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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곰살곰 Dec 04. 2020

벽돌 한 장, 사랑 한 장 번갈아가며 쌓기

셀프 조적

기나 긴 철거가 끝난 후 불필요한 출입문을 막거나 벽을 세우는 작업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그에 따라 필요한 벽돌(색상 벽돌, 일반 벽돌)과 시멘트, 모래 등을 구매하기 위해 건축자재상이 밀집되어 있는 곳을 하루 날 잡아서 방문하였다. 그런데 전문 시공업체가 아닌 개인이 하는 일회성 작업임을 알아서인지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 바쁜 업무 상황에 이것저것 문의하는 게 귀찮고 번거롭게 느껴졌을 것이다. 두어 군데 방문했다가 괜히 업무에 지장을 주는 민폐 고객처럼 느껴져 포기하고 귀가하였다.


며칠 지나 오가면서 보았던 벽돌 가게를 방문했다. 일전에 방문했던 건자재상에서는 적벽돌이 진열되어 있지 않아 보고 고를 수 없었기에 적벽돌이라도 별도로 구매하고자 벽돌 전문 가게를 간 것이다. 그런데 적벽돌이라도 구매하고자 간 곳에서 모래와 시멘트까지 모두 한꺼번에 구매하게 되었다. 전날 전화를 드리고 방문하려고 했으나 사정상 만남이 무산되어 다음날 방문했는데 사장님이 너무 친절했다.

비건축전문가로서 인터넷을 보고 개인 주택을 셀프 수리하는 입장이라 잘 모르는 사정을 설명하고 필요한 자재를 얘기했더니 여러 가지 조언도 해주시고, 모래 업체와 시멘트 업체 그리고 화물 및 지게차까지 모두 연결해서 배송 시간까지 각각 지정하여 처리해 주셨다. 거기다 두 분이 직접 그렇게 하시는 모습이 참 예뻐 보여서 더 신경 써드 린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상담 주문 후 집으로 와보니 제일 먼저 지게차가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첫 번째로 시멘트 40포가 도착하여 마당 안으로 넣어보려고 했지만 비좁은 골목길과 너무 큰 지게차 때문인지 마당 안으로 완전히 넣는 건 실패했다.

두 번째는 벽돌이 도착.

일반 시멘트 벽돌 2400장과 적벽돌(칼라 벽돌을 모두 통칭해서 적벽돌이라 부름) 700장을 최대한 대문 출입구에 붙여서 내려놓았다.

그리고 세 번째로 모래 2.4톤이 도착.

모래를 최대한 대문 쪽으로 내리기 위해서 먼저 왔었던 시멘트를 부지런히 마당으로 옮기느라 거짓말 조금 보태서 숨도 안 쉬고 일 한 듯하다.

마당에 자재를 쌓기 때문에 비에 대비하여 팔레트를 깔고 시멘트와 벽돌을 쌓았다. 집수리를 위해서 샀던 P대차(손수레, 밀대)가 열 일 해준 순간이다.

3m 정도의 일방통행 골몰길이기 때문에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어떻게든 오늘 안에 모두 집안으로 넣기 위해 고군분투 중....

모래 2.5톤을 삽으로 옮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해도 해도 줄지 않는 것 같은 모래 산을 보면서 삽질하고 있는 남편을 돕기 위해 함께 삽을 들었지만 남편의 스피드는 따라잡을 수 없었다.

저녁 7시가 다 되어서야 모든 자재를 마당 안으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살면서 또 처음으로 해보는 경험, 벽돌 옮기기가 추가되었다.


남들 다 하는 결혼식도, 신혼여행도 없었던 우리 부부...
대신 쉽게 경험해 볼 수 없는 우리만의 순간이 쌓여가고 있다. 종종 결혼하면 손에 물도 안 묻히게 해 준다더니(사실 남편은 이런 말 한 적 없음) 시멘트를 섞고 벽돌을 나르는 경험을 선물해주는 거냐고 물으며 함께 웃기도 한다.

주말을 보낸 후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오래된 주택은 거실의 현관문 쪽 벽면에 사진과 같은 신발장을 만들어 놓은 경우가 많다. 벽이 뚫린 상태로 신발장이 있으니 방음과 단열에도 문제가 있다. 다행히 신발장을 미리 놓고 벽돌을 쌓은 게 아니라 신발장이 들어갈 크기를 제외하고 벽돌을 쌓은 후에 신발장을 넣어 고정시킨 형태라 쉽게 철거가 가능했다.

이제 뻥~뚫린 공간을 채워 줄 차례이다. 시멘트와 모래를 1:3으로 혼합하여 섞어 준 후 물을 넣어가면서 다시 섞는다. 시멘트 1포대를 기준으로 물의 양이 명시되어 있으나 어차피 섞는 통이 작아서 조금씩 덜어서 몰탈(시멘트+모래+물)을 만드는지라 물의 양을 계량화 하기 어렵다. 그저 너무 무르거나 되지 않게... 알맞게... 적당하게.... 하면 된다는데, 나 같은 문외한에게는 제일로 어려운 말이 '적당하게'이다.


남편은 흙손(고대)이라는 도구로 뜰 때 점성을 유지한 채 흘러내리지 않는 정도로 배합을 했다.

벽돌을 쌓기 전 철거한 신발장 주변 벽면의 벽돌에 분무기로 물을 뿌려 준다. 너무 오래 말라 있어서 바로 붙이면 몰탈의 물을 급속도로 흡수해서 잘 안 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벽돌의 측면에 미리 몰탈을 조금 얹어서 벽돌을 놓는다.

벽돌을 쌓는 전문가가 아니므로 아름답고 멋지게 보다는 단단하게 쌓는 것을 목표로 재료를 아끼지 않고 빈틈없이 쌓아간다는 남편...


처음 해보는 시간이니 그러겠다 싶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이 시간 후로 벽돌을 쌓는 곳만 보면 유심히 보는 습관이 생겼는데 오히려 남편이 쌓은 벽돌이 더 잘 쌓아진 것처럼 보였다. 내 남편이 진정한 금손인 걸까? 아니면 내 눈에 콩깍지가 안 벗겨진 것일까?

그런데 8단 정도 쌓고 나더니 절반이나 남은 상태에서 더 이상 쌓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왜 마저 쌓지 않으냐는 물음에 하루에 쌓는 권장량이 있어서 8켜(층)~13켜 정도만 쌓는 거라고 한다. 하루에 18켜 권장, 최대 22켜라고 적힌 곳도 있다는데 뭐가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는 남편이 정답이다.

작업이 복잡하고 많아지는 것 같아 철거 중 '그냥 묻자'라는 말에 이어 기존 구조대로 '그냥 살자'라는 생각도 들었었다. 하지만, 남편의 말처럼 수리가 된 집에서 살고 있는 지금은 그때 이렇게 안 해놨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다음 날 도착하자마자 전날 남겨 두었던 1층 현관의 신발장 나머지를 벽돌로 막았다. 가장 위쪽의 마지막 부분은 공간이 애매하여 벽돌을 옆으로 세워서 쌓았다. 벽의 하중을 받치라는 의미로 몰탈을 꼼꼼하게 채워 넣었다. 실제 공학적으로 얼마나 하중을 떠받드는지 알 수 없지만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는 것도 우리에게는 중요했다.


2층에도 벽돌을 쌓아야 하는데 임시로 사용 중인 수도 배관을 왔다 갔다 이동시키기 번거로워 수도 배관을 분기했다. 철물점에서 엑셀 3방 티와 유니언 밸브라는 부속품을 사 와서 작업하는데 보고 있으면서도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수도 배관 분기작업 후 2층에서 테스트를 해보니 문제없이 잘 나온다.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남편의 다리 쪽 부분의 배관에는 밸브가 부착되어 있어 중간에 물을 잠글 수 있다. 다이소에서 산 녹색의 물 호스용 스프레이 건의 연결 부위가 약하므로 물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에는 밸브를 잠그는 것이 혹시나 모를 물 사태를 막을 수 있다.

2층의 현관문 쪽의 신발장도 철거하고 벽돌을 차곡차곡 쌓는다.

다음 조적 현장은 아들 방으로 사용하기 위해 비내력벽을 철거하고 확장한 곳이다. 작업하는 곳이 원래는 작은 부엌이었기에 밖으로 나가는 출입문이 있었는데 그 출입문을 막기로 했다. 먼저 문을 떼어내고 컷쏘(컷팅 쏘)라는 장비를 이용하여 알루미늄 문틀을 절단한 후 빠루를 이용하여 철거한다.

컷쏘 장비의 톱날이 여러 가지인데 피절단물의 종류에 따라 골라서 장착하여 사용해야 한다.

벽돌을 쌓기 전 파괴 해머(38 뿌레카)를 이용하여 바닥의 타일을 걷어 낸다. 타일에 발라진 유약으로 인해 유리 같은 코팅이 되어서 시멘트가 붙지 않기에 걷어 낸다고 한다. 단단하게 붙기를 바라며 차곡차곡 쌓아간다. 나는 옆에서 벽돌을 가져다주고, 마실 물도 가져다주며 보조역할을 한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없어서는 안 될 기운 돋우기 역할도 해야 한다.

드디어 문이 있던 곳이 벽이 되었다. 사진 위쪽의 벽돌 2장이 테두리처럼 드러나 있는 부분은 철거한 다락의 바닥 흔적이고, 아래쪽은 타일이 붙어 있던 곳을 철거한 곳인데 나중에 미장을 하기로 했다.


이제는 1층 서재의 문을 막아야 한다. 세를 주고 여러 집이 살았던 옛날 주택이라 문이 참 많다.

이곳은 지금까지 작업했던 부분과는 달리 벽돌을 많이 쌓아야 한다. 컷쏘 장비를 이용하여 조심스럽게 목문 프레임을 철거하고 철거한 나무 프레임을 바닥에 깔아서 작업하기 용이하게 준비하였다.

벽돌을 깨는데 전용으로 사용하는 벽돌망치(렝가망치, 냉가망치)와 수평계(수평자), 실과 고무줄을 추가로 준비했다. 쌓는 높이가 2m가 넘어서 수직과 수평을 더 신경 써야 한다는 남편, 내가 보기에는 지금도 충. 분. 히 많이 신경 쓰는 것 같은데 더 꼼꼼해져야 한다니 기다림이 더 길어지겠구나 싶어 졌다. 물론 절대 겉으로 티를 내서는 안된다.

수직은 기존의 벽에 맞추어 작업하면 되나 그래도 실을 띄워 수직을 점검한다. 그리고 벽돌의 높이를 일관되게 쌓기 위해 수평실을 띄우고 작업하는데 수평실은 못과 고무줄을 이용해서 남편이 만들었다. 벽돌을 쌓을 때 양쪽 끝 부분의 벽돌을 먼저 놓은 다음 수평계로 수평을 점검한 후에 고무줄로 만든 수평실을 벽돌에 걸쳐서 줄을 맞추어 작업했다.


잘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같이 벽돌도 쌓아보며 힘을 보태려는 생각도 잠깐 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꼼꼼하고 정확하게 하는 남편을 보면서 마음을 접고 본연의 보조 역할에 충실하기로 했다. 남편이 말하지 않아도 수평실이 필요한지 수평계가 필요한지 단계에 필요한 도구를 건네는 나를 보며 남편이 감탄했다.


"자기야,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문이 있던 공간을 막는 것이고 벽돌을 쌓은 후 미장을 할 텐데 이렇게 까지 해야 했을까? 이런 남편이기에 절대 다른 이에게 못 맡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드디어 1층 서재 쪽 사용하지 않을 문도 다 막아졌다.


처음 집을 사고 수리를 시작할 때는 겉으로 보이는 부분에 대해서만 궁금해하고 상상을 하곤 했었는데 작업을 하면서 관련 인터넷 글이나 책을 보면서 진짜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알아가고 있다. 알아가는 과정에서 놀라운 건 그런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집을 선택하고 작업을 진행해가는 남편이다.


이런 남편이 철거 때와는 달리 언제쯤 작업이 끝이 날지 답답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내가 필요한 순간이다.


"자기야, 철거 때와는 달리 작업할수록 집의 변화가 보이니 정말 좋아요."


그렇게 이야기해주니 고맙다며 미소를 짓는 남편...

단순 작업에서 기술이 필요한 작업으로 옮겨가고 있는 시점에서 나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힘들어하는 남편에게 웃음을 주는 일...


"내가 없으면 어쩔 뻔했어요. 옆에서 이렇게 수다도 떨어주니 즐겁죠?"


이렇게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며 벽돌을 쌓고 사랑도 쌓아나갔다. 남편의 금손과 꼼꼼함이 튼튼한 벽을 만들었겠지만 어쩌면 그 사이사이에 들어간 우리의 알콩달콩 시간이 강한 접착제 역할을 해준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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