

1차로 목재폐기물 한 차를 보냈고, 2차로 석고보드와 폐콘크리트 등을 혼합폐기물로 한 차 더 실었다.

2018년 6월 25일 혼합폐기물 처리

조금이라도 더 많이 실어보려고 암롤박스에 올라가서 폐콘크리트가 담긴 마대자루를 공극 없이 정리하는 남편이 이야기해왔다.


"철거는 뜯는 게 문제가 아니라 처리가 문제인 것 같아요"


천정과 벽 철거에서 나온 폐자재는 부피만 컸지 무겁지는 않았는데, 다락과 벽 철거에서 나온 폐콘크리트는 마대자루에 담아 방에서 밖으로 옮기는 것부터 보통 일이 아니었다. 폐콘크리트를 힘겹게 암롤박스에 싣고, 빈 공간 없이 잘 쌓기 위해 암롤박스에서 다시 한번 정리하고 땀이 비 오듯 흘렀지만 정리된 마당을 보고 있자니 뿌듯해졌다.

(상) 1층의 폐자재 정리 전후 (하) 2층의 폐콘크리트 정리 전후

암롤박스를 운반하시는 기사님께서 담아놓은 폐자재를 볼 때마다 인사처럼 건네 오는 말이 있었다.


"예쁘게도 쌓았네요."


차곡차곡 쌓지 않으면 많이 실을 수 없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지만, 남편의 작업 스타일이기도 했다. 


마당에 있는 폐기물을 정리해서 담고 있는 모습을 보는 사람들의 반응이 다양했다.
이 집에 살 사람이 아닌 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던지 공사기간이나 견적을 물어오는 이부터 아무 말도 없이 우리 집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하루는 동네에서 리모델링을 시작한 집에서 철거를 하고 있던 아저씨가 와서는 직접 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미소 지으시며 한 마디 하셨다. "이런 일이 다 인건비니 직접 할 수 있으면 좋죠. 그런데 정말 부럽네요. 우리 마누라 같으면 절대 못할걸요."
암롤박스 기사님에게는 직접 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보다는 담겨진 폐기물이 먼저 보였기에 "예쁘게도 쌓았네요"라고 하셨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자신의 사고의 틀안에서 상황을 해석하고 평가한다. 아무 말 없이 집에 들어와서 여기저기 둘러보고 담배꽁초를 버리고 간 이웃의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질 때도 있었지만 나 역시 내가 보고 싶은 데로 보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자 암롤박스기사님의 "예쁘게도 쌓았네요"라는 말이 "예쁘게도 사시네요"로 들리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가 직접 옮기는 과정을 거치니 170만 원의 견적이 42만 원으로 줄었다. 


이사 전 꼭 해야 할 일 중 하나

(좌) 마당의 정화조 청소 중 (우) 재래식 화장실 청소 중

이사하기 전에 꼭 해야 할 정리 중 하나가 정화조 청소이다.

아파트에 살다 주택으로 이사할 경우 생기는 택배 처리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대문 옆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을 무인택배 수거함으로 만든다는 남편의 이야기에 또 한 번 감탄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하고 계획을 세울 수 있을까. 


수도 원 배관을 찾아라


이제는 집을 계약하기 전부터 신경 쓰였던 부분인 수도를 해부해 볼 차례이다. 물을 사용하고 있지 않는데도 집 밖에 위치하고 있는 수도계량기의 별(★) 모양의 체크기가 돌아가는 것을 보고 누수가 있는 것 같다고 남편이 얘기해왔었다. 집이 오래되어서 누수가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남편과 달리 어떻게 고치려나, 전문가에게 맡겨야 하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되는 나였지만 남편은 "파보면 알겠지요" 라며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 

수도계량기에서 가장 가까운 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수전을 기준으로 파헤쳐보기 시작했다. 나뭇가지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수도 배관 중에 하나가 있겠지라고 기대했지만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다.

결국 수도가 인입될 만한 곳을 다 파헤쳐봐야 했고 급한 다른 일도 해야 하기에 작업 도중 조금씩 찾아가다 3일 만에 집으로 들어오는 원 배관을 찾았다. 그런데, 다른 배관을 모두 잘라버리고 임시로 사용할 배관 하나만 만들어 놓았는데도 수도계량기의 별 체크기가 계속 돌아갔고, 아무래도 수도계량기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배관의 연결부위가 잘못된 것 같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골목길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는 곳을 파내는 것은 아무래도 업체에 맡겨야 될 것 같다며 혼잣말을 하던 남편의 모습에서 힘겨움이 느껴졌다. 


40년 넘은 주택 셀프 리모델링에서 내가 하는 중요한 역할이 빛을 발할 순간이었다. 


"자기야, 이럴 때는 쉬어야 해요. 우리 근처 공원에서 커피라도 한 잔 하고 올까요?^^"


남편을 도와 셀프 집수리 보조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임무는 남편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일이다. 더 높고 빠르게 가는 삶이 아닌 천천히 욕심부리지 않고 가는 길을 선택한 우리네 삶처럼 리모델링 또한  지칠 때는 쉬어야 한다.

지금의 집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던 집 근처 공원으로 향하니 자연의 푸르름이 가득했다. 처음 셀프 리모델링을 시작할 때는 작업복 차림으로 집 밖에 나오는 게 신경 쓰였다. 하지만 이제는 먼지투성이인 작업복과 작업 모자를 쓰고도 어디든 잘 다니고 있는데 그런 나의 모습에 남편이 웃고 남편의 웃는 모습에 나도 따라 웃게 된다. 


한 숨 돌린 후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늘은 마무리하고 들어가야겠다 싶었는데 장마가 시작된다는 소식에 남편이 공구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집이 처음 지어졌을 때 연탄창고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2층의 작은 창고에는 문이 없었다. 문제는 문이 없이 오랫동안 방치되어 비가 올 때마다 비가 들어가서 누수가 생긴 듯했고 그로 인해 창고 아래쪽 1층의 천장 부분이 상태가 좋지 않았다.

(좌) 1층 다락 (우) 1층 다락의 천장

이런 악순환을 임시방편으로 막기 위해 문을 달아야겠다던 남편이 1층에서 철거한 화장실 문을 이용해 순식간에 창고에 문을 달았다.

가로폭이 조금 좁았는데 오른쪽에 각목을 하나 대고 아래쪽은 장판을 잘라서 빈 공간을 메우며 완성된 남편표 임시 창고문을 보며 철거 과정에서 무엇하나 쉽게 버리지 않았던 남편이 떠올랐다. 그냥 다 쌓아서 폐기물 처리하면 빠를 텐데 쓸만한 것들은 따로 보관하고 폐기물도 하나하나 분리하던 남편은 비용절감의 문제뿐 아닌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자연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공사하는 건물 앞 암롤박스에 뒤엉켜 버려져 있는 폐기물들을 보면 종류별로 분리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과 쓸만한데 왜 버리지 라는 생각이 앞선다. 아무래도 남편을 닮아가는 것 같다. 남편을 닮아가는 나와 우리 부부를 닮아가는 집 덕분에 힘든 시간 속에서도 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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